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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39_불타는 가게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신우가 마석을 찾았다.


마석은 신우의 괴력을 보고 매우 놀란 나머지 넋이 빠져 있었다. 그러다 신우와 눈빛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랐다.


“마석!”


신우가 마석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싸늘한 냉기가 온몸에서 퍼져 나왔다.


간담이 서늘해진 마석이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성난 신우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마석이 순간, 생각했다.


‘저 얼굴은 익숙한 얼굴이야 … 그래, 맞아! 신우야. 저놈은 신우야!’


마석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신우는 분명 죽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죽었다던 신우가 멀쩡히 살아서 나타났다. 그것도 22년 만에 어른이 되어서.


‘저놈이 복수하려고 나타났구나! 으으으!!’


마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커다란 위기였다. 방패막이가 될 줄 알았던 종로경찰서 순사들은 모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든 위기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가 급히 말했다.


“너 … 신우지? 신우가 맞지! 나 마석이야! 우리 고향 친구잖아!”


마석이 말을 마치고 애써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뒷걸음치고 있었다.


신우가 가슴 깊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레처럼 소리쳤다.



“왜! 내가 독립군하고 내통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냐?”



“헉!”


커다란 호통에 마석의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동수한테 거짓말을 시켰던, 그날이 다시 또렷이 떠올랐다.


그날 덕대와 신우, 누렁이가 죽고, 기철은 얼이 빠졌다고 들었었다.


마석이 몸을 일으켰다. 떨리는 목소리로 급히 말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거짓말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 그게 아니고 나도 누구한테서 들은 얘기야! 나도 속았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네 거짓말 때문에 덕대와 기철, 누렁이가 죽었다. 오늘 너도 같은 꼴로 만들어 주마!”


신우가 천둥처럼 호통을 치고 쏜살같이 달려와 마석의 멱살을 꽉 움켜잡았다.


“아니야! 아니야! 덕대는 나 때문에 죽은 게 아니야! 그리고 … 기철은 안 죽었잖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멱살이 잡힌 마석 발버둥을 치며 외쳤다.


“기철은 두 달 전에 죽었다. 네 놈 때문에 22년간 폐인으로 살다가 중병에 걸려 죽고 말았어!”


신우가 기철의 마지막을 회상하며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기철은 죽기 전, 신우에게 부모님과 덕대의 복수를 꼭 하라고 당부했다. 명호에게는 자기 어머니를 부탁하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22년간의 고통에서 해방된 듯 얼굴이 편안했다.


“정말 아니야! 내가 고발하지 않았어! 아버지가 알아! 아버지에게 물어봐!”


마석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버지까지 끌어들였다.


“못난 놈!”


신우는 한마디 욕을 하고, 그의 면상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퍽!



신우의 불같은 주먹에 마석이 나가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흘러나왔고 하늘이 노래졌다. 세상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마석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소매로 코피를 닦고 악이 바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 이놈아, 날 죽여라! 내가 신고했다. 네까짓 게 어쩔 건데! 다 네놈이 마을을 떠나지 않아서 생긴 일이야! 다 네 책임이라고!”


“이, 이놈의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대체 몇 대를 맞아야 정신을 차릴 거냐!”


신우가 재차 달려들어 마석의 배를 오른발로 냅다 후려쳤다.


신우의 철퇴 같은 발길질에 고통을 참을 수 없는지 마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러다 피를 토하고 신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여기에서 끝장내 주마!”


신우가 마석의 멱살을 꽉 잡고 들어 올렸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오른 주먹을 높이 쳐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탁탁하며 뭔가가 타는 소리였다.


마석 상회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매콤한 연기가 피어오르며 사방이 검은 연기로 가득했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서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불이야!”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불이 났어! 마석 상회에 불이 났어!”


“물을 가져와! 어서!!”


새빨간 불이 벽을 타고 지붕까지 타오를 때,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뛰어나왔다. 점원과 동수, 촌장 부인이었다. 동수가 혼절한 부인을 업고 달려 나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거 같았다. 그런데 가게 주인인 촌장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신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 아저씨!”


불길이 점점 거세졌다.


“젠장!”


신우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마석을 내팽개치고 가게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아저씨!”


“아저씨!”


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에 신우가 이를 악물었다. 불타는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촌장에게 꼭 물어볼 말이 있었다.


가게 안은 시뻘건 불과 검은 연기로 가득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길이 점점 거세졌다. 걷잡을 수 없었다. 이에 밖으로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타는 가게 앞에서 신우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저씨가 불에 타 죽은 건가? … 으으으~!’


신우가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 어디선가 간곡한 외침이 들렸다.


“신우야!”


신우 이름 두 글자가 들렸다. 이에 신우가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자기를 부르는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신우야!”


다시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위에서 들리는 소리구나.”


신우가 소리의 방향을 깨닫고 고개를 위로 올렸다.


촌장이 보였다.


촌장이 불타오르는 가게 지붕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거센 불길과 새까만 연기 속에서 신우를 간절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우야! 마지막으로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아저씨!”


신우가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하구나. 나도 그때 네 아비를 따라서 죽었어야 했는데 … 여태까지 욕심만 부리며 살았어. 흑!”


촌장이 참회의 피눈물을 흘리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울먹이며 말했다.


“신우야! 제발! 내 아들만은 살려다오. 난 살 만큼 살았지만, 마석은 … 제발!”


촌장이 울부짖었다. 못난 아들이지만, 소중한 아들인 마석을 살리기 위해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신우는 목숨을 걸고 자식을 지키려는 촌장을 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이 절로 났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홀로 일본군의 총칼에 맞섰던 아버지와 수십 발의 총탄을 맞으면서도 자기를 지켜준 어머니가 떠올랐다.


신우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네 진짜 원수는 그들이다. 그날 일본군 소대장 야마모토 지로가 네 아버지를 죽였고, 중대장 다나카 테츠야가 네 어머니를 죽였다. 그들은 지금 총독부 헌병대에 있다.”


촌장이 말을 마치고 눈물을 삼켰다.


“야마모토 지로와 다나카 테츠야!”


신우가 두 이름을 명심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든 촌장의 얼굴을 보면서 그 이름을 가슴속 깊이 새겼다.


“어이! 덕수, 내 친구, 내 소중한 친구, 콩깍지도 나눠 먹던 그 시절이 그립구먼. 내가 형인데 … 형 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이 꼴이라네. 허허허!

이제 나도 갈 때가 됐어. 자네가 떠난 뒤 솔직히 지옥 속에 살았어. 이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인가? 삶이 지옥인데, 타버리면 다 재가 될 뿐인데… .”


촌장이 가슴 속 깊이 꽁꽁 감췄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22년 만에 신우가 알던 촌장 어른으로 돌아왔다.


“하하하!”


촌장이 속이 후련하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슴 조여오던 죄책감을 훌훌 털어서인지 눈빛이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아들아! 내 아들아. 신우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줘라. 그것이 네 친구에게 속죄하는 유일한 길이다.”


촌장이 마석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을 말을 남겼다. 그리고 두 눈을 꼭 감았다. 뒤로 돌아서더니 불길 속으로 걸어갔다.


“아버지!”


마석이 간절하게 외쳤다.


그때! 지붕이 폭삭 무너지면서 촌장이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아버지! 아버지!”


촌장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자, 마석이 아버지를 구하러 뛰어갔다. 하지만 불길이 너무 거세서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불타오르는 가게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 넋을 놓고 말았다. 아무리 아버지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안돼!”


신우가 크게 외치고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촌장을 죽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촌장을 용서할 순 없었지만, 촌장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어릴 적 고마운 어른이었던 그를 이렇게 잃고 싶지는 않았다.


신우가 자욱한 연기와 사나운 불길을 헤치며 촌장을 찾았다. 그렇게 한참을 찾은 끝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촌장을 발견했다.


“으싸!”


촌장을 업은 신우가 출구를 찾았다. 사방이 자욱한 연기로 가득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매콤한 연기에 숨이 막혀 왔다.


새까맣게 탄 기둥이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천장에서는 대들보가 무너졌다.


마석 상회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숨이 턱 막히고 불타오르는 지옥이 되고 말았다. 빨리 빠져나가야 했다.


신우가 몸을 웅크렸다. 1초 후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지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붕을 덮고 있는 들보와 기왓장을 머리와 어깨로 “와장창” 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신우의 몸에도 불길이 붙어 옷이 타들어 갔다.


탁! 소리가 들렸다.


신우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지붕에 착지하고 사방을 둘러봤다. 안전한 곳을 향해 서둘러 뛰어내렸다. 사람들이 몰려와 몸에 붙을 불을 담요로 꺼주었다.


쿵! 하면 지붕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검은 연기가 용솟음쳤다.


“마석!”


신우가 마석을 찾았다. 10보 앞에 마석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석을 확인한 신우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마석 앞에 촌장을 고이 내려놓고 아무런 말 없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마석이 서둘러 촌장의 상태를 살폈다. 인공호흡하고 심장을 두들겼다. 그가 울먹이며 외쳤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제발! 아버지!”


마석의 울부짖음에도 촌장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촌장은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했다. 20여 년간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불안감에 휩싸이며 살아온 인생이 그렇게 스스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불은 한동안 꺼지지 않았다. 불길은 마석 상회를 완전히 다 태우고 나서야 잡혔다. 사람들은 촌장이 불을 질렀을 거로 추측했지만, 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크나큰 죄책감에 사로잡혀 평생의 노고가 담긴 소중한 가게와 함께 세상을 떠났으리라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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