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의 3수 성공기

3) 의사는 어떻게 되나요? ②

by 구름돌

앞서 말했듯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와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시기인 예과 생활과는 다른 본과생활이 시작된다.

"지금 하루 3시간 이상 자는 것은 감사하게 생각해..."

"너가 외워야 할 책들이 키를 훌쩍 넘길거야..."

"놀 수 있을 때 놀아둬... 이제 밖에는 못 나가니까..."

"여자친구? 다 헤어지게 될거야... 나도 그랬거든..."

입학 초기부터 선배들로부터 본과 생활에 대한 각종 괴담과 무용담들을 듣다 보면, 본과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공포와 긴장감으로 둘러싸이고, 지옥 같은 본과생활을 헤쳐 나갔다는 선배들이 우리에게는 그들이 어벤저스이며 인디아나 존스로 보인다.


의과대학 생활의 꽃 : 본과

본과 1학년부터 4학년까지가 흔히 생각하는, 잠 못 자고 공부에 찌든 의대생들의 생활이다. 크게 이론 중심의 수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본과 1-2학년과 병원에서 임상실습이 주가 되는 본과 3-4학년으로 나뉘어진다. 이 과정을 마치고 졸업해야 의사면허시험을 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본과 1학년은 적응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낯선 의학을 처음으로 접하는 시기이고, 방대한 양의 지식을 순식간에 외워야 하는 생활이 시작되고, 해부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인체라는 것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용어와 그림들을 외우다 보면, "이것까지 외울 수 있다고?" 하면서 내 뇌의 용량의 한계를 느껴볼 수도 있다.


의과대학 커리큐럼은 전체적으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를 몸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본과 1학년의 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해부학'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가 혹시라도 비위가 약해 의학을 위해 기증해주신 감사한 카데바 앞에서 구역질을 하진 않을지', '떨려서 칼을 대볼수는 있을지' 등의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교수님과 해부 조교분들도 이런 것을 잘 알아서인지, 해부학 교실에 들어가기 전 기본 지식과, 카데바에 대한 기본 마음가짐을 알려주신 후에 해부학 교실에 들어갈 때에는 휘몰아치듯이 실습에 몰아넣어 다들 정신없이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대부분이 덮여져 있고, 일부분만 열어둔 채로 해부학 실습을 시작해서 1시간만 지나면 그런 걱정을 하던 사람들은 아무도 찾아볼 수 없고, 그저 해부학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신기하게도 해부가 끝나면 배가 고프기도 하고, 실습시간에 해부 지식을 최대한 쌓아야겠다는 생각만 들게 된다.


낯설고 힘든 본과1학년이 지나면, 그 이후부터는 순풍을 탄 배처럼 흘러갈 수 있게 된다. 내가 몇 시간만 자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암기를 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되면서 이전보다는 수월해진다. 나는 내가 3시간의 수면와 10분의 낮잠이면 하루를 생활 할 수 있는지 이때 알게 되었다. (물론 하루 커피 3잔을 마셔야 하는 것도 이 때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힘들었던 본과 1학년의 공부양은 정작 본과 2학년 1학기에 배우는 양보다도 훨씬 적다. 영어를 접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사과를 보고 'APPLE'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힘들 것이다. a,b,c,d 를 수없이 외우고 'APPLE' 이란 단어를 수없이 외우고 나면 사과가 'APPLE' 이라는 것은 너무나 기초적인 것이 되는 것처럼, 본과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면 이후에는 한결 수월하게 지나갈 것이다. 적응을 마친 사람들은 이 시기에 요령껏 취미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기도 한다.

(나도 본과 2학년 말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쭉 연애생활을 하였다)


본과 3,4학년이 되면서 병원에 임상실습을 나가게 되고, 그 때 처음으로 '흰 가운'을 입게 된다. 학교 별로 다르지만 보통은 긴 가운/ 짧은 가운 으로 학생과 의사를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학생이 긴 가운/의사는 짧은 가운이 많고, 미국의 경우 학생이 짧은 가운/ 의사는 긴 가운 인 경우가 많다.)

'흰 가운'을 입고 처음으로 의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면서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는 시기이다. 그렇지만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기에 방해되지 않게 뒤에서 참관 위주의 실습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기가 참으로 아쉬운 점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실습생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학생으로서 병원에서 참관하는 것은 (물론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교육적인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외래실습이나 회진 참관 시에 학생이 같이 있는 것을 거부하는 환자분들도 몇몇 계셨다. 물론 민감할 수 있기에, 내가 생각해도 쉽게 참관 시켜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참관거부가 이해되지만,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본과 4학년 일 년 동안에는 1학기 정도만 임상실습을 하고 나머지는 본과 4학년 중반에 보게되는 실기시험과 말에 보게 되는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시기를 가진다.


4년간 배워왔던 많은 양을 한 번에 쏟아부어 시험에 붙고 나면, 비로소 의사가 된다.

그렇지만 "의사"라는 자격을 얻었을 뿐, 아직 의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얕고 넓은 공부를 했기에,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예를 들어, 피부미용을 하고 싶다면 피부과에서 미용을 배우는 시기가 필요하고, 응급처치라도 익숙하게 하고 싶다면 대학병원에서 1년간의 인턴과정은 겪는 것이 좋다. 나중에 수술을 하고 싶다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더 배우고 싶다면 1년간의 인턴 이후에 대학병원에서 4년간의 전공의 생활을 해야 한다. (외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일부 과는 3년의 전공의 생활을 하면 된다.) 군대를 가지 않고 의과대학에 입학 한 남자의 경우 인턴 전, 인턴 후, 전공의 4년을 마친 후 3가지 시기 중에 약 3년간의 군대 생활을 해야 한다...

의과대학 6년, 인턴1년, 전공의 4년 총 11년(+군대3년) 이 지나고 나면, 이제서야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전문의 XXX과 의사"가 된 것이다.


"선생님 애는 의사 시킬거에요?"

글쎄... 의사가 되는 과정은 너무나 길고 힘든 시기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물론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저 나중에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하나로 섣불리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꿈꾸는 미래를 보며 버티지 않으면 중간에 힘들고 그만두고 싶은 시기가 많을 것이고, 최소 한 번은 후회하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종종 찾아오고, 주변에서 정말로 후회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이 봤다.


이번 질문의 대답은 이거다

"아니요! 이 힘든 길을 억지로 가도록 시키진 않을 겁니다. 다만, 이걸 보고도 애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응원해 줄 겁니다"

작가의 이전글작은돌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