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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ul 21. 2024

박사 도중 게임 중독에 빠져버리다

논문에 대한 방향을 잡고 아이디어를 완성시키는 박사 초반의 연구 과정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논문 전체에 대한 아이디어가 완성되어 갈 때는 곧 졸업이 눈앞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넘어야 할 산이 있었으니 바로 시뮬레이션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실험을 하는 것을 만만하게 생각했다. 석사 때 실험으로 꽤나 고생을 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하다 보면 되겠지 뭐 이런 대책 없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고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력전자에서의 실험이야말로 학위 과정의 크게 넘어야 할 산이었다. 문제는 나는 실험을 하기 위한 준비가 정말이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실험을 세팅하는 방법부터 수행하는 방법까지 사전 지식이 없는 것은 물론인 데다가 재능도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사실 무언가를 직접 보고 관찰하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생각하고 사고해서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훨씬 더 능숙하다. 게다가 특별히 내가 연구한 것은 실험이 특히 어려웠다. 여기다 더해서 내가 박사 학위의 실험을 시작해야 했을 때는 이미 같은 연구실에 많은 학생들이 졸업을 해 버린 후라서 내가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려움은 때때로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완전히 좌절시키기도 한다. 불행히도 하는 점점 더 후자 쪽으로 기울어졌다. 대체 어떻게 실험을 해서 졸업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한 마음으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한 가지 행운이 따랐다. 내가 알게 된 한 학부생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은 이미 실제로 전력전자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해 봤기 때문에 이론은 부족하더라도 실험을 하는 데에는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석사 학생으로 우리 연구실에 들어오게 되면서 나는 주로 이론을 맡고 그 학생을 실험을 맡게 된 것이었다. 결국 나의 실험에 대한 막막함은 석사 학생이 우리 연구실에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되게 되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이 시기쯤에 도달했을 때 나 스스로 연구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태양열 변환을 위한 다소 복잡한 인터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대체 이러한 연구가 어떤 쓸모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이런 복잡한 회로와 제어방식을 연구해서 미래에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과연 박사 과정을 시작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는지 이러한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나는 연구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잃고 말았던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는 외부적인 요인 또한 있었다. 2020년 초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학교는 문을 닫았고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대학원생인 나도 대다수의 시간을 나의 좁은 아파트 방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원래는 박사 3년 차 여름방학 때에도 인턴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턴마저 취소되었다. 그렇게 외부와의 소통이 거의 없다 보니 더더욱 연구와 박사과정에 대한 회의감이 짙어지다 못해 완전히 연구에 대한 의지를 잃을 때까지 가서도 나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그것은 회피였다. 나는 이시절에 평생 해보지 않았던 컴퓨터 게임을 한 친구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연구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오고 미래에 대한 답답함이 가슴을 죄어올 때면 컴퓨터게임에 빠져들었다. 컴퓨터 게임이 재미있기보다는 그것을 하면 나의 현실에 대해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는 날이 늘어갔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연구에 대한 생각이 나는 게 아니라 컴퓨터 게임 화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긴 터널에 들어온 것 같았다. 연구에 대한 회의감으로 더 이상 연구에 애정을 붙이기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학위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포기하려면 1,2년 차에 했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전공을 바꿔서 아예 석사를 하나 더 받는 방법도 있었다. 지금 하는 연구에 대한 회의감이 많았기 때문에 지도교수를 바꾸고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 방법은 싫어도 참고 지금 하는 연구를 지속해서 졸업을 하는 것이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전공을 바꿔 석사 학위를 하나 더 받는 방법이나 지도교수를 바꾸는 방법은 너무나 리스크가 컸다. 새로운 전공을 택해서 나와 맞지 않을 수도 그리고 지도교수를 바꿔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나는 리스크가 큰 선택을 하기에는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있었고 코로나로 인해 과연 새로운 지도교수를 찾아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그럼에도 많은 고민 끝에 한 가지 결론은 내렸다. 연구를 완성하지 못해 설사 졸업을 못한다 해도 괜찮다. 그러면 그냥 석사로 졸업을 해버리고 나면 끝이다. 반드시 박사학위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반드시 박사를 마치고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박사학위를 못 받아도 괜찮으니 그저 오늘 하루 하는 데까지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다시 한번 연구를 시작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박사학위의 마자막 피니쉬 라인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중간에 멈춰 서서 다른 우회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예 달려야 할 트랙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인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박사과정 시절의 하루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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