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나이 많은 신규였던 나는 당시 우리 부장님을 매우 존경했다. 거북이 같은(죄송합니다..) 외모의 소유자였던 그분은 행동도 거북이 같았다(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느릿느릿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고 부원들을 챙겨주셨지. 목소리를 거의 들을 일이 없을 정도로 말수가 적고 양반 같으셨던 분. 신규가 뭘 얼마나 잘하겠냐만 내가 하는 시도 모두 '괜찮다', '잘한다' 해주셨던 분. 어느 날 어떤 부원이 관리자에게 (실수 크기에 비교할 때) 꽤 호되게 지적을 받자 거북이 부장님은 내가 본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관리자를 찾아가 언성을 높이셨다.
나는 그분이 참 좋았다.
옆자리 동료가 다 경쟁자였던 정글 같던 업무 환경에서 탈피해서 느지막이 가지게 된 새 직장에서 저런 멋진 상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사교성이 없는지라 부장님께 말 한마디 제대로 걸어본 적은 없지만 부장님과 오래오래 같이 일하며 배우고 싶었었다. 그러나 다음 해 부장님은 직장을 옮기시게 되었다. 송별회로 식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차를 마시고 역으로 걸어가며 아쉬운 마음에 부장님께 애써 말을 걸었다.
"부장님, 언젠가 저도 부장님 나이 때가 될텐데요. 부장님 같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뭘 해야 할까요?"
바보 같은 질문에 부장님은 연신 거북이 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그대로만 하면 나보다 더 잘하실 거예요."라고 하셨다. 그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나의 채근에야 간신히 한 마디를 더하셨고, 그 말이 중간관리자가 된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말은 줄이고, 돈은 쓰고, 일은 많이 하시면 됩니다."
비록 그분이 만드신 말은 아니지만, 내겐 이 말만큼 직장에서 직무 수행의 준거가 되는 말은 없었다. 특히 관리자가 되어갈수록 부장님의 미소 담긴 그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중간관리자가 되어보니 별것도 아닌 말인데 내 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리액션하고 웃어준다. 나이가 들수록 본인이 유머감각이 있다고 착각할만하다 싶다. 그래서 더 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여기에 하나 더해서 귀를 열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쓸데없이 고집을 세우지 말 것, 사람들의 제안에 귀를 기울일 것, 기꺼이 수용하고 시도해볼 것.
오늘의 카레도 그런 맥락에서 성공적이었다. 브로콜리 요리로 평소 잘 시도하지 않는 레시피가 있을까 - 스치듯 던진 말에 데친 브로콜리를 비건 마요네즈를 찍어먹거나, 시즈닝 해서 오븐에 구워보라는 아이디어를 받았다. 브로콜리를 시즈닝? 구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도했는데, 와 이거 맛없없(맛이 없을 수 없는 맛 ㅎㅎ) 조합이네!
새삼 잘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말은 줄이고, 돈은 쓰고, 일은 많이 하고, 귀도 열고. 멋지게 늙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못나게 늙어가진 않기를. 그럼 또 알아? 이렇게 맛있고 멋진 브로콜리 카레를 먹을 수 있을지도!
<< 준비물 >> 1인 분량
<카레용>
채식 카레분말가루
양파 1개
올리브 오일 약간
소금, 설탕
<토핑>
브로콜리 1/2개
콜리플라워 1/2개
견과류 약간
올리브 오일 2Ts
소금 1Ts
후추 약간
(자유) 허브솔트, 스모크드 파프리카 파우더, 크러쉬드 레드페퍼, 바질가루 등
1. 카레를 준비한다. (가능하면 먹기 전날 끓여두고 하루 묵혀 먹는 것을 추천한다.)
가. 양파를 채 썰어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서 약불에 오래오래 볶는다. 카라멜라이징을 목표로 갈색이 날 때까지 볶아내는 것을 추천한다.
나. 카레가루를 녹인 물을 팬에 붓고 3분 정도 끓이며 간을 확인한다. 간이 맞지 않으면 소금이나 설탕을 이용하여 간을 한다. (풍부한 맛을 내고 싶다면 베지스 톡을 반쪽 넣는 것도 추천한다.)
2. 토핑을 준비한다.
가.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를 한입 크기로 다듬어서 보울에 담고 충분히 잠길만큼의 물과 소금 1Ts을 넣어 여러 차례 헹군다.
나. 브로콜리들과 견과류를 소금(허브솔트 가능)과 올리브 오일로 버무려 오븐(에어 후라이어, 오븐 토스터 등)에서 고온(200도씨)에서 15분 정도 구워낸다. 이때 중간에 한두 번 뒤섞어 골고루 익을 수 있도록 한다. 2분쯤 남았을 때 스모크드 파프리카 파우더를 뿌려 마저 구워도 맛있다.
다. 완성된 토핑에 후추와 크러쉬드 레드페퍼, 바질가루 등을 뿌려 완성한다.
3. 플레이팅을 한다.
: 밥 위에 카레와 토핑을 얹으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