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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Dec 23. 2023

소박의 미학

호가스의 <근면과 나태> 1편

윌리엄 호가스 <분노한 음악가 The Enraged Musician> 1741. 출처: The MET


윌리엄 호가스의 혁신적이면서 독자적 미술양식은 종전의 역사화가 배경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과 달리 쉽고 명확하게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게끔 했습니다. 영국의 일상을 역사화에서 다룰법한 주제에 접목시켜 견고한 유럽미술의 전통을 흔듬과 동시에 익숙하고 간결한 회화 구도를 통해 특권층만이 아닌 중산층을 비롯한 일반 대중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갔다는 것이 호가스의 특징이지요.


그런데 간결하고 명확한 구도에 대한 선호는 호가스의 그림에서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영국 문학과 예술 전반에서 나타납니다. 저명 정치가이자 문학인이었던 새프츠베리 백작(앤서니 애슐리 쿠퍼 Anthony Ashley Cooper, 3rd Earl of Shaftesbury, 1671-1713)과 같은 당대 지식인들 역시 읽히기 쉬운 간결한 구도를 장려하였고 이와 관련된 글들이 문예지 『스펙테이터』에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의 회화는 고전문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가 어려웠기에 일반적으로 예술 감상이란 일부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일종의 고급 취미이자 소양이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 이르러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중산층이 예술의 새로운 독자층으로 부상했고 이에 18세기 영국회화는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도 한눈에 쉽게 읽히는 ‘소박의 미학 (the virtues of simplicity)’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좌) <매춘부의 일대기> Plate 1, 1732. 출처: Wikipedia (우) <근면과 나태> Plate 1, 1747. 출처: The MET


호가스의 <근면과 나태 Industry and Idleness> (1747) 역시 이런 시대적  요구를 잘 반영한  판화작품입니다. 이전의 작품에 비해 작품의 실제적 크기 또한 축소되었을뿐더러 이야기의 전개 또한 복잡한 구조가 아닌 옳고 그름, 보상과 벌, 그리고 행동과 결과와 같은 이분법적 도덕률을 두 수습공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합니다. 전작인 <매춘부의 일대기>를 통해 호가스가 견고한 유럽미술 전통으로부터의 일탈을 이루었다면 후작인 <근면과 나태>는 소박하고 간결한 미학을 추구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아카데미 예술과 그 성격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좌) <근면과 나태> Plate 2, 1747. (우) <근면과 나태> Plate 4, 1747. 출처: The MET


12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호가스의 <근면과 나태>는 근면을 상징하는 선한 수습공 프란시스 굿차일드(Francis Goodchild)와 나태를 상징하는 악한 수습공 톰 아이들(Tom Idle)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그들의 이름에서부터 주인공들의 선택이 어떠할지를 알려주는 명확한 구조이지요. 직역하면 착한 아이라는 뜻의 굿차일드는 당연히 선한 선택을 하며 그에 향응하는 보상을 받습니다. 그는 12개의 장면 모두에서 항상 정갈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호가스는 그의 도덕성을 표현하는 시각적 장치로 굿차일드가 그려지는 공간을 활용했습니다. 굿차일드는 항상 마모됨이 없는 단단한 실내 구조물 속에 있는 모습인데요. 이는 굿차일드의 바른 선택을 상징하는 장치로 그가 어떤 인물이고 도덕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를 쉽게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좌)Plate 3 (우)Plate 5
(좌)Plate 7 (우) Plate 9


 반면 ‘게으른’이라는 뜻의 톰 아이들(Idle)은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나 묘지와 같은 음침하고 황량한 장소에서 자주 그려집니다.  설령 실내에 있다 하더라도 그의 주변에는 찢어진 책이나 불길한 모습의 동물 그리고 선량하지 못한 무리들이 따릅니다. 지저분한 옷을 입고 다 부서져 가는 공간 속에 그려진  톰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의 말로가 어떨지는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Anthony Ashley Cooper Shaftesbury, Second Characters, ed. Benjamin Rand (New York: Greenwood Press,1969)

Joseph Addison, Dialogue on the Usefulness of Ancient Medals (New York: Garland Publishing, 1976)

Mark Hallett and Christian Riding, Hogarth (London: Tate Publishing, 2006)

Michael Levey, Rococo to Revolution: Major Trends in Eighteenth-Century Painting (London: Thames and Hudson, 1985)

Ronald Paulson, Emblem and Express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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