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1장: 승차
#조광필, 도상길
사마천파의 보스 조광필이 전화를 받는다.
그는 주행 중에는 통화를 하지 않는 올바른 운전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다.
“야, 조 사장! 너 뭐하는 새끼야! 일처리를 이따위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도상길 사장님. 일단 진정하시죠.”
열불이 났는지 버럭 화부터 내고 보는 통화 상대를 진정시키려했으나 소용없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어떤 상황인지 몰라? 짭새들이 사방에서 쫓아오고 있다고!”
조광필이 경찰의 출현은 나도 잘 알고 있다고 지금 내 뒤에 적어도 세 명 정도는 따라붙었다고 응수한다.
부가설명을 하자면, 나도 차마 진정이 안 되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있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라 그런지 또 마냥 그렇게 기분이 안 좋지만은 않다고 덧붙인다.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됐고! 다 때려치워! 애초에 네 놈 같은 족보도 없는 새끼들이랑 합쳐보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글러먹은 거야.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 ……아, 씨발 진짜 똥 밟았네.”
“저기, 도 사장님……. 우리 사마천이 족보 없고, 다른 조직에 비하면 사업아이템도 적고 규모도 작지만, 나름 건실한 조직이에요. 그리고 똥 밟았다는 표현은 좀 거북하네요.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다른 건 다 참아도 직접 일군 조직을 욕하는 것과 식사를 앞둔 시간에 용변이 대화 주제로 오르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는 조광필이 항변한다.
그리고는 방금 본인 입으로 잘못된 생각을 했다고 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을 생각한 사람 잘못 아니냐고 논리적으로 반항한다.
“……뭐? 조 사장 당신, 말 다 했어? 지금 상황이 이 꼴로 돌아가는 게 형제캐피탈 탓이라고?”
할 말은 더 많지만, 지금 운전 중이라 하나 뿐인 정신을 온전히 통화에만 쏟을 수 없다고 조광필이 대답한다.
그러자 형제캐피탈 도상길 사장은 갑자기 숙연해지더니 대뜸 화부터 내서 미안하다고 중얼거린다.
형제는 닮는다더니 도상길은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동생, 도상준과 비슷한 계통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조울증이다.
자기도 지금 경찰차를 피해 운전 중인데, 같은 도망자 신세끼리 굳이 열 내면서 싸우지 말잔다.
급기야 자기는 다 포기하고 어디론가 숨고 싶단다.
따로 염두에 둔 곳은 없는데 기왕이면 음식이 입에 잘 맞았으면 좋겠단다.
“열 내고 화낸 건 제가 아니라, 도 사장님이죠. 전 화 안 났어요. 그리고 아까 보니까 음식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 같던데요? 잘 맞는 음식이라도 좀 가려보는 게 어떠세요? 많이 가리셔야 할 거 같은데.”
조광필은 뚫린 입으로 태연하게 바른 말을 한다.
세상만사 어떤 말이던 간에 바른 말만 해야 한다지만,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그의 말에 도상길 사장은 다시 화가 치민다.
“……야, 조광필, 너 지금 어디야? 씨발, 내가 도망가더라도 네 주둥이는 자르고 가야겠다.”
“112에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아마 그쪽에서 친절하게 알려줄 겁니다. 지금 제 뒤에 잔뜩 있거든요!”
조광필은 백미러를 한가득 채운 경찰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 도로를 벗어난다. 그대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다행히 평일 오전 시간대라 행인이 거의 없다.
도상길 사장은 목과 얼굴이 터져라 외친다.
“계속 깐족깐족!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이제 보니까 부하 문제가 아니라 당신 문제였네! 사장이 이 모양이니 부하직원이 뭘 보고 배우겠어.”
“여기서 제 직원얘기가 왜 나옵니까?”
조광필이 속도를 높여 텅 빈 골목을 빠르게 지나간다.
“오늘 접선 장소랑 시간! 당신 직원이 직접 전달한 거 아니야?”
“……그런데요?”
“뭐긴 뭐야! 중간에 정보가 새나간 거겠지!”
두 범죄조직의 수장들은 사실 정보가 새나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정보가 잘못된 곳에 잘못된 방식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다.
둘은 서로의 조직을 탓하며 좁은 골목길 운전을 이어간다.
그리고 몇 초 후.
쾅!
소리와 함께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사마천파 조광필 사장은 자기가 들이받은 자동차를 본다. 고급 세단이다.
운전자를 본다. 민머리다. 배가 볼록하니 나왔고, 허리가 적어도 40인치는 되어 보인다.
이건 아주 너그러운 시선으로 판단한 것이고, 조금 냉정하게 보자면, 44인치는 거뜬히 될 듯하다. 그리고 왠지 도 씨라는 꽤나 특이한 성씨를 가졌을 듯하다.
무엇보다 형제캐피탈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것만 같다.
형제캐피탈 도상길 사장도 뒷목을 부여잡은 채로 골목에서 튀어나온 자동차를 흘겨본다.
역시 고급 세단이다. 운전자를 째려본다. 운전자는 사십대 남성이고 아주 평범한 인상의 소유자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그럼에도 평소 사람 보는 눈은 또 까탈스러워 여간 평범한 사람은 눈에 차지 않을성싶다.
거기까지 생각한 두 남자는 그대로 핸들에 머리를 박고 정신을 잃는다.
자동차 경적소리가 이어진다.
범죄자들을 쫓아 골목골목을 배회하던 경찰들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우렁찬 소리다.
#정성도
이제 막 식구가 된 사람과 식구였던 사람들이 경찰에 체포된 순간, 정성도는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간다.
그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샛노란 헤드폰과 마스크는 북적한 서울거리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몇몇 행인들이 정성도를 훔쳐보지만, 그건 두 아이템의 색깔을 일치시킨 남다른 깔 맞춤 센스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렇게 <사마천X형제캐피탈>중 유일하게 경찰의 수사망을 벗어난 정성도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2호선 구의역 역사 안으로 들어간다.
변의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일주일 만에 찾아온 소식이라 절대 놓칠 수 없다.
잠시 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벗과 해후하고 지하철 화장실을 나선 정성도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다.
역사 안을 둘러보지만 경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유달리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다.
불과 몇 분전 이곳에서 아끼는 막내 조직원 문지성이 경찰에 잡혀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리 없는 정성도는 다음 행동을 생각한다.
그러다 일단 사무실로 돌아가 경찰들이 들이닥칠 상황을 대비해 중요한 문서나 물건을 챙겨 나와야겠다고 결론짓는다.
'근데 사무실에 중요한 게 있었나?'
뭐, 아무튼.
정성도는 문지성이 하려했지만 부득이한 사정―체포―으로 하지 못했던 행동을 차분히 이어간다.
지하철승차권을 구입하고 승강장으로 내려간다.
#강승호
아버지의 장황한 설명을 떠올리며 지하철 승차권을 구입한 소년은 무사히 승강장에 도착한다.
연신 주위를 둘러본다.
모든 것이 새롭다.
북적거릴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무신경하게 스쳐지나가는 게 마냥 신기하다.
서로에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고 걸음을 서두른다.
벽면에 들러붙은 광고판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때, 머리 위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곧 열차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지축이 흔들리듯 들썩들썩 거대한 물체가 쏜살같이 들어선다.
금요일 오전 10시 59분, 구의역.
소년이 지하철에 오른다.
그리고 대략 20분 후, 소년은 인질이 된다.
더불어 소년과 같은 역에서 탑승한 삼십대 중반의 여성과 노란색 헤드폰과 마스크를 한 젊은 남성, 그 외에 열차에 탑승하고 있던 꽤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질을 자처한다.
인질극을 벌인 범인은 지하철을 운행하는 철도기관사다.
그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만, 어찌 됐든 그 사람이 범인이다.
#문도현
오전 11시 10분.
텅 빈 강력계 사무실에서 대화 상대를 찾고 있던 문도현 경사는 방금 전 2호 유치장으로 잡혀 들어온 남자의 신상 정보를 확인한다.
그리고 남자의 범행이 담긴 역사 입구 계단 CCTV 영상을 시청한다.
문도현 경사는 흥미롭다는 듯 영상을 반복해가며 응시한다.
평소 근무할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한껏 집중한 눈이다.
시청을 마친 문도현 경사가 철창 안에 갇혀있는 남자에게 묻는다.
“문지성이라고 했나?”
“…….”
고통스러워 보이는 남자의 표정을 읽어낸 문도현 경사는 확인 차 다시 묻는다.
“왜? 많이 아파? 의사라도 불러줘야 되나?”
“……아니요.”
문지성이 힘없이 답한다.
잔뜩 웅크린 모습이 왠지 짠해 보인다. 얼굴에는 무력감까지 드러나 있다.
“그럼 왜 그래? 어디 불편해?”
“배가 불편해요.”
“……큰 거? 화장실 가겠다는 거야?”
평소 문도현 경사답지 않게 무척이나 친절한 태도이다.
“아뇨. 그 배 아니에요. ……배고파요.”
여전히 고통스러운 얼굴이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본인 상태를 가감 없이 공유한 문지성은 번쩍 손을 들고 묻는다.
“형사님, 설렁탕은 언제 먹나요?”
평소의 문도현 경사였다면 버럭 화를 내며 닥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라는 진심어린 충고를 할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신 그는 문지성에게 아침은 먹었냐고 묻는다.
문지성은 김칫국에 밥을 두 공기나 말아먹고 나왔지만, 하달 받은 업무를 너무 열심히 수행하고 계획에 없던 일까지 하고 와서 예상보다 서둘러 칼로리를 소비했다고 찡찡댄다.
아직은 괴팍해질 성격이 남아있을 만큼은 꽤나 나긋한 문도현 경사가 문지성에게 그 뜻인즉슨, 칼로리를 보충할 음식물을 섭취하고 싶은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문지성은 활짝 웃으며 그렇다고,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라고, 어쩜 그리 찰떡같이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느냐며 역시 경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감탄한다.
과찬이라고 손을 내저은 문도현 경사가 익숙하게 유치장 문을 열고 손짓한다.
“자, 나와. 같이 라면이나 먹게. 잘 익은 김치도 있어.”
문지성이 유치장은 오랜만에 와도 참 좋은 곳이라며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무척이나 공손한 어조로 혹시 아침에 김칫국을 먹었다보니 김치 일일 섭취량을 꽉 채워서 그러는데 잘 익은 김치를 먹는 대신, 잘 익은 라면을 두 배로 먹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친절한 문도현 경사는 좋을 대로 하라고 대답한 뒤, 익숙하게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가져와 불을 켜고 냄비에 물을 가득 올린다.
그리고 역시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무실 찬장에서 라면을 꺼낸다. 4개다.
“아아, 형사님. 물이 너무 많은 거 같은데요?”
문지성이 라면 조리 철학을 밝힌다.
#도상준, 한재천
문지성이 갇혀있던 유치장 옆집인 1호 유치장에 갇혀있던 형제캐피탈 도상준 전무가 스멀스멀 식욕을 자극하는 라면스프 냄새에 잠에서 깬다.
철창 밖을 내다보자 형사가 어떤 남자와 함께 라면을 먹고 있다.
게걸스럽게 잘도 처먹는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사람이다.
동료 형사인가 싶어 겁이 났지만 도상준 전무는 용기 있게 소리친다.
“저, 형사님! 저는 라면 안 줍니까?”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문지성이 도상준 전무의 부푼 복부 지방을 한심스런 눈초리로 본다.
민머리배불뚝이 뒤편으로 새우잠을 청하고 있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배불뚝이의 경이로운 풍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질겅질겅 라면을 씹던 문도현 경사가 말한다.
“아침은? 먹었고?”
도상준 전무는 그간 조우했던 다른 형사들과는 달리 따뜻하게 끼니 걱정을 해주는 문도현 경사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는 이곳에 방문하기 전에 컵라면을 먹었다고 대답한다.
“아, 그래? 그럼 라면은 별로 안 땡기겠네?”
“네!!??”
도상준 전무가 기겁을 한다.
여태 살아오면서 그런 어이도 없고 논리라고는 없는 발언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
“저는 라면 또 먹어도 상관없어요! 라면 엄청 좋아해요!”
그러자 문도현 경사의 표정이 싹 굳는다.
“……야, 경찰서가 네가 좋아하는 음식해주는 곳이야? 고향 내려왔어? 이 새끼가, 어디서.”
형사의 절망적인 대답을 들은 도상준 전무는 어쩌면 앞으로 라면이 싫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슬픈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직업 특성상 유치장 방문이 익숙한 감이 있지만, 매번 같은 경찰서로 간 것은 아니니 고향이라 말하는 건 제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굳이 전하지 않아도 될 말을 전한다.
반면, 도상준 전무와의 협업―구타―을 통해 둘도 없는 동료가 된 사마천파 행동대장 한재천은 유치장 구석에 몸을 구긴 자세로 깊은 잠에 빠져있다.
경찰에게 쫓길 때는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온몸이 흥분으로 가득했지만, 체포된 순간부터는 가득하던 긴장감이 사라져 잠이 쏟아졌다.
커튼처럼 두 눈을 가리는 앞머리가 강력계 사무실 형광등 불빛을 차단하는데 용이하다.
한재천은 조직의 막내 문지성이 불과 3미터 떨어진 곳에서 허겁지겁 라면을 흡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유치장 동기의 숙면에 도상준 전무는 다소간 힘이 빠지지만 쭈쭈바를 쥐어짜듯 다시 한 번 용기를 짜내어 격렬히 요구한다.
“형사님! 밥 먹고 합시다!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문도현 경사는 자기가 사실 형사는 아니지만 강력반 사무실에 앉아있고 게다가 사복 차림이니 남들 눈에는 그저 형사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겠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남들의 시선과 생각까지 갱생시킬 마음은 없던 터라 그는 그냥 질색하는 얼굴로 응대한다.
이번엔 얼마간의 진심을 담는다.
“입 다물어, 씹새끼야. 그냥 닥치고 너도 잠이나 주무세요.”
뒤에 이어지는 말로는 전신 구석구석 세심하게 얻어맞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떠들지 말라는 아찔한 경고이다.
식사를 요구했다고 형사로부터 잠을 청하라는 생뚱맞은 권유를 받은 민머리는 억울하다.
자기가 개새끼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씹새끼까지는 아니라는 점을 소명하고 싶다.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자기객관화가 잘 된 그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언사다. 게다가 그냥 얻어맞는 것도 아니고 세심하게 구석구석이라니.
민머리가 입을 꾹 닫는다.
반면, 문도현 경사와 마주보고 앉아 라면을 먹고 있던 문지성이 뜨끔해한다.
가끔 기분이 좋지 않은 큰형님 조광필에게 간간이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이나마 형사의 말대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그렇게 되면 라면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지 않기로 한다.
음식은 입으로만 섭취가 가능하다.
우걱우걱.
문지성이 정신없이 라면을 흡입한다.
도상준 전무는 잠을 청하기 위해 슬그머니 유치장 벽에 기댄다. 평소 그는 공무원의 조언을 잘 수용하는 편이다.
“형사님, 근데 저기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은 왜 온 거예요?”
무사히 남은 라면을 다 먹어치운 문지성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유치장을 건너다본다.
다소 신경질적이던 그의 표정은 어느새 공손해진 모습이다.
라면을 배터지게 먹게 해준 사람에게 대드는 건 등신이나 하는 짓이다.
문지성은 바보일 뿐, 등신은 아니다.
“사람 팼어. 그것도 둘이 같이. 치사한 놈들.”
정정당당하지 못한 사람을 제일가는 악질로 보는 문도현 경사가 치를 떤다.
“그럼 저는요?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데요? 저는 칼까지 휘둘렀는데.”
그렇게 묻는 문지성은 그제야 문도현 경사의 목에 걸린 공무원증을 본다.
이름이 ‘문’도현이다.
‘문?’
혹시 죽은 형이 환생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직접 라면도 끓여주고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도 해주며 상냥하게 대해주는 게 아닌지, 문지성은 잠시 뭉클해진다.
이번에도 역시 하늘로 간 형 생각이 절로 떠오르지만, 딱 거기까지다.
더 이상의 기억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아, 그거?”
문지성의 질문에 문도현 경사는 별 걸 다 물어본다는 식으로 싱겁게 대답한다.
“넌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일을 시키더라도 배는 두둑하게 채워주고 시켜먹어야지. 안 그래?”
그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이해가 남들만큼 빠른 문지성은 참으로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신다며 칭찬하고는 냉큼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아, 맞아.”
문도현 경사가 중요한 질문을 까먹었다는 듯 다시 입을 연다.
“평소에 기억력이 좋은 편인 거 같아? 최근에 본 것들 잘 기억하는 편이야?”
‘최근’이라는 기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래도 잘 기억하는 편인 거 같다고 문지성은 되도 않는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찰 앞에서 하는 거짓말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배도 채웠겠다, 문지성의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