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by 유명

Ⅰ. 엄마의 꽃밭

친정에 가면 꼭 하는 것이 있다.

엄마의 꽃밭을 구경하는 것이다.

꽃밭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였지만 사실은 주택 옥상에 갖가지 화분들을 갖다 놓고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엄마가 특별히 식물을 잘 키우는 것인지 친정 옥상이 식물들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서 식물들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치자, 장미, 제라늄, 미스 라일락, 송엽국, 레몬밤, 장미허브, 로즈메리, 갖가지 난과 다육이등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식물들은 계절 따라 예쁜 꽃을 피워내거나 싱그러운 이파리와 향기로 내 마음을 즐겁게 한다.

노랑, 분홍, 빨강, 흰색의 장미와 제라늄이 황홀하고, 화분 바닥에 납작하게 핀 송엽국이 기특하다. 달콤한 치자꽃 향과 요염한 라일락의 향이 좋아 몇 번이나 코를 갖다 대고 숨을 들이마신다. 로즈메리 잎에 손을 갖다 대고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듯 서너 번 쓸어준 뒤 그 손을 코에 갖다 댄다. 허브의 진한 향에 감탄을 한다. 레몬밤 잎 하나를 따서 반으로 접어 향을 맡고는 주머니에 넣어둔다. 생각나면 다시 꺼내 잎이 말라 향이 사라질 때까지 두고두고 맡는다. 장미허브는 마디를 똑 따서 흙에 꽃아 두었을 뿐이라는데 어찌나 치렁치렁 길게도 자랐는지. 잎들과 줄기는 건강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반짝거린다.



내가 갈 때마다 엄마는 옥상의 꽃밭을 자랑하는 것이 큰 낙이다.

엄마는 어깨와 무릎과 허리가 아프다고 돌림노래를 하면서도 길가에 버려진 식물이나 화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말라서 거의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식물도 집에 가져와 물꽃이나 꺾꽂이를 해서 살려낸다. 식물계의 이국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생명력 넘치는 식물을 보면 탐이 나서 엄마에게 꽃핀 화분이나 식물의 뿌리, 또는 가지를 얻어간다. 집에 가서도 초록초록한 그것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잔뜩 기대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엄마처럼 식물을 잘 키우는 재주가 없다.

아파트라 주택만큼 바람을 충분히 못 쐬어주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위로해 보지만 얻어온 식물이 말라죽으면 아쉽다. 그래도 빈 화분을 잘 모아 두었다가 다시 친정으로 가지고 간다. 엄마는 거기에 또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 확실하므로.



Ⅱ. 아빠의 꽃밭

엄마가 키운 식물들로 가득하던 옥상에 아빠의 꽃밭이 생겼다.

어릴 때 집 앞 공터에 몇 가지 채소들을 심어 키우던 아빠의 솜씨를 모르던 바는 아니었다. 촌에 들어가 텃밭이나 가꾸고 소일거리로 먹을 농사나 지으면 좋겠다고 돌림노래를 하던 아빠였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더니 아빠가 우물을 팠다.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여느 때처럼 옥상에 올라가 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버티는 겨울의 등살에 아직은 봄바람이 채 기를 펴지는 못하던 때다. 큰 기대 없이 올라갔는데 못 보던 것이 있다.



작은 비닐하우스였다.

거친 나무 각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두꺼운 비닐을 덮어 비닐하우스 형태를 만들었고 작은 문도 달려 있었다.

좁은 공간에 만든 작은 비닐하우스라 식물이 자라니 사람몸이 들어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문을 열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상체를 들이미니 습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훅 하니 났다.

어릴 적 외갓집 시골동네의 참외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면 나던 냄새와 같았다.



거기에 키우는 식물은 엄마의 꽃밭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유채, 미나리, 민들레같이 먹을 수 있고 약으로도 쓴다는 채소들이 있었다.

웃음이 났다.

부부지간에 성향이나 취향이 다른 것은 알았지만 엄마의 꽃밭과 아빠의 꽃밭은 아주 다른 모양과 색깔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뒤따라온 엄마는 미나리와 유채를 칼로 잘라 비닐에 담았다. 약도 안치고 미세먼지도 없어 아빠는 아침마다 이 채소들 뜯어 드신다고 했다.

꽃밥해 먹으라며 노란 유채꽃도 잘라 주셨다.

집에 와 참기름을 둘러 꽃밥을 해 먹었는데 싱싱하고도 새콤한 맛이 났다.

연한 채소 잎들과 유채꽃으로 내 몸이 노랑과 초록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엄마의 꽃밭에서 꽃의 색과 향기로 호사를 누렸다면 아빠의 꽃밭에서는 건강한 흙냄새와 싱싱한 맛으로 호사를 누렸다.



나의 오감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엄마 아빠의 꽃밭에 올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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