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40_빵집에서 데이트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날이 밝았다. 밝은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해가 떴구나.”


신우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어나기 힘들었다. 어제 힘을 많이 써서 그런지 피곤했다. 그리고 마음도 무거웠다.


가슴에 뭐가 걸린 듯 무척이나 답답했고 돌덩어리를 씹어 삼킨 듯 개운하지 않았다.


촌장의 비극적인 죽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복수하기 위해, 22년간의 기다림 끝에 찾아갔지만, 촌장도 절박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도 잔인한 운명이었다.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본군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독립군과 아무 관련이 없는 30명에게 누명을 씌우고 처형했다.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군한테 한국 사람은 누렁이, 검둥이보다 훨씬 못했다.


‘다나카 테츠야! 야마모토 지로!’


신우가 두 이름을 읊조렸다. 그들은 부모를 죽인 원수였다. 참극의 집행자인 그들에게 반드시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마을 사람들이 당한 고통에다가 두 배, 세 배 이자를 쳐서 고대로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


마음이 무거웠고 가슴도 답답했다. 아침밥을 먹어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눈을 뜬 이후로 가슴 아픈 증세가 사라져 한 시름 놓았는데 다시 아플 것만 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푹 쉬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나갔다.


시간이 흘러 에리카와 만나는 날이 다가왔다.


에리카를 생각하자, 신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신우가 콧노래를 부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명호가 사 온 고급 양복을 꺼내 입었다.


촌장이 불을 지르고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든 후, 일본 순사들은 외지인에 대한 검열을 한층 강화했다.


종로 경찰서는 순사 네 명이 고작 괴인 한 명한테 봉변당하자, 이 사실이 소문이 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그 괴인을 잡아야 했다.


이에 사방에 경찰이 깔렸다. 허름한 옷을 입은 외지인을 상대로 불심 검문을 시작했다.


다행히 신우와 명호는 만주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해서 확실한 신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경성에 오기 전, 일본 사업가와 접촉해 인맥을 만들었다. 이 인맥을 통해 경성에서도 당당히 움직일 수 있었다.


경찰은 만주국에서 인정받는 곡물 도매상 정명호와 김철호 즉 신우가 사업상 경성에 잠깐 머무르고 있다고 판단했다.


신우는 옷차림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허름한 옷을 입고 맹인 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잘 나가는 사업가 김철호였다. 이에 고급 양복을 차려입고 멋을 내기 시작했다. 면도도 깨끗이 하고, 머리를 옆으로 빗었다가 다시 풀고 다른 쪽으로 빗기를 반복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명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신우한테 여자가 생긴 거 같은데 …. 그놈 말이 맞는 거 같아. 신우한테 그런 용한 재주가 있었구나. 그걸 미처 몰랐네. 눈을 뜨자마자, 연애 도사가 됐구나.’


명호가 빙긋 웃었다. 신우의 행동은 여자한테 잘 보이려는 남자의 행동이 분명했다. 사업가로 변모하려고 외모를 바꾸는 게 아니었다.


그가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신우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신우야. 오늘 무슨 약속 있어? 전에도 약속이 있었잖아.”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신우가 머리를 빗다가 동작을 멈췄다. 명호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속으로 역시 명호는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명호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신우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여자 친구 있으면 … 나도 좀 소개해 줘. 궁금하다.”


“여자 친구는 무슨!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신우가 큰소리 치며 역정을 냈다. 그러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냥 아는 사람이야. 대접을 받아서 보답하려고 ….”


명호가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떡이며 말했다.


“오! 그래, 여자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하네. 여자가 맞긴 맞는구나. 그래서 오늘 만나는 거야?”


신우가 무안한지 얼굴이 벌게졌다. 입에서 침이 점점 말라 갔다. 긴장했는지 손도 차가워졌다. 그가 생각했다.


‘여자 친구라니? 에리카는 일본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일본인과 사귀어 … 그건 안 될 일이야.’


신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와의 만남을 별거 아니라고 선을 긋고 싶었지만, 마음속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일단 오늘 일만 생각하자. 오늘 일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넥타이를 고쳐매고 구두를 신었다.


명호가 밖으로 나가는 신우에게 다가와 넉살을 떨기 시작했다


“같이 갈까? 나도 시간이 남는데.”


“무슨 소리! 중요한 약속이야.”


신우가 정색하고 명호를 나무랐다.


명호는 신우의 화난 표정이 오히려 재미있는 듯 웃기만 했다. 그가 말했다.


“신우에게도 봄날이 왔구나. 하하하! 잘 다녀와.”


“그런 거 아니래도!”


신우가 급히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 약속 장소는 고베비어드(神戶ビアード)였다. 경성에서 유명한 제과점이었다.


에리카가 자주 가는 빵집이었다. 멋있게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고베 출신 제빵사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빵을 매일 굽는 곳이었다. 단팥빵이 일품이며 카스텔라, 화과자도 꿀맛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집이었다.


신우는 그동안 간도에 살면서 빵을 자주 먹진 않았다. 어쩌다 명호가 사 온 빵을 먹은 정도였다.


생소한 음식이라 특이한 맛이라 생각했지만, 그리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빵집에 가는 게 달갑지 않았다.


유명한 맛집을 알면 그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는 외지인이었다. 경성에 온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경성의 물정과 지리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에리카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전차 기적이 울렸다. 동대문역에 전차가 도착했다.


“왔구나.”


신우가 급하게 전차에 올라탔다.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일찍 도착할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웠다.


그는 자리가 비어도 앉지 않았다. 멋지게 차려입은 양복이 구겨질 거 같아서 계속 서 있었다.


한편, 에리카는 방에서 열심히 꽃단장 중이었다. 저번에는 나풀거리는 헐렁한 드레스를 입었으니 이번에는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내심 몸매가 좋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몸매를 보여주고 싶었다. 신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했다. 부끄러움과 설레임 속에서 빙그레 웃으며 긴 머리를 열심히 빗었다.


“저, 언니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옆에서 에리카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던 요시코가 에리카의 눈치를 살살 보다가 말을 걸었다.


“뭐? 단둘이 만나기로 했는데······.”


에리카가 순간, 당황한 듯 말을 흐렸다.


“저, 언니!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요. 같이 가서 얼굴만 쓱 보고 바로 나올게요. 저랑 같은 한국 사람이라니 더욱 보고 싶어요.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이 평가해야죠.”


요시코가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에리카에게 사정했다.


“얘도 참!”


에리카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요시코의 청이 부담스러웠지만, 사랑하는 동생의 청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럼 진짜로 얼굴만 쓱 보고 나오는 거야.”


“네, 알았어요. 정말 얼굴만 쓱 보고 나갈게요.”


“신우씨에게 부담을 주면 안 돼!”


“명심할게요. 제가 언니 남자친구에게 왜 부담을 주겠어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요시코가 말을 마치고 신이 나는지 외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에리카의 화장품을 빌려서 요기조기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참, 나! 내가 발라줄게.”


요시코의 행동이 귀여운지 에리카가 화장품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두 처자의 웃음소리가 방안에 가득했다.


커다란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쏟아졌다. 그 햇살이 두 처자의 얼굴을 따뜻하게 비췄다.



**



신우가 고베비어드를 향해 걸어갔다. 전차 역에서 내려서 5분 거리였다.


빵집 위에 커다란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찾기가 아주 쉬웠다. 간판에 그림이 있었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멋진 중년 남성이 그려져 있었다.


신우가 빵집 창문을 통해 안을 확인했다. 다행히 에리카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쾌재를 부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약속 시각 10분 전이었다. 이에 여유를 갖고 에리카를 기다렸다.


에리카와 요시코는 약속 시각 3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근처 가로수에 숨어서 신우가 빵집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우와! 멋있다! 저번보다 더 멋져!”


요시코가 멋지게 차려입은 신우를 보고 손뼉을 짝짝 치며 감탄했다.


에리카는 확 달리진 신우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번과 달리 신우가 멋지게 차려입고 왔다. 사람이 달라 보였다.


비싼 옷을 입으니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가 더욱 빛을 발했다. 저번에는 맹인과 같은 행색이었다면 지금은 그녀가 상상하는 신사 그 자체였다.


네이비색 양복과 하얀 와이셔츠, 검붉은 넥타이, 검은색 구두가 참 잘 어울렸다.


“가자!”


에리카가 급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요시코가 안 된다며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말했다.


“약속 시각에 맞춰서 들어가요. 성질 급한 아가씨!”


“그럴까?”


“이제 5분만 더 기다리면 돼요. 남자는 잘 다루어야 해요. 관심이 있는 듯 없는 듯 애를 타게 해야 해요.”


“아이고! 어렵다, 어려워!”


에리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에게 연애는 풀기 힘든 수학 문제 같았다.


5분 후


에리카가 빵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신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한 명이 더 들어왔다.


귀여운 처자가 에리카 뒤를 따라서 들어왔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신우가 순간, 당황했다. 둘이 신우에게 다가와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요시코가 왼손으로 에리카의 오른팔을 꼭 잡으며 신우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언니 동생 요시코예요!”


“동, 동생이라고요? 안녕하세요.”


신우가 요시코에게 어색하게 인사하고 에리카의 얼굴을 쳐다봤다.


에리카가 요시코의 뺨을 살짝 꼬집고 웃으면서 말했다.


“놀라셨죠? 동생이 신우 씨를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데려왔어요. 좀 있다가 갈 거예요.”


“아닌데? 전 언니랑 계속 같이 있을 건데요.”


요시코가 정색하며 에리카를 팔을 세게 꼬집었다.


“아야! 진짜로 꼬집으면 어떡해.”


에리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요시코의 등판을 살짝 때렸다.


“아하! 그렇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신우가 말을 마치고 급히 냉수를 들이켰다. 그는 예상치 못한 동생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자매가 보기에 참 좋았다. 둘이 너무나도 친하고 스스럼없는 게 친자매라고 생각했다. 에리카는 지적이며 아름다웠고 동생은 토끼처럼 아주 귀여웠다.


두 처자의 웃음소리가 빵집에서 끊이지 않았다. 신우는 두 여자 속에서 멀뚱멀뚱 차만 마실 뿐이었다. 긴장했는지 목이 계속 타들어 갔다.


그때 빵집 문이 활짝 열렸다. 한 사람이 빵집에 들어왔다.


“어?”


신우가 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명호였다. 명호가 신우 몰래 그 뒤를 쫓아 왔다. 명호가 실실 웃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0화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39_불타는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