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행>
사람은 자라면서 과거를 힘껏 짊어진 채로 커간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처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불행한 이유야 제각각 다르겠지만, 불행은 대체로 가난에서 온다.
과거에 부유하고 행복한 일이 많았던 사람은 행복한 마음 하나를 짊어지고,
가난하고 불행이 많았던 사람은 여러 가지의 불행한 일들을 마음에 그대로 짊어진다.
하지만, 불행은 아물지 않은 상처와 흉터가 뒤덮인 흉한 모양새라서 가끔씩 펼쳐 볼 때마다
징그럽기 그지없다.
억지로 덜어내고 싶어도 덜어낼 수 없고, 가식적으로 무엇을 더 얹고 싶어도 얹을 수 없다.
그냥 묵묵히 짊어진 채로 나아갈 뿐이다.
중고등학교 때 사춘기를 맞은 내가 유독 관심을 갖게 된 건 공부와 우정이었다.
하지만, 실력이 있음에도 외고를 들어갈 수 없는 집안 형편을 알고 나서(등록금이 싸지 않다), 그리고 엄마 친구 실업계 고등학교 추천으로 인해 난 이미 내 삶의 한계를 어렴풋이 눈치챈 것 같다.
그래, 난 천재도 아니고 영재도 아니니까.....
내겐 치열한 의지도 없으니까.
그때부터 공부가 내 인생의 첫 번째는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의 고집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 가게 됐다.
하지만, 친구들은 달랐다.
친구들만이 내 세상이었고 행복했다.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란 존재가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다행히 내가 좋아했던 친구들은 비행청소년들은!! 아니었다.
공부 잘하거나 그냥 평범했던 친구들.
이건 외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아마 외할머니의 잔소리가 없었으면, 나는 어떤 친구들이건 나를 좋아해 주고 아껴줬던 친구들이라면 그대로 따라갔을 것이다.
술을 죽을 정도로 좋아하는 2명의 삼촌들 때문에(실제로 한 삼촌은 간경화로 돌아가셨고, 다른 삼촌도 간경화로 요양병원에 있다)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살아생전에 늘 상 나에게 엄마가 혼자 저렇게 힘들게 살고 있으니, 넌 나쁜 곳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고 주문 외우듯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엄마는 생김새도 닮았고, 성품도 닮았다.
법 없이도 살 사람들, 선량한 사람들. 독하지 못한 사람들. 자식에게도 싫은 소리 못하고 미안해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너무 답답해서 밉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아무튼 지금까지의 외로움이 친구들을 통해 달래지는 것 같았으며, 사람에 대한 따뜻함, 인정, 배려 등 인간에 대한 모든 것들을 친구를 통해 배워 나갔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었다.
하지만, 배신이라는 감정 또한 친구들을 통해서 배우고 말았다.
아마 여러 번 읽 것이다.
키만 훌쩍 크고, 말랐고, 운동도 잘하고, 나름 공부를 곧 잘하는.....
눈매가 매섭고 말이 없던 나는 중, 고등학교에서는 호감으로 인정되나 보다.
친구들이 많아졌고, 선후배들에게도 꽤 호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이 다르듯 배신과 비난,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억울하게 모함당한 한 친구를 지키려고 다수의 친구들을 따돌림 시켰던 나는 어느덧 모함당한 친구와 그들이 함께 웃는 것을 보며 허탈해했고, 고백을 했다 까인 영향력 있는 방송반 선배가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나를 왕따시킬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며 애증이라는 감정도 느끼게 됐다.
그렇다.
내가 멍청해서 반복되는 배신을 당하나 보다.
내가 이상한가 보다. 난 사회성이 결여됐으니까, 난 사랑받지 못했으니까.
난..... 난......
눈에 눈물이 맺혀 책상 위의 책이 안 보이는 날이 많아졌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라고 다 좋지만은 않은 거라고 친구라는 사회에서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그쯤부터 인간에 대한 타인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