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게인즈버러 <그레이스 달림플 엘리엇 부인 Mrs. Grace Dalrymple Elliott > 1778. 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초상화와 풍경화의 만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18세기 영국의 선도적인 초상화가였던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1788)의 작품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초상화 제작은 화가들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기에 많은 화가들이 초상화가로 데뷔를 하였고 게인즈버러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숙달된 솜씨로 놀라운 수준의 초상화를 수없이 남겼지만 작가 스스로 말하기를 경제적인 이유로 초상화를 제작할 뿐 평생 풍경화만을 그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풍경화를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좌) 게인즈 버러 <나무가 우거진 고지대 풍경> 1783년경. (우) <소작농과 말, 수레가 있는 삼림지대의 풍경> 1760. 출처: The MET, New York.
이런 배경에는 동시대 시인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 1700-1748)의『사계절(四季節) The Seasons』(1726-1730)이 있었습니다. 톰슨은 스코틀랜드의 작은 시골마을 출신 시인으로 자신의 고향이었던 에드남(Ednam)의 자연을 소재로 한『사계절』을 발표하여 18세기 영국의 자연관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더불어 풍경화의 가치 또한 높아졌지요. 게인즈버러를 비롯한 많은 영국화가들이 톰슨의 시상에 영감을 받았고 시인의 자연에 대한 섬세하고 정감 있는 표현을 풍경화에 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게인즈버러의 풍경화는 비록 상업적 인기를 끄는 데는 실패했지만 향후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6)로 대표되는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존 컨스터블 <주교의 경내에서 바라본 솔즈베리 대성당> (1825) 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게인즈버러의 수많은 초상화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삼중초상(triple portrait)’이라고도 불리는 <앤드류 부부 Mr. and Mrs. Andrews> (1750) 일 것입니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서드베리(Sudbury)의 전원풍경과 그 소유주인 로버트 앤드류 (Robert Andrews) 그리고 그의 아내 프란시스 앤드류 (Frances Andrews)의 초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자연묘사가 인물의 배경 정도에 불과했던 기존의 초상화 관습을 넘어 풍경과 초상이 거의 동등한 크기로 나란히 캔버스에 그려진 경우는 게인즈버러 전작(全作)을 통틀어도 유일무이(唯一無二)하며 동시대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놀라운 구조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당시 영국 초상화가들의 풍경화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초상화가들이 그들의 초상화에 어떤 형태로든 풍경화를 그려 넣기 시작했고 게인즈버러의 <앤드류 부부>는 그런 열망을 대담히 투영한 대표적 작품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토마스 게인즈버러 <앤드류 부부> (1750) 출처: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참고문헌
Ann Bermingham, Landscape and Ideology: the English Rustic Tradition, 1740–1860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
Elizabeth Wheeler Manwaring, Italian Landscape in Eighteenth Century England (New York: Russell and Russell, 1965)
Sebastian Mitchell, “James Thomson’s Picture Collection and English History Painting,” Journal of the History of Collections 23, no. 1 (2001)
Susan Sloman, Gainsborough in Bath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