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읽는 엔지니어 Sep 07. 2024

나의 일을 만나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일상은 하루가 다른 성장이었다. 마치 마른 수건이 물을 빨아들이듯 나는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빠져지 냈다. 공부했던 모든 이론들을 실제로 관찰하고 반도체 개발에 적용되는 것을 보는 하루하루는 마치 목이 한참 말랐다가 시원한 물을 들이켜는 것처럼 시원했다. 매일 집에 오면 오늘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배워나가면서 입사한 지 7-8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 나는 새로운 일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바로 주로 데이터센터나 전기차와 같이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곳에서 사용되는 DC-DC 컨버터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이런 컨버터는 마치 나의 박사 논문의 컨버터처럼 다소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드디어 대체 왜 하는지 몰랐던 복잡했던 컨버터를 연구했던 나의 박사 시절의 공부가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일을 아주 빠르게 배우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실험해야 하는지, 어떻게 동작하는지, 어떠한 원리로 동작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개발을 할 수 있는지 등등. 처음에는 하나하나 배워나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는 동작 원리에 대해 남에게 자유자재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성장과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 재미가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복잡한 회로를 보고 분석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박사 학위를 복잡한 회로를 했기 때문에 그것에 이미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타고나기를 이러한 것을 재미있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정신없이 이 일에 빠져들어갔다.


퇴근을 하면서도,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에도, 한참 다른 일을 하는 도중에도 심지어 놀다가도 문득문득 그 회로의 동작은 이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그때부터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일이 아닌 일을 했다. 일이 일로 느껴지지 않고 정말로 재미가 있었다.


물론 내가 이렇게 이 일에 빠지게 된 것은 나의 매니저(상사)의 영향도 컸다. 이러한 복잡한 형태의 컨버터는 나의 매니저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내 일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재촉하지 않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내가 알게 된 것이나 고민하고 있는 것을 잘 들어주는 것도 나의 매니저였다. 마치 페이스메이커처럼 내가 더 힘차게 달려 나가도록 도와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전공한 전력전자라는 분야는 전기공학과의 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세부분야를 아우르는 분야이기도 했다. 그리고 개개인의 엔지니어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부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데이터센터나 전기차 등과 같이 높은 전력이 쓰이는 곳에서 쓰는 높은 밀도의 컨버터를 나의 주력 분야로 삼기로 결심했다.


내가 흥미를 느끼면서 동시에 잘 할수 있는 나의 주력 분야를 찾은 기회를 가진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 따른 것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나는 나의 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의 미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자조적인 생각을 자주 하곤 했는데 결정적으로 내가 내 주력 분야를 정하게 된 바탕은 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찾고 나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쌓아나가면서 즐겁게 일을 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지식과 기술이 쌓이는 속도는 가속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입사를 하고 한동안은 그저 평안하게 지금처럼 직장생활을 해 나가면 나의 미래는 탄탄대로로 열릴 것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이전 23화 테크니션에게 배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