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읽는 엔지니어 Jul 20. 2024

독일에서 인턴 하기

박사 학위를 하는 기간에 나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독일에서 두 번의 인턴을 하면서 총 6개월가량의 시간을 독일에서 보냈다. 독일 인턴을 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학교에서 온 이메일로부터였다. 독일의 기업에서 미국의 대학원생들이 인턴을 할 수 있도록 하는 DAAD rise professional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한번 지원해 볼까? 하면서 해봤던 지원이 합격으로 이어졌고 독일에서 사는 것에 재미를 붙인 나는 그다음 해에도 독일에 인턴을 가게 되었다.


독일에서 했던 두 번째 인턴이 정말 재미있었다. 독일의 아주 큰 공장에서 실험실 자동화를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내가 연구하는 전력전자와 완전히 일치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전기기기를 사용하고 이를 이용해 자동화를 위한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점에서 전기전자공학과의 전공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재미있는 점은 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전공자였던 것이다. 서로 전공이 다르다 보니 황당한 소통의 장애도 자주 있었고 내가 자동화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해도 상대가 알아듣기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턴 생활은 아주 재미있었다. 나 혼자 하는 일이나 다름없었기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이것저것 실험실 자동화를 해보는 것의 재미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도움이었다. 나는 실험실 자동화라는 일을 맡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 공장과 그리고 그곳에서 하는 실험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내가 하는 일에 필요한 셋업이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한 조직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서로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조직 문화는 감탄스러웠다. 누구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독일 기업의 워라밸도 참으로 놀라웠다. 출근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자유롭게 출근해서 퇴근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침범할 만큼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일 보다는 가족과 나의 생활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많이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것을 체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만나면 서로 일이나 공부 이야기만 하지 않고 여행이나 자신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딱히 더 할 일이 없으니 심심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일에 지쳐 번아웃을 겪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느리더라도 쉬지 않고 가는 것이 먼 미래를 봤을 때는 더 좋은 전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에서 인턴을 기간 동안 그야말로 새로운 직장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체험했다.


하지만 나는 어쨌거나 대학원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저녁에 퇴근을 하고 나면 많은 시간 논문을 쓰거나 내 논문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럼에도 나는 주말이 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여행을 떠났다.


독일에서 지냈던 총 6개월의 기간 동안 기차를 타고 주말마다 독일의 다른 도시를 여행하거나 스위스를 여행하곤 했다. 기차역에 앉아 내가 탈 기차를 기다리고 기차에 올라서는 창밖 풍경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여행지에 도착하면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지를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면 어딘가에 앉아 쉬었으며 배가 고프면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사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여행지는 스위스의 베른이었고 내가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은 독일의 어떤 가판대에서 먹었던 빵 사이에 생선이 들어가 있었던 샌드위치였다. 빵에 생선을 끼워먹었던 그 간단한 음식이 어떻게 그렇게나 맛있을 수 있었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여행지 호텔에 묵고 갈 형편은 되지 않으니 거의 대부분이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자유였다. 기차표 한 장을 들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가 가고 싶은 때에,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걸어 다니는 자유. 그곳에서 자유롭게 나의 삶을 누리며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워보고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꿈에 대해서도 상상해 봤으며 나의 과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기차 안에서 그리고 그냥 여행도중 벤치에 앉아서 또는 또다시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그때 나는 헤르만헤세의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뜬금없이 독일에 와서 인턴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는 나 자신과 자신의 삶을 찾아 자신의 길을 떠나는 헤르만헤세 책들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독일에서 마지막 인턴생활을 한지도 이제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독일에서의 인턴생활은 내가 독일에서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것보다 내 삶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나와 전혀 다른 전공을 하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그리고 한국과 미국 사람들과는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때로는 내가 믿는 것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대표적으로 나는 그전에 밤잠을 줄이고 시간을 아껴 공부와 일에 나 자신을 몰입시키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현재의 나를 일과 공부에 너무 많이 희생하면 미래의 내가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주말이 되면 독일과 스위스를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니는 여행은 나에게 정말 큰 한 가지를 선물했다. 이 여행이야 말로 내가 필요해서도, 나의 미래를 위해서도, 내가 해야 해서도 아닌 정말로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나에게 한 선물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한 번도 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중학교 때는 과학고 입시를 위해서, 고등학생 때는 대학 입학을 위해서, 대학 때는 유학을 가기 위해서, 유학을 와서는 학교에 적응하고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서, 그리고 미국 회사에서 인턴으로 적응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는 무언가를 위해서 정신없이 달려온 인생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항상 다음 목표를 위한 기회를 얻은 행운아였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나를 위한 선물의 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독일 인턴을 하면서 했던 주말의 여행들이 유일하게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나를 위한 선물 말이다.

이전 15화 미국 대학에서 조교 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