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우간다의 첫인상
2009년 9월, 에미레이트 항공을 타고 두바이를 거쳐 우간다에 도착했다. 당시 탑승했던 비행기에서 한국인 여성 승무원을 만났는데 친절하게도 사진도 잘 찍어주시고, 우간다로 간다고 하니 그곳은 한국의 읍내보다 발전이 덜 된 곳이라며 기내 과일이며 음료며 여러가지를 싸주셨다. 기내 물품들은 내가 캄팔라(Kampala)에서 마사카(Masaka)로 이동하여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승무원 취업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내가 키가 작아서 그건 어렵겠다고 대답하니 키가 작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비행기 안에서 유럽계 남자 승무원으로부터 중국인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이는 훗날 아프리카에서 맞닥뜨릴 수많은 "차이나" 함성의 기원이기도 했나보다.
관광비자로 간단하게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당시 국제워크캠프의 우간다 협력 기관이었던 UPA(Uganda Pioneer's Assosication)의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관 차량은 따로 없었고 공항-시내, 시내-UPA를 택시로 계속해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이동하는 내내 총천연색의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몸짓도 커서 마치 한국인이 웨이브 타는 느낌을 주었다. 건물이며 흙이며 하늘이며 무엇하나 모노톤이 없었다. 원색으로 칠한 건물, 파란 하늘, 붉은 흙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창문 밖을 지나며 보이는 나무를 가리키며 직원에게 "아, 저게 바오밥 나무야?"하고 물으니 박장대소를 하며 바오밥 나무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UPA의 오피스에 딸린 봉사자 숙소는 와키소(Wakiso) District의 난사나(Nansana)라는 곳에 위치했는데, 캄팔라에서 와키소 방면 미니버스를 타고 난사나 Stage에 내려서 2분 정도 걸으면 바로 찾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활동할 지역은 마사카(Masaka)이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 난사나에서 머물다가 마사카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짐을 풀 수 없었다. 이곳은 내가 지낼 곳이 아니란 생각에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어색했고 외국인들과 생활하는 것이 난생 처음이기도 해서 긴장이 됐다. 무엇보다 영어에 서툴러서 방문을 나서는 것조차 겁이 났다. 나한테 말시킬까봐ㅜㅜ
당시 숙소에는 한국인 외에도 일본인, 대만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영국인, 스페인인 등 다른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한국인 자원봉사자 수가 나를 포함해서 9명 정도로 역대급으로 많았다. 나는 어서 한국인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내가 도착한 날 공교롭게도 그들이 모두 진자(Jinja)로 래프팅을 떠난터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친절한 대만인 봉사자들이 씻는 방법, 빨래하는 방법들을 알려주었다. 숙소에는 냉장고가 2대 정도 있었는데 각자 식재료를 구입해 보관하고 각자 요리해 먹는 방식이었다. 오래된 냉장고는 정전이 잦아서 냉기가 살짝 도는 그런 식이었고, 부엌의 물 또한 단수가 잦아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보는 건 드물었다. 샤워실은 아예 제리캔(Jerrycan)에 담긴 물 20L를 들고 들어가 물을 받아서 샤워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화장실은 푸세식인데 얼마나 깊이 팠는지 툭~ 하는 소리가 얼른 안들렸다.
나름 한국의 시골마을에서 농사일도 도우며 거칠게 자라난 나지만 저 물로 설거지를 한 그릇이 깨끗할까, 저 물로 샤워하다 병 걸리는 것 아닐까 갖은 의심이 들었다. 침대에 쳐진 모기장 사이로 모기가 들어와서 무는 것 아닐까 걱정하며 약을 뿌리고 바른 후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모기장을 매트리스 밑으로 더 쑤셔 넣고서야 도착한 첫날 밤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자정이 되어 가자 밖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봉사자들은 밤이 되면 오토바이 택시인 보다보다(Bodaboda)를 타고 캄팔라 시내에 나가 클럽에서 놀다 들어오거나, 근처 가게에서 술을 사와 숙소에서 술판을 벌이는 것이 하나의 밤문화였다. 시차 적응도 잘 안되고 바깥은 시끄러운데 조용히 해달라고 말할 용기도 나지 않아 당시 한국에서 가져온 PMP를 켜 한국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하였다. 나도 술 좋아 하는데, 나도 대화하고 싶은데... 한국인들도 없는 마당에 영어도 잘못하는 내가 술자리에 끼어들기란 소심한 내 성격 상 큰 도전이었고, 나는 그 도전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첫날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