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ivia. Lapaz
배가 너무 아프다...
새벽에 잠을 몇 번이나 설쳤다.
이때까지 말짱하던 내 배때기가 갑자기 미친 듯이 요란을 치기 시작했다.
평소에 잠은 정말 잘 자던 내가 새벽에 몇 번이나 설쳤다.
속이 너무 안좋아 밤새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가서
먹은 걸 다 토해내고 또 토해냈다...
수차례 토를 하는 내 몸이 걱정되기보다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와이나포토시 등반이었는데...
이걸 미뤄야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게 정말 속상했다.
하지만 다음 일정이 있기도 했고
지금 미루면 다신 못할 것만 같은 쓸데없는 느낌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몸을 씻어내고
배낭을 챙겨 투어사로 발길을 옮겼다.
역시 한국 사람...
그 힘든 몸을 이끌고 투어사에 늦지 않기 위해 빨리 왔지만
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한국 사람인 나뿐이었다...ㅋㅋ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온 세계적인 등산로를 다니시는 60대 어르신,
등산이 처음인 여자 친구를 꼬셔서 함께 온 프랑스 커플,
범생이 느낌이 나는 독일에서 온 나보다 조금은 더 어려 보이는 건전한 친구
2박 3일을 함께 등반을 할 나의 전우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첫 번째 목적지인 베이스캠프에 도착을 했다.
차를 타고 이동을 했지만 벌써 고도가 4,800m라고 한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식사를 차려뒀다고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고기, 수프, 야채 등등 많은 음식들이 있었지만
이 높은 고산에서 내 상태는 더 악화되어
내 입에는 바나나밖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바나나를 먹고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잎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조금 달래러 바깥공기를 마시러 나갔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내 상태도 안 좋은데
밖에는 눈이 끊임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나나로 허기진 배를 조금 채우고
우리는 해발 5,200m에 있는 두 번째 베이스캠프로 출발했다.
400m라는 숫자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숫자이지만
그 높은 곳에서 밥 한 끼 못 먹고 눈바람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와이나포토시에 왔다는 방문록이 있었다.
영어로 내 이름을 적으려 했다가...
한국말이 하나도 없는 방문록에 뜬금없는 애국심이 불타올라
영어를 지우고 얼음이 된 내 손으로 내 이름 세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다음에 한국인이 와서 방문록을 넘기다 한글을 보면
그들도 한국어로 적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한께 방문록을 덮고 다시 눈 속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등산을 하고 해가 질 때쯤 두 번째 베이스캠프에 도착을 했다.
배고프고...
춥고...
힘들고...
온수조차 안 나오는 그곳에서 찬 물로 얼굴에 묻은 때만 씻겨내렸다.
그리고 또 바나나와 코카잎차를 홀짝홀짝 마시는데
뭔가... 몸이 으슬으슬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자도 3시간 정도밖에 잘 수 없었지만...
도저히 몸이 안 좋아서 잠이 들지가 않았다.
몸이 너덜너덜 해진 채 좀비처럼 일어나
가이드에게 찾아가서 내 상태를 말하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여기까지 온 나를 보며
고산병일 거라고 코카잎차를 한 잔을 주면서
정말 듣기 싫은 악몽 같은 얘기 해줬다.
고산병이야…이거 마시고 안되면 내려가
분하고 속상해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븐이었다…
사실, 남미에 오기 전부터 하도 많은 사람들이 고산병 고산병 노래를 불러서
그게 뭔데 자꾸 그러냐고 고산병에 대해서 여러 번 알아봤었다.
건강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들었었다.
몸살이 오기도 하고 심각하면 생명에 위험도 와서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까지..
이때까지 남미 어디를 가도 고산병은 오지 않았기에
당연히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 믿고 왔는데 고산병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라니...
오랫동안 꿈꿔왔던 내 작은 꿈이었는데..
정말 속상하고 내 몸뚱이가 너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강한 줄만 알았던 놈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거에 너무 속상해서
조금은 부끄럽지만 이불을 덮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잠을 자고 쉬어야 괜찮아 질거라 생각하고
눈을 꾹 감은채 잠깐이나마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