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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운 Apr 08. 2024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 모든 아이들이 모여 달리기 시합을 한 날의 기억과, 1등 스탬프가 손등에 찍힌 채 엄마가 싸 온 김밥을 신나게 주워 먹던, 그런 흙먼지 날리는 기억들 모두 나에게 있었던 일이다. 


기억이란 기억하는 대로 기억나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게 나도 모른 채 허구와 사실이 공존하는 기억 속에서 순서를 찾는 일이란 얼마나 쓸모없는 일인가. 책에서도 말하듯이, 기억은 특별함 없이 그저 떠오른다. 


벌써 3년도 일이다. 형이 뇌종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있을 때였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세상이 갑작스레 변하고 있었다. 세상의 변화에 우리 가족은 적응하지 못했다. 장남인 형이 중환자실에서 기억도 못하는 채로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면회를 간 건 형이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다. 당시에는 하루 30분, 2명씩 소중한 면회 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들어가기 전 코로나 검사도 했어야 했다.


형은 기억과 하반신을 담당하는 뇌 쪽에 악성 종양이 생겨 걷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게 아니다. 형은 과거로 돌아갔다. 형은 자신이 왜 중환자실에 있는지, 왜 신생아들이 사용하는 손싸개를 자기 손에 덮어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형 앞에서 울지 않으려 한 달을 준비했다. 형 앞에서 우는 건 의사가 허락하지 않았다. 뇌는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가 형 앞에서 눈물을 보일 때마다, 형은 점점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실제로 몸이 더 안 좋아질 거라고, 심리적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달이나 지나고, 나는 웃는 얼굴로 형을 만났다. 


그때 우리 형은 군인이었다. 전역한 지 이미 한참 된 사람이지만, 형은 나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잘 지내냐? 형 중대 달리기 대회 1등 해서 휴가 받았으니까 집 가서 봐" 


형이 앉아있는 침대 앞 간이 테이블에는 아빠가 사온 김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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