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열쇠가 있었다.
분노 시점 : 나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피한다. 이것을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신다. 나도 내 고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그 대신 다른 형제보다 엄마의 부탁이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자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어김없이 이해가 안 된다며 잘 지내기를 요구하는 엄마가 답답해서 카카오톡을 남겼다.
"엄마는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들죠?
그런데 엄마, 아빠도 완벽할 수 없었듯이,
나도 완벽한 자식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못해주는 부분 엄마가 신경 써주고,
엄마가 못해주는 부분 아빠가 신경 써주는 것처럼,
다른 애들이 못해주는 거 내가 해주는 부분이 있는 거고,
내가 못해주는 부분 다른 애들이 해주는 거예요.
다른 애들이
대화나 ***이나 oo에 대해 엄마를 고민하게 만들면,
한숨만 쉬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왜 나한테는 변화를 요구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 마음을 열 수 있는 부분이 다른 거라는 말이에요.
나 한 명한테 모든 걸 바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부탁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다 들어주기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반성 시점 : 분명 엄마를 이해시키려고 보낸 말인데, 이걸 보내놓고 되려 내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지금껏 부모님에게 서운했던 일이 대부분 용서가 됐다. 내 머릿속 생각은 이랬다.
'난 완벽하지 못해.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 이 정도면 나로서는 노력한 거란 말이야... 그런데 나는 엄마 아빠의 부족하지 않은 면을 보려고 한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네..?'
부모님은 완벽하지 않았고,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내 감정에 투덜대다가 알아챘다.
두 분은 항상 잘 먹이고 싶어 하셨다. 내가 마음이 힘들 때, 대학 준비에 관심이 없었던 것에 서운해하느라, 매번 '필요한 것은 없는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물어봐준 모습을 보지 않았다. 장 보고 오면 내가 좋아하지 않은 음식을 집고 너 줄려고 사 왔다고 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내가 뭘 좋아하는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느라, 내가 먹으면 기뻐하기를 기대한 부모님의 마음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게 따로 있기 때문에, 그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부모님은 나쁜 사람이어야 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사장님에게 불만을 품던 내가 생각났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잘하기를 원하는 사장님에게 화냈었는데, 정작 나는 부족할 수도 있는 사장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사장님은 사장님 나름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잘해주려고 하셨다. 그게 단지 내가 원하는 부분이 아니었던 것뿐이었다. 그건 나쁜 게 아니라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 건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만두고 싶기 때문에 사장님은 나쁜 사람이었어야 했었다.
인정 시점 : 나는 내 마음만 보느라, 상대방의 의도는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알았을 때 남도 부족해도 되는 사람이 됐다. 앞으로는 좀 더 너그럽게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