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을 도와라
2009년 내가 우간다로 봉사활동 간다고 하자 당시 주변의 반응은 꽤 부정적이었다.
“아프리카는 여행 많이 다녀본 사람들이 맨 마지막으로 가는 곳인데 처음부터 거길 간다고?”
“봉사활동이 하고 싶으면 꽃동네 가서 장애인들을 도와줘라”
“한국에서도 어려운 사람이 천지야”
3학년을 마치고 휴학하는 거대한 행렬의 주축은 어학연수를 떠나는 사람들이었는데, 내 나름대로는 영어권 국가로 봉사활동을 가서 지내다 보면 영어도 늘지 않을까 라는 나름의 계산도 있었다. 당시 아프리카 봉사활동은 꽤 매력적인 스펙이기도 했고, 내돈 내고 하는 봉사활동이라고 해도 어쨌든 선진국에서의 어학연수보단 저렴했다. 무엇보다 당시 동아시아권을 벗어나 본적 없는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리라는 짜릿한 기대도 컸다. 내가 우간다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고작 6개월 단기 봉사 기간동안 내가 뭔가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단지 나는 아프리카가 정말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것처럼 기아, 질병에 허덕이기만 하는 곳인지, 사람이 살 환경이 못되는 대륙인 건지 무척 궁금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말 많다. 나 역시도 그 중 하나였고. 그래서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해외로 봉사활동을 간다고 했을 때 불편한 시선들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얼른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할 내가 휴학하고 해외봉사를 준비하는 것은 충분히 의아하게 보일만한 행동이었다. 내가 처한 환경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조차 남들의 걱정을 사야 하는 것인가 고민도 많았다.
어린시절, 우리 동네에는 나와 내 동생과 마찬가지로 할머니 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여자아이가 길에서 울고 있는 걸 본 내 동생은 아이에게 동전을 주며 울지 마라고 위로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 외할머니는 동생에게 “그 집 새끼들은 즈그 아부지가 돈도 보내 준단디, 니가 뭐한디 그 집 새끼한테 돈을 줘야?”하며 혼을 냈다. 사위로부터 양육비조차 받지 못한 채 손녀들을 키우는 팍팍한 현실에서, 내 동생의 ‘분수에 맞지 않은’ 측은지심은 애초에 생겨서는 안될 마음이었다.
나는 내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결국 우간다로 떠났다. 얼른 졸업해서 취업을 하는 것이 내가 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겠지만 굳이 내돈 내고 하는 봉사활동을 한데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건 꼭 해보겠다는 오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