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Hogarth, Assembly at Wanstead House, 1728-1731. 출처: Philadelphia Museum of Art.
1730년부터 1790년까지의 6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은 계몽주의라는 사조(思潮)로 포괄되는 시기로 영국 사회 전반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7세기 영국에서 발생하여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계몽사상은 기존 사회 체제를 타파하고 개혁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고 예술의 영역 역시 이런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배경으로 당시 영국 중산층의 비약적인 성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해상무역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한 중산층은 이 시기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획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적으로 상류층의 영역이었던 엘리트 문화 또한 선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즈음 발전된 영국미술에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들 미술의 정체성을 독창성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인데요. 고유한 양식적 특징을 지닌 다른 미술사조와는 달리 18세기 영국 미술은 유럽미술이 이제껏 전통적으로 고수하던 예술 장르의 서열을 타파하고 외국미술의 여러 요소들을 자국의 미술 속에 재배치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하는 그 독립적인 행위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국미술의 이와 같은 독특한 성격은 먼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의 작품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좌)Hogarth, Portrait of William Hogarth, Painter and Printmaker, 1749. 출처: Philadelphia Museum of Art. (우)Hogarth, Serjeant Painter to His Majesty, 1764. 출처: The MET
호가스는 풍자역사화(comic history painting)라는 장르의 창시자로 종래의 역사화의 특징들을 동시대의 영국 일상에 접목하여 대중적인 이해를 이끌었습니다. 역사화라는 용어는 17세기 프랑스 왕립미술원에서 시작하여 처음에는 그리스 로마 고전이나 신화 혹은 성서적 주제를 그린 그림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럽미술 전통에서 역사화는 초상화, 정물화 혹은 풍경화와 같이 비교적 일상적인 소재의 그림들보다 훨씬 상위에 위치하는 미술 장르로 여겨졌는데 초상화와 풍경화에서 강세를 보이던 18세기 영국 입장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유럽미술의 서열은 다소 불편한 진실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당시 영국 사회 전반에서 종래의 역사화와 같이 도덕적 교훈을 주면서도 영국만의 새로운 회화가 탄생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대에 가장 먼저 응답한 화가가 호가스였습니다.
윌리엄 호가스, <매춘부의 일대기 Plate 1>,1732. 출처: The British Museum, London
호가스의 판화 작품 중 하나인 <매춘부의 일대기 A Harlot’s Progress> (1732)는 순결한 시골처녀 몰 해커바우트(Mall Hackabout)가 런던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몰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여 매춘부가 되고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맺게 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한 선불선(善不善, Vice and Virtue)이라는 주제는 당시에는 오로지 역사화의 범주에서만 다루어져 오던 도덕적 교훈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권선징악(勸善懲惡)이지요. 호가스는 신화 속 고매한 인물이나 영웅이 선과 악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존의 역사화의 공식에 런던의 매춘부 이야기를 대입하여 전통적 역사화의 틀에서 탈피하고 풍자역사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벤자민 웨스트 <미덕과 쾌락 사이의 헤라클레스의 선택The Choice of Hercules between Virtue and Pleasure >, VA museum, London
참고문헌
Mark Hallett and Christian Riding, Hogarth (London: Tate Publishing, 2006).
Ronald Paulson, Emblem and Express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