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악기 탐험가

3

by 나자카



함께하는 음악의 기쁨


플루트를 배우고 나서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후, 선생님께서 작은 연주회를 제안하셨다. 같은 반 수강생들이 함께 배웠던 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내가 무슨 연주회를?”이라며 사양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어 참가하기로 했다.

연주회 준비 과정에서 나는 음악의 또 다른 면을 발견했다. 혼자 연습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앙상블’의 즐거움이었다. 내 파트가 조금 틀려도 다른 사람들의 연주가 받쳐주고,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실수를 자연스럽게 커버해 주는 경험. 음악은 단순히 음을 내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모아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협동 작업임을 깨달았다.

연주회 당일,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순간은 그때까지 살아온 중 손에 꼽을 만큼 떨렸지만 동시에 뿌듯했던 시간이었다. 박수 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 ‘해냈다’라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이 밀려왔다. ‘나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쁨이었다.



실패와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모든 것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바이올린을 배운 지 1년째, 「환희의 송가」에 도전했다가 크게 좌절한 적이 있다. 한 달 넘게 연습했지만 도저히 빠른 부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손가락이 꼬이고, 음정은 틀어지고, 급기야는 화가 나서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넣고 한 달 동안 만지지도 않았다.

그때 누군가 건넨 위로가 지금도 고맙다. “원래 베토벤이 쉬운 사람이었나? 천천히 해도 되잖아.” 단순한 말이었지만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바이올린을 꺼내 「환희의 송가」 대신 「고향의 봄」부터 차근차근 연습했다. 어릴 적 불렀던 그 단순한 멜로디가 이번에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첼로를 배우면서도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활을 너무 세게 그어서 현이 끊어진 적도 있고, 자세가 틀려서 목과 어깨에 담이 올 만큼 아픈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올린 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달랐다. 현이 끊어져도, 어깨가 아파도 악기를 멀리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들도 배움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악기가 바꾼 일상의 작은 변화들


악기를 배우던 그 시절, 일상에서 놀라운 변화를 발견했다. 우선 집중력이 향상되었다. 악기 연습은 완전한 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에, 연습하는 동안만큼은 다른 모든 걱정과 스트레스를 잊게 되었다. 이는 직장에서의 업무 집중도 향상으로도 이어졌다.

또한 인내심이 늘었다. 한 마디를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끈기가 생겼다. 이전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금세 포기하거나 짜증을 냈는데, 악기를 배우면서 ‘조금씩 나아질 거야’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었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다’가 입버릇이었는데, 악기를 배우면서 ‘시간을 만들어낸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하루 30분씩이라도 악기 연습 시간을 확보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사용이 줄어들고 TV 시청 시간도 단축되었다. 그 결과 오히려 시간이 더 여유로워진 느낌이었다.

그때 배운 집중력, 인내심, 그리고 시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여전히 내 삶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은 비록 연습 공간도 없고, 악기들도 하나둘 손을 떠나 집에 바이올린 하나만 남았으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바이올린 때의 경험 덕분에 이번에는 달랐다. 현이 끊어지거나 어깨가 아픈 것 역시 배움의 일부임을 알았기에 악기를 멀리하지 않았다. 인생은 길고, 도전할 것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제 미처 해보지 못한 것들, 혹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들을 향해 나아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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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악기 탐험가는 다음 4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