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by 타우마제인

<2. 초등학교>


일을 찾아 엄마가 의정부에서 서울로 오는 바람에 나는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엄마는 한글을 배우는 책이나 낱말사전, 동화 등을 사다 놓고 일을 하러 나갔다.

할 게 없던 나는 엄마가 놔두고 간 것들을 갖고 혼자 놀 수밖에 없었고

가끔씩 엄마가 도와주긴 했지만, 한글을 빨리 깨우치게 됐다.

한글을 빨리 알아버리니 무엇이든지 읽고 싶어졌다.



특히 위인전을 좋아했던 것 같다.

덕분에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유일한 박사, 에디슨 등등


시간이 없던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진 않아서 나는 동화를 잘 모른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한때, 보상심리로 수많은 동화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으로 집이 아닌 규정된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형제자매도 없고, 아빠도 없이, 엄마는 매일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혼자만 살아온 난

사회성이 결여돼 있었다.


천성도 내성적이었고

엄마가 동생을 입양 보냈을 때, 남긴 말에 상처를 받았고,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나는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였고

자전거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가 살인자라는 죄책감을 지니고 다니던 아이였다.


그때부터가 첫 시작이었던 것 같다.

공황장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인가, 공황발작 같은 느낌이 2년 동안 계속됐다.


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너무 슬프고 아픈 마음이 들어 눈물이 계속 나고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이 증상은 한 달에 한두 번씩 반복되다 사라졌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런 증상으로 엄마와 따로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름 내성적인 부분을 무기 삼아 나름 초등학교라는 사회에서 조용히 공부도 잘하는 축에 속하며 살아냈던 것 같다.


하지만, 친구 만드는 것에는 문제가 있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난, 친구를 집으로 데려가지 못했다.

조촐한 단칸방인 우리 집을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어서였다.


가난은 부끄러움이다.


그것부터 시작해서 친구가 다가오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불편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이상하다고 따돌림 시키는 친구들보다는 순수하고 좋은 친구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 좋은 친구들은 왜 다 놓쳤는지는 모르겠다.

나의 어느 부분에서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좋은 가정에 엄마, 아빠, 형제자매도 있고, 넓은 집에 웃음이 가득했던 순수해 보였던

그들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랑받지 못하고, 살인자라는 프레임을 스스로에게 씌운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