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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by 타우마제인

<4. 돈, 레즈비언>


친구들에게 쓰인 에너지는 생각보다 엄청난 것이었나 보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성적은 계속 떨어지기 시작해서, 겨우 지잡대에 들어갔다.


사람에 대한 기대감은 자연히 버려졌다.


이제 사람들에게 더 이상 그만한 에너지를 쓸 일도 감정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그때부터 적당한 거리감을 두며,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이제는 돈 버는 일에만 몰두했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이며 생활비를 충당했다.

사실, 학교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다.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고, 카페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주로 음료를 만들거나 호프집에서

일을 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돈벌이는 괜찮았다.


나의 성 정체성(레즈비언인 것)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알게 됐지만, 대학을 들어가서도 남자친구를 만나는 등 그렇게 진지한 감정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K(남자친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그냥 K라서다.

다른 사람을 만나보자.


남자친구를 몇 번 사귀고 알았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성 정체성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


성 정체성에 확신이 들었다는 건 지금까지의 지인들과의 인연이 모두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때 사귄 남자친구와 내 친구들과 커플로도 자주 만나고 같이 놀러 다니기도 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럴 수는 없게 됐다.


하나의 세계가 갈라져 그들과 더 이상의 교차점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끝내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난 한 학기 남은 대학을 중퇴하고 커피회사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에서 커피 머신과 원두를 수입하는 업체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줄곧 식음료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니, 회사도 비슷하게 들어가게 됐다.


1998년도에 스타벅스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라서 내가 첫 회사를 들어갔을 때(2002년)에도 카페는 완전히 붐이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줄곧 돈과 창업 생각뿐이었다.


카페를 하거나, 커피 사업을 하거나.....

아이템은 당연히 커피였다.


돈을 어떻게 더 모을 수 있을까? 란 궁리뿐이었다.


그렇게 회사를 3년 다니다 우리 회사와 다른 커피 회사가 합병이 됐다.


바뀐 조직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싫었고, 회사만 다니다간 창업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퇴사를 하고 외국계 보험회사에 친구의 소개로 우연찮게 들어가게 됐다.

잘 됐다 싶었다.

창업을 하려면 영업스킬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장이 아무것도 모른 채 앉아서 영업 직원에게 돈만 벌어오라고 할 수 없진 않은가.


외국계 보험회사 P는 이제 막 한국에 들어왔을 때라, 커미션도 높았고, 영업스킬에 관한 비싼 강의를 무료로 듣게 돼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2년을 버텼다.


하지만, 보험회사가 어디 돈을 공짜로 주겠는가.


처음에 지인들에게 보험을 팔았고, 다음엔 지인의 지인, 또 그 지인의 지인.....

나는 점점 지쳐갔다.


사실 성격적으로도 보험회사와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내성적인 성격이 보험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외향적으로 변해 어떤 영업을 하래도 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성이 길러졌다.


그러던 중, 전 커피회사의 실장님에게 전화가 와 본인은 이제 다른 일을 하게 됐다며

커피 납품 거래처 몇 곳을 줄 테니,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언제나 창업을 꿈꿨던 나는 마다할 리 없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하지만, 큰돈을 요구한 것이 아니어서 승낙을 하고, 원두 관련 납품업체를 운영하게 됐다.

그때의 나이가 29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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