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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오늘 Jun 12. 2024

일 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






    1년 전의 나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 고이 모셔 놓고 1년 동안 봉인해 두었던 과거의 편지가 드디어 미래의 나에게 발송되었다. 오늘을 기다리며 그동안 하루하루를 유의미하게 살겠다며 작은 다짐을 하곤 했었는데, 감회가 참 새로웠다. 매년 6월 6일은 현충일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 꽤나 의미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더 이상 방 안에 콕 틀어박혀서 우울의 늪에 빠져 있지 않겠다고 강한 다짐을 하며 일어났던 날이 하필이면 6월 6일이라서, 6이라는 숫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니 왠지 12개월의 반이기도 하고 꽤 특별한 것 같아서 바로 나만의 작은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게 된 거다. 매년 6월 6일을 기념하기 위해 1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쓰자.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걸어 보자. 무슨 내용을 썼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품고 있던 고민과 생각들을 편지지 두 장 안에 빼곡히 썼던 기억은 났다. 담양의 아담한 한옥 숙소에서 노란 전등 불빛에 의지해 옆에는 따뜻한 비트차와 작은 약과를 놓아두고 글자를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 그랬었지.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다. 벌써? 글쎄. 일 년이 훌쩍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딱 일 년만큼의 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기도 하고. 편지지를 여는데 조금 떨렸다. 그래서 편지를 읽기 전에 사진도 몇 장 찍고, 동영상도 이리저리 찍었다. 그렇게 한차례 의식을 치르고 나서 드디어 편지지의 첫 줄을 읽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무어라 말을 걸었을까, 참 많이 궁금했는데. 그때의 나는 다정한 말을 참 많이 적어 두어서 편지를 읽는 동안 휴지 세 장은 거뜬히 쓰도록 만들었다. 미래에 네가 무얼 하고 있든 너는 그저 너 자체로 특별할 거야. 이 편지를 잊지 않고 봐 주었다는 게 참 감동이야. 성장해 있을 네가 자랑스러워. 참 간지러운 말들이기도 한데, 최근의 내 마음이 연약해져서인지 한 마디 한 마디가 몽글몽글 내려앉아 마음에 톡톡 맺혔다. 편지를 읽으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그때의 내가 궁금했던 것들, 미래의 내가 과연 이루었을까? 반신반의하며 적었던 세 가지의 바람이 전부 이루어진 상태라는 것이었다. 물론 마법같이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그동안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내가 있어서 그 바람들을 이룬 것이겠지만... 그냥, 신기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마주한다면 틀림없이 기뻐해 줄 것이라 생각하면 또 뭉클했다. 그래, 나 이만큼 컸다!


    다시 편지지를 꺼냈다.


    새로운 편지지 두 장을 책상 위에 반듯이 놓아두었다. 이제 다시 또 다른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쓸 차례였다. 이번엔 무어라 쓸까? 잠시 망설였지만 한 자씩 눌러쓰기 시작하자 어느새 한 줄, 두 줄 편지지를 빼곡하게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미래의 내가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넌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어떤 생각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과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마음은 평온한지. 이번 편지지에는 현재 시점의 내가 품고 있는 고민과 감정들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다정한 말들도 물론 좋지만 그냥, 이번에는 미래의 나에게 기대감을 품기보다는 현재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섣불리 이런 목표를 이루었기를, 이런 바람을 이루었기를,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1년 뒤 또다시 이 편지를 찾아 읽고 있을 내가 조금 더 평온한 상태였으면.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편안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면. 그거 하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렇게 두리뭉실한 것보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적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냥... 현시점부터 1년 동안의 나는 그저 흘러가듯이 잔잔한 행복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서 도착한 편지를 상자 안에 고이 모셔 두고, 그 위에 미래의 나에게 전할 편지를 포개 두었다. 이 편지를 다시 찾기 전까지 1년 동안의 나는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까? 당장은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자 안에 넣어 두고 조용히 뚜껑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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