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착한 아이 증후군' 그리고 '나의 세 살 습관'
'착한 아이 증후군'에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진화된 걸까
'나의 세 살 습관'에서 '건강염려증'으로 진화된 걸까
분명 나는 서른 살이 된 지금
남들보다 나의 내면, 외면의 건강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확인하고 살피고 있다.
조금만 이상해도 '어? 왜 이러지?' 하고 남들보다 먼저 나의 건강을 돌봐왔던 것 같다.
최근 '스스로를 지키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나의 직업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내가 만난 아이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 내면의 건강에 눈이 멀만큼 그들을 사랑했구나, 라는 생각을 최근 종종 하게 되었다.
물론, 어떤 선택이든 100%의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의 아이들을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사랑한 것에 있어서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외할머니에게 갚지도 못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기에,
할머니에게 받은 그 사랑을 할머니껜 다 갚을 수 없겠지만 그 사랑의 힘을 알고 나누고 싶기에,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이 되기 전 그 해,
누구의 권유도 아닌 온전한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 '간호사'라는 직업을 잠시나마 꿈꿔왔기에,
서른 살의 선생님으로 만난 나의 아이들을 열렬히 사랑한 것에 대해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는다.
먼 훗날 나를 기억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내가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적어 나가기에
어쩌면 나는 이별조차 '착한 이별' 그리고 '마음 따뜻한 이별'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늘 이별을 위한 준비를 해온 아닐까? 나 자신에게 의문을 던져본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 밤, 조금 부끄럽지만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렸던 날이 있다.
나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해줬던 그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것이 왜 당연한 일일까, 아무리 직업이고 그 일로 돈을 벌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인데 말이다..
너무 고마웠으나 그날이 마지막이 될 분들에게, 내 마음을 선물하기 위해 노트를 찢어 편지를 드렸었다.
인턴 선생님께는 나는 유부녀이니, 러브레터가 아닌 순수한 환자로 응원 메시지를 담은 편지이노라!
큰소리치며 드렸고, 6층 병실 간호사 선생님들껜 한 분 한 분 그분들의 이름을 몰라,
'간호사 선생님들 일동'이라 적어 감사함을 표현했었다.
나의 감사함의 편지를 읽은 인턴 선생님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기분 좋은 미소로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고, 나의 감사함의 편지를 읽은 간호사 선생님은 나의 배드로 찾아와 나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었다.
"편지 고마워요, 감동이에요" 이런 직접적인 말은 아니었지만 그분들의 행동에서 그 감동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었다. 내 편지도 그분들께 잠시나마 그런 감동으로 전달되었기를 바라본다.
솔직한 마음을 태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4일 만난 인턴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성실하게 치료에 임했던 날들.
나는 그분들을 통해 타인을 내 가족처럼 여기는 선한 마음을 배웠고
나는 퇴원 이후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용기 에너지를 하루하루 채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사랑했던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병원 관계자로 3교대 근무를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종사자로 병원에 계셨고, 나의 어린이집이 병원 어린이집이라는 특수성에 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 교대근무를 하고,
나의 사랑하는 아가씨도 병원에서 교대근무를 해왔고,
시댁에서 보았던 아가씨의 유니폼 색깔이 간호사 선생님들과 비슷해서
내 또래 간호사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나의 다정한 아가씨가 생각났었기에,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새언니도 병원의 간호사로, 학교의 양호선생님으로 근무했었기에..
정말 가족은 아니지만 내 가족들이,
내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이렇게 근무하셨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나조차 '병원'과의 연결고리가 있었기에 더 그곳에서의 시간이 특별했던 것 같다.
(내가 꿈꾸던 브런치 작가가 된다면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발행하게 된다면, 병원에 외래를 가게 될 때 용기 내어 내 브런치 글을 보실 수 있도록 편지와 선물을 들고 금의환향하듯 다녀와볼까 한다.)
() 괄호 속 글은 브런치 작가를 기다리며 서랍에 있던 글이고 나는 이 글을 한 달 만에 고치는 중이다.
나는 정식 퇴사 일주일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브런치 작가로 내 필명으로 글을 발행하게 되었고, 병원에 외래는 글 쓸 시간이 부족해 갈 수 없었지만 나만의 재활을 미친 듯이 해서 사실 퇴사 일주일 만에. 다시 결혼 전 몸무게로 돌려놓았다. -7KG 감량
나를 누구보다 걱정할 그들을 위해 선한, 선의의, 착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예쁜 마음이 반짝이는 마음이 진한 보라색을 넣었다.
처음 알았다. 나는 늘 진실만 말했기에, 그렇다 생각했기에 내 선의의 거짓말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