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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May 25. 2024

영국적이지도 미국적이지도 않은

18세기 영미미술


18세기 영국미술 속 나타나는 흑인형상화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 영국 풍자미술의 대표주자였던 윌리엄 호가스 그림 속 등장하는 흑인의 모습입니다. 호가스의 흑인형상화는 비록 도상적으로는 17세기 네덜란드 초상화적 전통(백인의 시중을 드는 작은 흑인의 형상)을 따르고 있지만 노예제도와 물질문명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말미암아 당시 영국사회에 만연한 흑인노동을 풍자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좌) 반 다이크의 17세기 네덜란드 초상화  (우) 윌리엄 호가스의 <몸단장> (1743). The National Gallery, London.


두 번째는 아서 데이비스로 대표되는 비교적 객관적 혹은 관찰자적 태도로 말미암은 흑인형상화입니다. 데이비스는 호가스처럼 대담한 비판이나 풍자를 일삼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신중하고 유행에 민감한 스타일의 화가였기에 그의 초상화는 당시 사회적, 시대적 변화를 투영하는 역할을 합니다. 영국 내 노예제도에 대한 그의 관찰자적 태도는 초상화 속 흑인 형상화에 대한 작가의 모호한 묘사로 읽어내 볼 수 있겠습니다. 


데이비스의  <오르데 가족화> (1754–56) Yale Center for British Art.


이같이 부정적이든 혹은 관찰자적 태도이든 흑인 형상화는 18세기 영국화가들을 통해 계속 이어졌는데 이들과는 달리 17세기 유럽초상화 속 흑인도상을 비판 없이 수용한 화가도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 조슈아 레이놀즈를 들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인 <찰스 스탠호프 백작 초상화 Charles Stanhope, Third Earl of Harrington, and a Servant> (1782) 속 흑인하인의 모습은 전형적인 유럽초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레이놀즈 <찰스 스탠호프 백작 초상화> (1782) Yale Center for British Art.


레이놀즈를 비롯한 당시의 비교적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아카데미션(academician: 영국왕립아카데미 회원)들은 여러 미술사조의 특징들을 접목한 절충주의(eclecticism) 기법을 통해 영국미술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고 그의 일환으로 당시 영국 초상화나 역사화에서 여러 고전미술적(신고전주의) 기법들을 복합적으로 시도했습니다. 이런 일환으로 레이놀즈의 <찰스 스탠호프 백작의 초상화> 또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유럽 초상화에 흔히 나타나는 흑인도상을 비판 없이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초상화를 이어 다음으로 활발히 흑인형상화를 활용한 장르는 역사화였습니다. 역사화(history painting)라는 용어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고전이나 신화 혹은 성서적 주제를 그린 그림을 지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에 와서 동시대적 사건을 기리는 작품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어 영미화가인 벤자민 웨스트나 존 싱글턴 코플리 등을 통해 발전되었습니다. 역사화 속에도 흑인이나 인디언과 같은 소수인종이 등장하는데요. 초상화 속 부정적인 이미지의 흑인 모습과 달리 역사화 속 이들은 출신 대륙을 상징하는 엠블렘적 역할을 합니다. 이는 초기 유럽회화에서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을 젊고 아름다운 흑인의 모습으로 상징하던 방식과도 흡사합니다. 


벤자민 웨스트(1738-1820)의 <울프 장군의 죽음 >(1770) National Gallery of Canada.


벤자민 웨스트(Benjamin West, 1738-1820)의 <울프 장군의 죽음 The Death of General Wolfe>(1770)은 7년 전쟁 중 퀘벡 주에서 1759년 전사한 울프 장군을 기린 그림입니다. 이 전쟁을 통해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지요. 등장인물들은 그 시대의 무기와 옷을 입고 있지만 순교자와 같은 모습으로 축 늘어진 울프장군의 모습은 마치 십자가에서 내려져 성모마리아에게 안긴 그리스도(Lamentation of Christ)를 상기시킵니다. 더불어 왼쪽 하단에서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턱에 궨채로 울프장군을 바라보고 있는 인디언은 서양문학에서 ‘문명에 파괴되지 않은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이라는 관념을 형상화한 것으로 아메리카 대륙 자체를 상징한다고 해석됩니다.


존 싱글턴 코플리 (1738-1815)의 <피어슨 소령의 죽음 The Death of Major Peirson, 6 January 1781> (1783) Tate London


존 싱글턴 코플리(John Singleton Copley, 1738-1815)의 <피어슨 소령의 죽음 The Death of Major Peirson, 6 January 1781> (1783)에서 역시 이런 신고전주의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근처에 위치한 영국 왕실령  저지 섬에서 일어난 프랑스와 영국의 전투를 기린 작품으로 프랑스의 기습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했던 영국군이 피어슨 소령 지휘 아래 총공격을 감행하는 극적인 순간과 소령의 희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축 늘어진 소령의 모습은 역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그의 희생을 숭고화시킵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피어슨 소령의 죽음에 분개한 그의 흑인 하인 폼페이(Pompey)가 저격병을 사살하는 모습이 매우 용맹스럽게 그려졌다는 것인데 이는 영국에 대한 식민지의 충성을 상징하고자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웨스트나 코플리와 같은 영미화가들은 유럽미술의 고전적 도상들을 그들의 작품에 접목하여 근대역사화(contemporary history painting)를 종전의 역사화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미술양식적으로 완벽히 유럽적 혹은 영국적이지도 그렇다고 아직 미국적이지도 못한 영미미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참고문헌

Douglas Fordham, British Art and the Seven Years’ War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10)

Ronald Paulson, Emblem and Express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

Tate, “The Death of Major Peirson, 6 January 1781” Display caption, https://www.tate.org.uk/art/artworks/copley-the-death-of-major-peirson-6-january-1781-n0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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