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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재 Feb 14. 2021

#6 "귀는 닫아뿌고 눈만 떠봐라"

Peru. Cusco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어제 함께 했던 형들과 누나는 며칠 더 있는다고 했지만

나는 와라즈에서 만났던 재하와의 만남을 위해 먼저 쿠스코로 떠나야만 했다.

우리는 일정을 잘 조율해서 쿠스코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먼저 출발했다.


이카에서 쿠스코로 가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4시간 버스를 타고 리마에서 1시간 비행기로 누구보다 편히 가는 법

둘째, 18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사서 고생하면서 가는 법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행기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나에겐 생각할 시간조차 아까운 큰 사치였다.

몇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고생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이런 고생도 나에겐 값진 경험이라 생각하고 선택한 곳이 남미였기 때문에...

그렇게 버스를 타서 자고... 자고... 자고...

계속 자도 도착할 생각을 안 했지만

우째저째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쿠스코에 도착을 했다.

쿠스코 가는 길


늦은 밤 공항에 나와, 우버가 동남아만큼 저렴했기에 우버를 불러서 숙소로 출발했다.

우버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내가 처음 마주한 쿠스코의 모습은 페루 어느 도시보다도 감성적이었다.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지만 깔끔한 하얀색 벽에 갈색 지붕들,

밤이 되어 어두워진 쿠스코를 아름답게 밝혀주는 따뜻한 노란 전구들,

그리고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그 사이로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길이 우연히 과거로 가는 차에 오르게 되는 그 장면,

마치 나도 과거 어딘가로 가는 듯한 그런 묘한 감정이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 중에서


꿈같은 영화 속 장면을 거닐다 숙소에 도착을 했다.

숙소에 들어가니 재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우...야....

쿠스코의 밤에 취하면서 영화 속을 거니는 듯했는데 꿈이 뭔가 다 박살 나는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아니, 와라즈에서 약 1,500km 떨어진 이 곳 쿠스코에서 다시 만나니

어느 때보다 반가움 마음에 얼른 가방을 집어던지고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우버로 왔던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쿠스코를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10분 정도 감성적인 골목골목을 내려가다 보니 쿠스코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기대를 하지 않고 내려왔는데 입이 쩌-억 벌어진 채 다물수가 없었다.

별처럼 보이는 건물들 아래에 드넓은 광장에서 손을 잡고 거니는 애틋한 커플들과 가족들,

나처럼 입을 쩌-억 벌리고 쿠스코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 많은 여행객들,

그리고 광장을 놀이터인 마냥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생각보다 조금..많이..큰... 강아지들까지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아름다웠고 모든 게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웠다.

그때 알았다. 쿠스코에 빠져 오랜 시간 동안 헤어 나오질 못할 거라는 걸.

그렇게 아름다운 쿠스코 광장을 두고 우리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기보다는

밖에서 쿠스코의 밤을 느껴보자고 했다.


네 마음속에 더욱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하나의 감각만 열어둔 채 다른 모든 감각을 닫아봐!
그리고 오로지 그 감각에만 5분 동안 집중을 해봐!


어느 여행자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난 후 여행을 하다 오랫동안 기억을 하고 싶은 곳이 생기면

때로는 귀를 닫고 모든 감각을 시각에만 집중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을 감은 채 모든 감각을 청각에만 집중을 하기도 한다.

처음 들었을 땐 그게 다른 느낌을 줄까라는 의문을 가졌었지만

그렇게 5분 정도만 있으면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해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날, 나는 쿠스코의 밤을 두 눈으로 제대로 느끼고 싶었

이 순간을 사진이 아닌 내 감각 속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다.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고 보았던 쿠스코의 첫날 밤,

3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똑같은 장면을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릴 순 없지만

그때의 밤을 내 머릿속에서 화가가 된 듯 아름답게 그림이 그려진다.

쿠스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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