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어라키 세상

우리들의 수상록 |

by MeeyaChoi

세상 어딜 가나, 하이어라키(hierarchy)가 있다. 동물의 왕국에도 계급이 있고, 식물의 세계에도 높낮이가 있고, 직장에도 직급이 있으며, 가족에도 서열이 있고, 동네 탁구장에도 문화센터에도 하이어라키가 있다.

나이 들어서 시작한 탁구가 영 늘지 않았다. 레슨 말고 누구라도 같이 좀 쳐봐야 어떻게든 늘 텐데, 딱 봐도 너무 못 치니까, 도통 같이 치자는 사람이 없다. 탁구채를 손에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이 탁구채 휘두르는 모습만 봐도, 척하니 실력의 하이어라키를 구분해낸다. 다 자기보다 잘 치는 사람과 치고 싶기 때문에, 나 같은 초짜는 짝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착한 동네 사람들이니까, 돌아가면서 잠시 쳐준다. 가끔 나도 잘 쳐보고 싶어서 짬날 때 탁구장을 들락거리면, 바로 그 동네 사람들이 또 탁구를 치고 있다. 오전에 가도 있고, 오후에 가도 있고, 주중에 가도 있고, 주말에 가도 있다. 동네 탁구장 무림의 고수들이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정말 열심히 탁구를 치기 때문에, 그 견고한 하이어라키는 좀처럼 뒤집히지 않는다. 특히 드문드문 탁구장을 들르는 나는, 탁구채를 처음 잡는 왕초짜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늘 맨 밑바닥에 있다.

막 은퇴한 작은 형부와 언니는 동네 문화센터에 다닌다. 알뜰살뜰 살림만 살던 언니는 처음으로 라인댄스반에 들어갔다가, 10년 넘게 라인댄스를 연마한 날렵한 동네 아줌마를 만나서 깜짝 놀랐다. 형부는 일본어를 꽤 잘하고, 서예도 좀 쓸 줄 안다. 형부가 기를 펼 수 있도록, 언니는 형부를 일본어와 서예반에 등록해 드렸다. 그런데, 첫 일본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형부는 그 반에 일본사람처럼 일본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단다. 며칠 뒤, 첫 서예 수업을 다녀온 형부는 그 반에 연세 많으신 무림의 고수 같은 할아버지들이 행서, 초서를 휙휙 쓰고 계셔서, 형부는 막 시작한 어린애 같았다며 기죽었단다. 평생 집과 직장만 오가며, 딱히 취미에 노력과 시간을 들일 겨를이 없었던 형부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다시 초보가 되었다.

동네 탁구장에도, 동네 문화센터에도, 하이어라키의 위에 있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쉬지 않고 계속 노력한 사람들이다. 재능이 있더라도 그만 두면 잘할 수 없다.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이 결국 잘하게 된다. 나도 계속 치다 보면, 언젠가 이 탁구장 하이어라키의 밑바닥을 벗어나는 날이 올까?




뭐든 잘 하려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며, 역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제일 큰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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