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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Jan 13. 2024

절제된 교양문화

 호가스의 <스트로드 가족화>

호가스 <스트로드 가족The  Strode Family> (1738), Tate, London


<유행결혼> 보다 약 7여 년 앞서 완성된 호가스의 <스트로드 가족 The  Strode Family>(1738)은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발전한 미술장르라고 볼 수 있는 컨버세이션 피스(conversation piece,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초상화로 편의상 가족화라 명명함)라 불리는 일종의 초상화입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초상화는 18세기 영국 중산층의 모습을 비교적 많이 담고 있어서 당시의 대중적인 유행을 짚어볼 수 있는 시각자료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정갈한 실내공간 속 단아하게 묘사된 인물들 뒤로 결려있는 풍경화 액자인데요. 로코코 스타일의 액자에 걸려있는 이탈리아풍의 풍경화는 18세기 영국 가족화, 특히 실내가족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호가스의 가족화에도 세 점의 풍경화가 보이네요.


이 작품은 딜레탕트 모임(Society of Dilettanti)의 창립회원이자 중산층으로 알려진 윌리엄 스트로드(William Strode)가 가족과 지인과 함께 차를 즐기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을 시작으로 그의 형제인 사무엘 스트로드(Samuel Strode), 윌리엄의 아내인 앤 (Lady Anne Cecil) 그리고 시중을 들고 있는 하인 조나단 (Jonathan Powell)이 보입니다. 윌리엄의 오른쪽에 앉은 이는 그와 그랜드 투어를 동행한 가정교사 아더 스미스(Arthur Smyth)이며 그들의 뒤로 보이는 책장은 학식이 깊은 스미스와 그런 그를 가정교사로 둔 윌리엄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윌리엄의 아버지는 18세기 초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에 투자하여 막대한 부를 얻은 신흥중산층이었습니다. 윌리엄의 가문과 같이 경제적 지위를 얻은 중산층은 새로운 엘리트층으로 부상하였고 이들은 곧 상류사회로 진출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랜드 투어는 일종의 상류사회로의 등용문과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랜드 투어를 다녀왔다는 것이  학식과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으며 엘리트로서 지녀야 할 교양 덕목을  겸비했다는 것을 상징해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투어를 다녀온 윌리엄 역시 이를 기념하고자 그와 그랜드 투어를 동행한 가정교사 아더와 함께 그의 학식과 예술에 대한 수준을 기록할만한 초상화를 제작한 것이지요.


(좌) 살바도르 로사의 풍경화 (우) 프란체스코 과르디 공방에서 제작된 풍경화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호가스가 인물 뒤로 그려 넣은 이탈리아  풍경화 세 점입니다. 살바도르 로사(Salvador Rosa, 1615-73)나 프란체스코 과르디(Francesco Guardi, 1712-93)와 같은 이탈리아 화가들이 그렸을법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 풍경화들은 윌리엄이 그랜드 투어를 통해 다녀온 이탈리아를 연상시킴은 물론이거니와 부패한 상류층과는 다른 새로운 엘리트층으로서의 그의 예술에 대한 태도를 투영하는 역할을 합니다. 새로운 지식인층은 타락한 상류층의 무분별한 딜레탕티즘적 예술 탐닉이 아닌 절제되면서도 교양적인, 그리고 기존의 미술장르와는 다른 어떤 것을 선택해야 했고 이에 대한 답으로 호가스는 풍경화를 제시했습니다.


(좌) Salvator Rosa, Landscape with Tobias and the Angel, 1660-73,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우) Workshop of Francesco Guardi, Venice: The Rialto, The Met, New York


아더 데이비스 <힐 부부 초상>, 1750-51, Yale Center for British Art

호가스 이후 영국 18세기 가족화는 일종의 공식처럼 이탈리아풍의 풍경화 액자를 인물 초상 뒤에 반복적으로 그려 넣게 되고 그 결과 ‘초상화 속 풍경화 액자’라는 공식은 당시의 유행을 반영한 18세기 영국 가족화의 대표적 특징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풍경화를 일종의 인기 아이템으로 여겨 집안에 걸어두기도 했을 것이며 다른 어떤 이들은 풍경화를 집안 거실에 걸고 우아하게 차와 담소를 나누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동경하며 이와 같은 초상화 제작을 의뢰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회적 현상은 결국 가치나 신념을 만들어 내었고 18세기 영국에서 풍경화라는 미술 장르는 상류층의 사치스럽고 무절제한 문예 탐닉과는 다른 신흥 중산층의 절제되면서도 여전히 예술에 대한 깊은 안목과 교양을 상징하는 시각기호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문헌

Elizabeth Einberg, William Hogarth: A Complete Catalogue of the Paintings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16)

Jason M. Kelly, The Society of Dilettanti Archaeology and Identity in the British Enlightenment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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