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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ul 07. 2024

박사 논문 채워나가기

때때로 학교 밖에서 인턴을 하면서 동시에 석사학위를 겨우겨우 받고 박사 과정으로 진학했다. 처음 내 지도교수를 만나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학위는 다른 학교나 다른 교수를 찾아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석사 학위를 받고 다른 학교나 다른 지도교수를 찾아 박사과정을 진학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새로운 연구실에 적응해서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고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의미 없는 고생을 자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석사 지도교수 아래에서 박사과정도 진학하게 되었다. 석사 과정 때와는 다르게 첫 학기부터 Research assistant로 일하면서 학비와 생활비까지 모두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쨌거나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왔었던 석사를 시작하는 시기보다는 더 나은 출발이었다.


나의 박사 학위 주제는 석사 학위 주제를 조금 더 확장한 것이었다. 나는 태양열 변환을 하는 인버터(직류 전류를 교수 전류로 바꿔주는 장치)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내가 연구하는 인버터는 독특하고 남들이 잘하지 않는 인버터의 한 종류였다. 그리고 그 인버터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작동하도록 제어 방법을 만드는 것이 나의 박사 논문 주제였다. 


내 박사 주제 연구는 크게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첫 번째 챕터는 석사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석사 과정 기간에 연구를 끝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두 번째 챕터부터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 주제는 내가 책을 찾아보고 공부하면 쉽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많은 논문 심지어 교과서에서도 비슷한 회로들이 많았고 그것을 조금 변경하고 적용하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두번째 챕터의 연구까지 나는 박사 1년 차가 지난 시점에 어렵지 않게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챕터와 네 번째 챕터부터 진정한 의미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챕터의 이론대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봤지만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다가 지쳐 연구실에서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집에 가자마자 책을 보고 노트에 이런저런 내용들을 적다 보니 오류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챕터부터는 내가 원래 알던 제어방식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왜 동작하지 않는지 알게 된 이상 그 풀이방법은 쉬웠다. 원래 하던 것을 뒤집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생각이 잡히기 시작하자 세 번째 챕터의 방향도 2년 차가 지나기 전에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 챕터가 나에게는 가장 큰 도전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존에 내가 아는 것들을 모두 동원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막막한 마음으로 박사 2년 차 여름방학 때 독일에 여름방학 인턴을 갔을 때였다. 인턴 일이 끝나고 밤에 홀로 방 안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 연구에 대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논문들을 검색해 보는데 갑자기 문뜩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마지막 챕터를 풀기 위한 아이디어가 하나둘씩 생각이 났다. 과연 이렇게 생각난 아이디어가 맞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를 인도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방법이 맞을 것 같다는 어떤 직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름방학 동안 인턴을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지 방향을 잡은 후에 학교로 돌아와서 차분히 이론을 정리를 해보았다. 너무나 복잡해서 이론을 개발한 나조차도 혼동스러워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확신 또한 생겼다. 그렇게 이론이 정립이 되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일단 그 이론을 확인해야 한다. 나는 주로 Matlab/Simulink라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썼다. 하지만 너무나 이론이 복잡했기 때문에 과연 내가 실수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문제였다. 여러 날에 걸쳐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고생을 할 것을 예상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이론을 하나하나 소프트웨어 입력하고 시뮬레이션 파일을 만들었다. 첫 번째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시도. 당연히 어딘가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컴퓨터 화면 버튼을 누른 순간. 단 한 번에 내가 이론적으로 예상한 결과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내 박사 논문에 쓰일 이론적인 배경들이 완성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오랜 시간 고민한 이론과 시뮬레이션 결과가 완벽하게 일치했던 순간의 만족감은 아직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가끔 지난날 내가 개발한 이론들을 보면 내가 정말 이걸 스스로 고민해서 생각해 건가? 하는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내가 정말 깊은 몰입을 했을 때 한계가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이렇게 박사 졸업은 쉽게 풀릴 줄 알았다. 물론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더 많은 마음고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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