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훵트의 손자는 웅변의 달인이었다. 특히 근거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여 설득력 있는 말로 윤색하는 기술은 신기에 가깝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말일지라도 그가 조금만 비틀어 놓으면 진실이 되어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말 한마디로 슬픔을 기쁨으로, 희열을 분노로 만들었다. 그가 바다를 향해 던진 몇 마디 말에 고래가 감동하여 춤을 췄다는 말도 들려왔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의 말에 중독되기 시작했고,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마냥 고개만 끄덕였다. 누군가는 그의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없애 주었다.
한 사회심리학 교수가 그를 사기꾼의 전형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를 따르는 추종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언변술사가 되고 싶은 어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녹음해 아침저녁으로 반복하여 들었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차 속에서는 물론이고 영업장에서도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의 고조할아버지는 주둥아리 난동을 부린 개망나니, 생양아치였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조할아버지가 발휘했던 거침없고 현란한 언변 본능이 그의 핏속에도 흐르고 있어 자신이 가문의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은근히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좀 더 진화된 언변술을 개발하여 고조할아버지의 한을 풀어 줘야겠다는 책임감까지 느꼈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마침내 최고의 달변이 된 것이다.
2. 돈 잘 버는 마술사
“세상을 뒤집고 파헤쳐 진실을 찾습니다. 만사의 시시비비를 따져 참과 거짓을 가립니다. <세상만사 이판사판>, 오늘의 이슈는 이미 예고해 드린 대로 ‘암호화폐는 화폐인가?’입니다. 오늘도 이 시대 최고의 논객, 이판님과 사판님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나르훵트의 손자는 그를 사기꾼의 전형이라 비난했던 사회심리학 교수와 손잡고 <세상만사 이판사판>이란 시사토크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유명한 전직 여성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사회심리학 교수는 이판, 자신은 사판이란 닉네임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구독자 수가 9백만 명을 넘어 천만에 가까웠고 동영상 조회 수는 편당 수백만 명을 웃돌았다. 유튜브로 그가 벌어들이는 수입이 엄청나서 사람들은 그를 유튜브 재벌이라 부르기도 한다.
“솔직히 여기에 오신 분들은 골 때리는 궤변을 듣고 싶어 오는 것 아닙니까? 예민한 사회적 이슈를 쉽고 편하게 접근하여 고담준론을 펼치는 것이 우리들의 목적이지만, 그 수사적 방법은 바로 궤변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불편을 제거합니다.”
실시간 댓글이 쏟아졌다.
‘맞아. 여기 오는 사람들 중에도 골다공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을 텐데, 뼈 때리는 말을 하면 안 되지.’
‘사판님, 님의 고조할아버지가 주둥아리 난동을 부린 희대의 광인이었다는데, 좀 더 빡세게 혀를 놀려봐.’
‘도덕군자들은 쫌 꺼져 주시지.’
‘우리는 이판님과 사판님이 개판, 난장판, 아사리판을 벌어야 살판납니다.’
‘사판님의 개멋진 주둥아리에 뽀뽀하고 싶당~’
‘이판님, 사판님을 국회로!’
<세상만사 이판사판>의 인기 비결은 간단하다. 이판과 사판이 티키타카하며 놀아나는 말장난이 재밌기 때문이다. 특히 뻔한 거짓이나 허상을 그럴듯하게 분칠하고 풀어내는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그것이 마치 진실인 양 진정성을 담아서 진지하게 말하는 사판의 연기력이 발휘되거나, 학자적 양심을 앞세우며 근엄한 위선을 보이는 이판의 뻔뻔한 상판대기가 줌 업 될 때마다 댓글이 폭발한다. 당당한 동문서답과 황당무계함의 빈도가 높을수록 실시간 동시접속자 수는 늘어나고, 가면을 벗고 정색을 하며 정말로 참말을 하면 수만 명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사람들은 진실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두 얼간이의 헛소리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유치하고 천박한 궤변을 넉살 맞은 익살이라며 배꼽을 잡는가 하면, 허무맹랑한 뚱딴지 놀이에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피곤함과 짜증을 덜어낸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나르훵트의 손자, 사판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지를 찾아내어, 그들이 듣고 싶은 말만 푸짐한 양념을 곁들여 요리해 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달변이라 추켜세우며 그의 언변 본능을 더욱 부추긴다. 또한 그의 깐부 사회심리학 교수, 이판은 학자의 포지션을 내세우면서 사판의 궤변을 비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사판의 궤변을 최대로 촉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사실 그는 궤변을 달변으로 보이게 하는 보조자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의 허접한 궤변을 귀담아듣고 깊이 새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얼굴이 두껍고 개기름이 번지레한 사람들이었는데, 나르훵트의 손자는 그들을 위해 궤변 학원을 설립, 그의 언변술을 전수했다.
3. 마술사에 홀린 로봇
“저 사람들은 왜 길거리에 서서 아침부터 90도 각도로 절만 하고 있어요? 누구에게 인사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사방팔방으로 절만 하는데, 꼭 인사하는 로봇 같아요.”
“말 잘해서 권력을 잡아 잘 먹고 잘 살아 보려는 사람들이란다.”
“그럼 말을 해야지 왜 절만 하고 있어요? 옷은 허름한데 얼굴에는 기름기가 번지르르해요. 부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뭔지 밸런스가 맞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른 것 같아요.”
“아빠가 지금 궤변 학원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으니 헷갈리게 하지 마라.”
“아빠는 얼굴에 개기름도 없고 두껍지도 않은데, 그 강의 듣는다고 권력을 잡을 수 있겠어요? 인두겁을 쓴 로봇도 아니잖아요!”
“사람을 얼굴로 평가하면 안 된다.”
“근데요, 아빠가 듣고 있는 그 인터넷 강의 있잖아요. 방금 검색해 봤는데, 그걸 들으면 가슴에는 허풍만 차고 머리는 교활해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기 딱이래요. 권력도 좋지만 아빠가 교활한 허풍쟁이가 되는 건 싫어요. 그 수강료로 내 폰이나 바꿔 주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