무척이나 어렵게 얻은 인턴 자리는 미국 실리콘 밸리 지역의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내 세부전공은 전력전자이지만 당시에는 전력전자 분야로 일치하는 인턴자리를 구할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얻은 인턴 자리는 보다 일반적인 전기회로 하드웨어 설계를 주로 하는 자리였다.
이 인턴생활은 미국 회사에 처음 다녀보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회사를 다녀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에 유학을 왔기 때문에 한국 회사도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첫 출근부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대략 수십 명 정도가 근무하는 스타트업이었는데 워낙 회사 규모가 작아서 처음에는 바로 옆에 있는 다른 회사에 잘못 들어가 새로운 인턴이라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회사에서 아마 여기가 아니라 바로 옆 회사일 거라며 나를 내보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 어처구니없는 나의 첫 출근 경험이었다.
그렇게 실수로 시작된 나의 인턴 생활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가장 놀라웠던 점은 회사 엔지니어들의 구성이었다. 내가 다닌 스타트업 회사는 IT회사가 아니라 기계를 만드는 회사였기 때문에 기계공학과 출신, 전기공학과 출신 등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많았고 상당수의 엔지니어들이 나이가 많았다. 한국의 경우 나이가 차면 관리자로 승진을 하거나 다른 자영업을 하는 것이 많은데 비해 나이가 굉장히 많은 할아버지 엔지니어들이 스타트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더욱더 놀라웠던 점은 그렇게 나이 많은 엔지니어들의 실력이었다. 그냥 나보다 더 잘하는 분들이구나 정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들이 많았다. 비유를 하자면 나는 구구단을 외우는 초등학생 수준인데 그분들은 수능 수학문제를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고등학생 정도였다. 한 사람이 자신의 영역에서 평생 동안 실력을 갈고닦을 때 저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 나왔다.
더 놀라웠던 점은 그렇게 실력이 출중한 엔지니어들의 인격이었다. 어린 나이에 첫 회사생활을 잘 해내려고 하는 나를 도와주고 싶으셨던 건지 아니면 원래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친절하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홀로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주기도 하고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아낌없이 가르쳐 주기도 하셨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 인턴 생활에서 전기 회로를 만드는 기초를 배웠다. 기본적인 printed circuit board (PCB) 제작을 하는 방법부터 PCB제작을 위한 소프트웨어, 회로를 시뮬레이션하는 소프트웨어 등등 전기공학의 엔지니어로서 반드시 배워야 하지만 학교에서는 많이 배우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정말 뛰어난 경력 많은 엔지니어들에게 배웠으니 내 자신감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동시에 나의 진짜 꿈도 정하게 되었다. 정말 최고의 실력을 가진 엔지니어가 되어 보겠다는 꿈을 정했다. 지금 당장 나는 인턴 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실력이 모자라 쩔쩔매는 흔한 외국인 유학생이고 지금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40년 후 50년 후에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는 것은 하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실력을 갈고닦아 언젠가는 그 누구도 이르지 못한 실력의 경지에 이른 엔지니어가 되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다행인 점은 내가 공부하는 전력 전자라는 분야는 경력이 중요하고 나이가 들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실리콘밸리에서의 인턴 생활은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인연을 맺고, 나의 미래에 대해 더 희망찬 꿈을 가지면서 끝이 났다. 비록 3개월의 짧은 인턴 생활이었지만 이제까지 내 삶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3개월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