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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Dec 16. 2023

선불선(Vice and Virtue)

<매춘부의 일대기 A Harlot’s Progress> 2편

William Hogarth, A Harlot's Progress, Plate 1

호가스의 <매춘부의 일대기 A Harlot’s Progress> (1732)는 총 여섯 개의 판화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 그 첫 번째 장면은 런던에 막 도착한 순결한 시골처녀 몰 해커바우트(Mall Hackabout)가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선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몰의 오른팔 아래 들려있는 반짇고리와 가위, 그리고 아직은 얌전하고 정갈한 그녀의 행색으로 미루어 이 시점의 몰은 재봉사와 같은 평범한 직업을 기대하며 런던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 앞으로 매독에 걸려 흉측한 모습을 한 포주 엘리자베스 니덤 (Elizabeth Needham)이 몰을 매춘부로 들이고자 살피고 있고 그녀의 뒤로는 당대 악명 높은 난봉꾼 프란시스 (Francis Charteris)와 그의 하인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는 곧 몰이 쾌락의 길을 선택할 것임을 알려줍니다.


William Hogarth, A Harlot’s Progress, Plate 2, 1732. Image source: Wikipedia.


두 번째 장면에서 몰은 어느 부유한 상인의 첩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화려한 옷차림과 방안 곳곳의 이국적인 사치품들로 미루어 상인의 재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전자를 들고 있는 하인소년과 뒤쪽의 젊은 여종은 아마도 상인의 선물이었겠지요.


William Hogarth, A Harlot’s Progress, Plate 3, 1732. Image source: Wikipedia.


세 번째 장면에서 물은 이제 매춘부로 전락한 모양새입니다. 몰의 여종은 나이가 들었고 얼굴에 보이는 반점으로 미루어 매독에 걸린 것 같습니다. 가구라고는 침대뿐인 방에 한쪽 가슴을 노출한 채 앉아있는 몰의 자세는 그녀의 발밑 고양이의 포즈로 대변됩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체포하러 사람들이 문안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은 대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에 관한 사실을 미리 알리는 수태고지(Annunciation)의 구도를 풍자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라고 합니다.


William Hogarth, A Harlot’s Progress, Plate 4, 1732. Image source: Wikipedia.


네 번째 장면에서 몰은 감옥에 수감되어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교화되지 않은 듯한 주변의 죄수들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이는 왼쪽 벽으로 두 손이 나무틀에 올려 묶인 채 벌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묶인 틀에 “이곳에 서는 것보다는 일을 하는 것이 낫다 Better to Work/than Stand thus.”라는 글귀가 세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노동을 게을리하여 간수들에게 벌을 받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는 몰의 여종이 몰의 구두를 신으면서 흉측하게 웃고 있는데 표정이 정말 섬뜩하네요.


William Hogarth, A Harlot’s Progress, Plate 5, 1732. Image source: Wikipedia.


다섯 번째 장면에서 몰은 이제 매독에 걸려 죽어갑니다. 왼쪽에 보이는 두 남자는 의사로 어떤 치료 방법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 논쟁하고 있으며 그 아래로 집주인인듯한 여자가 몰의 물건을 뒤지고 있습니다. 몰의 옆에 앉은 그녀의 아들은 머리에 이를 뽑는 중으로 아이 또한 매독에 걸린 것으로 추측되는데 쾌락의 길을 선택한 몰의 최후가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William Hogarth, A Harlot’s Progress, Plate 6, 1732. Image source: Wikipedia.


마지막 장면에서 몰은 이제 세상을 떠나 관 속에 있습니다. 몰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인사들은 그녀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고 죽은 몰을 둘러싼 채 술을 마시는 모습들이 마치 술집에 모인 사람들 같습니다. 매독에 걸린 매춘부들 그리고 이 와중에 쾌락을 즐기는 왼쪽의 남성, 그리고 몰의 관 아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놀고 있는 그녀의 아들의 모습이 섞여 측은한 느낌이 듭니다. 그 아들도 곧 죽음의 운명을 맞겠지요. 뒤쪽 벽 가운데 덩그러니 걸려있는 모자는 몰이 런던에 처음 도착했을 때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요?



호가스는 선불선(善不善, Vice and Virtue)이라는 고매한 주제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시대의 런던 골목으로 가져다 놓아 풍자역사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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