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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재 Feb 22. 2021

#7 "호우" "와" "끼야호" "악"

Peru. Cusco

쿠스코...

두 발로 직접 도시를 거닐기 전까진 도시의 매력을 절대 알 수 없다.

나 또한 그랬으니


쿠스코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우리는 조식을 먹으러 가서 쿠스코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 쿠스코의 밤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고

쿠스코의 아침 또한 내게 또 다른 큰 감동을 주었다.


쿠스코의 중심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우리 숙소에서 내려다본 쿠스코는 그야말로... 끝장났다.

하나같이 갈색으로 깔맞춤 한 지붕들,

그 위에서 피시 앤 칩스 대신 쿠스코 풍경을 안주 삼고,

하이네켄 생맥주 대신 쿠스케냐 병맥주를,

이렇게 테라스에서 아침을 보내는 유럽 여행자들을 보면서 조식을 먹으니

아침부터 유럽에 온 듯한 느낌에 쿠스코라는 도시에 조금씩... 조금씩... 더 취하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마주한 쿠스코

어제의 감성적인 밤과는  다를 거라는 기대를 품고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광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역시나 쿠스코의 낮은 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해발 3,400m 정도의 높은 곳에 위치해 주변엔  높은 언덕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언덕들 중간에는 어느 유럽 부럽지 않은 여유로운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의 골목골목은 마치 박물관 같았다.

골목을 거닐다 보면 몇 백 년 전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만큼 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잉카제국이란 단어는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수업에서 졸면서 듣던,

사실, 선생님한테 혼나기 싫어 듣는 척만 하고 머릿속으로 점심메뉴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쿠스코에 와서 직접 피부에 닿아 온 몸으로 느껴보니 잉카제국을 조금씩 알게 되어간다.

쿠스코 광장

사람들은 여행을 할 때 그 나라를 제대로 느껴보기 위한 본인만의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소소하지만 나도 나만의 방법들이 있다.

우선 그 나라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나는 그 나라의 맥주한 잔 마셔본다.

아니... 가끔은 혀가 꼬일 때까지 마셔본다...

어디를 가든 그들의 맥주에는 어느 곳과도 다른 그들의 맛이 녹여있다고 생각한다.

맥주를 마시고야 말겠다는 아주 합리적인 내 핑곗거리일지도 모르지만...

두 번째는 전통 시장을 꼭 가보려 한다.

페루에서 전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장은 쿠스코에 있는 산 페드로 시장이라고 많이들 얘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장의 입구는 역시나 허름했고 시장 내부도 역시나 허름했다.

'세련'이라는 단어보단 '꾸질'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는 나이기에

이곳이라면 페루의 전통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산 페드로 시장

산 페드로 시장에 왔다면 꼭!! 반드시!! 사야 할 항목들이 있다.

첫째, 남미에 왔다는 보여주기식 의류들이다.

남미 여행 사진에서 한 번쯤은 봤을법한 알록달록한 망토,

남미 하면 떠오를법한 아기자기하고 형형색색의 바지와 니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인트를 더 할 모자까지 산다면 완벽한 쇼핑일 거다.


둘째, 페루의 베이비 알파카 열쇠고리다.

사람들은 멀리 여행을 가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선물을 사주곤 한다.

그때마다 값은 저렴하지만 받는 사람이 조금 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선물을 사주려고 한다.

그럴 때 남미에서 살 수 있는 압도적으로 완벽한 선물이 알파카 열쇠고리다.

한국 인터넷에서 5,000원을 줘야 살 수 있는 알파카 열쇠고리를

산 페드로 시장에서는 5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개이득이다..)

가격뿐만 아니라 쪼꼬만 게 참으로 귀여워서 선물 받는 친구들이 꽤나 좋아한다.


시장 안 상점마다 가격이 다르고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가장 저렴한 알파카 열쇠고리를 살 수 있는 집을 이곳저곳 들리고

서로의 취향에 따라 남미 패션을 갖추고 시장 음식을 먹고 쇼핑을 마무리했다.

엉망진창인 서로의 남미 패션을 보며 

똑같은 놈들끼리 그래도 자기가 조금 더 낫다며 서로를 신나게 비웃었다.

꼬질한 망토를 하나 걸쳤더니 이제 제대로 된 여행자가 된 듯했지만

한편으론 .. 부끄럽기도 했다...

망토도 걸쳤겠다 좀 더 힘차게 쿠스코를 돌아다니고 어느덧 밤이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광장에서 쿠스케냐 한 잔을 마시고

근처에 있는 아이리쉬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엉망진창의 옷을 입고 한국보다 반값으로 마실 수 있는 기네스 생맥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도 시끄럽고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페루 독립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아 마치 페스티벌이 열린 것만 같다.

여기저기 어디서든 음악에 취해 춤을 추며 흥을 느끼기도 하고

조용하다 싶으면 어디선가 폭죽이 터진다.

숙소 바로 앞 공터에서도 사람들이 흥에 취해 손을 잡고 뛰어노는데

마치 페루 버전 강강술래를 보는듯했다.

그걸 보는 순간 재하와 눈빛이 맞았고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술도 마셨겠다 어디 한 번 제대로 페루를 즐기기 위해 그들을 향해 뛰어간다.

함께 즐기고 싶다고 얘기도 하기 전에 그들은 우리를 끌어안고 뛰기 시작한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았던 그들의 호흡에 맞춰 함께 뛴다.

1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꽤 오랜 시간을 뛰었지만 영어를 하는 친구가 없어

"호우" "와" "끼야호" "악"

감탄사만 수없이 외치며 그들의 독립기념일을 함께 축복했다.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같이 호흡을 하고

그러면서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고 생각들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여행이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알았겠는가...

페루의 가장 큰 기념일인 독립기념일에 내가 그곳에 있었고,

숙소 앞에서 우연히 기념일을 즐기는 현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뛰면서 그들의 행복을 같이 즐길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들과 함께 미친 듯이 뛰었던 그 날 나는 알았다.

69호수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웅장한 호수를 볼 때 보다도,

생전 처음 밟아보는 얇고 부드러운 사막 위를 걸을 때 보다도,

내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걸...

페루 독립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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