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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는 성인의 축소판? - 3

by 구름돌

응급실에 도착한 도현은 심전도 (ecg) 기계를 끌고 간호사가 준 스티커에 적힌 환자를 찾아갔다.

환자의 나이 칸에 적힌 ‘4Y6M’. 도현은 아직 세상에 나온지 4년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몸이 얼마나 작을지 상상하지 못 한채 커튼을 열었다가 그 아담함에 당황하고 말았다.


‘어… 이 작은 몸에 이 전극을 몸에 붙일 수 있을…?’


심전도 기계에 기본적으로 부착된 전극, 일명 '뾱뾱이'. 붙이면 압력으로 인해 성인에게 사용했을 때도 피부가 민감한 사람이라면 멍이 쉽게 드는 물건이다. 피부가 약한 소아에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할 물건이었다.

당황해서 심전도 기계에 소아용 스티커가 있는지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도현을 보고 환자의 보호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게 무슨 검사죠? 왜 하는거에요? 아픈거 아니에요?”

“네, 이건 심전도 검사구요. 심장에 이상이 있는지 간단하게 확인하는 건데, 아이한테 아프게 하는건 아니에요“


순식간에 쏟아지는 질문에 당황한 도현은 기계적으로 설명했다.


“이거 하면 멍드는거 아니에요?“

“아, 이건 성인용 전극이라서요. 소아용이 있을텐데…“


계속 뒤적거리고 있는 도현을 보더니 보호자가 다시 매섭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해본적 있는거 맞죠? 소아과 의사 선생님 맞아요? 아니, 우리 애 가지고 실험하는거에요?“

“네? 아니 그게 아니고… 소아과 인턴이구요“

“인턴? 인턴이면 아직 의사 아닌거 아니에요? 아니, 아까는 진료도 간호사가 와서 보고 대체 소아과 선생님은 언제 와요?”

“간호사가요…? 그럴리가”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보호자 덕분에 도현의 가운 안은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당혹감과 무례함에 대한 분노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 하고 있는 사이 뒤에서 커튼이 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보호자분. 아까 제가 진료 봤잖아요. 저 간호사 아니고 소아과 의사고요. 여기 인턴 선생님도 엄연한 의사에요. 검사에 협조 안 해주시면 저희도 못 해요“

“어? 아…”


보호자는 당황하며 이로아의 얼굴과 가운 그리고 가운에 쓰여진 이름을 번갈아서 보며, 그제서야 조금은 수그러 들었다.


“아니… 아깐 가운도 안 입고 계시길래…”

“… 맥박이 빠른 것 같다고 하셔서 부정맥이나 맥박 이상 있는지 검사 좀 하려는 거니까, 결과 보고 알려드릴게요”


이를 꽉 물고 말하는 이로아. 그러면서도 도현에게 건낸 것은 소아용 심전도 전극 스티커. 감사하다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도현은 이로아의 표정을 보고 놀랐다. 화를 참고 있으면서도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반쯤은 해탈해 버린 표정. 그리고 그 속에는 어쩐지 슬픔도 섞여 있었다. 그녀의 어깨엔 지금까지 쌓인 말들이 내려앉은 듯 무거워 보였다.


심전도 결과상으로는 normal sinus rhythm. 즉 정상이라는 말이었다.

도현은 그 심전도 결과지를 들고 이로아에게 가려는데, 응급실 스테이션에서 이로아의 말소리가 들렸다. 격앙된 목소리.


"그러니까 그냥 집에 가라는게 아니고, 집에서 경과를 보고 2일 뒤 외래에서 보겠다구요"

"아니! 애가 열이 나고 가래가 끓는데 집에 가라고 하는 병원이 세상에 어딨어요!"

"보호자분, 제가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검사 결과도 괜찮고, 약 먹고 열도 이제 떨어져서 응급한 상황이 아니에요."

"오늘 집에 가면, 어? 내일은 나는 출근도 해야되는데 어떻게 하라고요? 아무튼 하루라도 입원 시켜줘요"

"... 여기는 대학병원 응급실이라서 그렇게 마음대로는 안 되구요"


그 끝없는 실랑이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는 와중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도현을 발견한 이로아가 이제 가보라는 듯이 손으로 작게 들어 보였다. 도현은 심전도 검사지를 이로아의 옆에 두고 두 사람의 언쟁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을 뒤로 한 채 응급실 스테이션을 나왔다. 도현이 당직실로 들어서자 콜폰이 울렸다.


"선생님, 혹시... 메모 읽고 처방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이로아 선생님이 전화도 안 되고 처방도 계속 안 주셔서요..."

"아 네네, 제가 확인하고 처방 낼게요"


아까 그 소란 속에서도 이로아의 콜폰은 쉬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 병동에서 쉼없이 이로아를 찾았을 탓이리라 생각했다. 컴퓨터를 켜고 EMR 로 확인 한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를 냈다. 대낮부터 해결되지 않고 쌓여 있는 소아청소년과 환자별 메모함. 그것만으로도 이로아가 얼마나 많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 아침엔 소청과 컨퍼런스까지 있는데...'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 처음 보는 약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도현은 용량들을 일일이 찾아보며 천천히 처방들을 정리해나갔다.


* * *


다음 날 아침, 교수님들 사이에서 컨퍼런스룸에 앉아 있는 도현의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몇 시간도 채 자지 못 하여 졸음이 쏟아졌어야 하지만, 긴장감이 졸음을 쫓아내 버린지는 오래였다. 어느덧 시간은 오전 7시 10분. 진작 진행되었어야 할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논문을 정리해서 발표하고 있어야할 이로아가, 발표자가 없는 컨퍼런스룸에서 모두들 당황해서 웅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로아 선생은 아직도 연락 안 되나?"

"네, 교수님. 콜폰은 꺼져 있고, 개인폰은 계속 안 받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의 또 다른 레지던트 4년차는 계속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이로아의 행방을 묻는 교수님들에게 일일이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같은 말만 무심히 반복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그 순간, 병동 간호사가 컨퍼런스룸 문을 열고 고개를 슬며시 들이밀었다. 그 인기척에 쏠린 모두의 시선.


"저... 교수님. 이로아 선생님 찾으러 당직실에 들어가 봤는데요..."


잠깐 머뭇거린 침묵에 모두가 집중했다.

간호사는 깨끗하게 접힌 근무복과 콜폰을 들어보였다.


"이로아 선생님 근무복 접어서 콜폰이랑 침대 위에 두셨더라구요..."


그것을 보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다들 알고 있었다.


"이로아 선생, 도망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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