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40대 남자 둘이 재수 없게 봉변을 당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60대 남자는 이 둘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60대 남자가 분을 참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야 이놈들아, 그깟 돈 필요 없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죽었는데 그깟 위로금이 무슨 소용이야. 삼백은 개나 줘버려!
어서 내 딸과 손자를 살려내! 아니면 네 목숨으로 갚아!”
“하아~! 이거 참.”
40대 남자 둘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병원 앞에서 다투는 소리가 크게 들리자, 우영 병원 경비원 셋이 달려왔다.
멱살 잡힌 40대 남자가 경비원들을 보고 반색했다. 그가 소리쳤다.
“저는 산부인과 부교수 최인식입니다. 이 사람이 병원 앞에서 행패를 부리고 병원 업무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어서 이 사람을 좀 떼어주세요.”
“알겠습니다. 교수님. 어서 저 사람을 떼어내!”
경비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경비 둘이 60대 남자의 양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놔라! 이것들아! 놔라!”
60대 남자가 이에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를 끌고 가는 경비 둘은 모두 젊었고 완력이 셌다.
“다행이다.”
멱살이 불린 산부인과 부교수 최인식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경비 대장이 무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병원 업무를 방해했고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60대 남자가 지지 않고 맞섰다. 양팔이 꽉 잡혔지만,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이놈아, 부를 테면 불러라! 난 이판사판이다! 오늘 여기에서 죽을 거다!”
60대 남자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비 둘이 그의 양팔을 더욱 거세게 붙잡았다.
“놔라! 놔라!”
“선생님, 고정하세요. 제발!”
경비 둘이 쩔쩔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1인 시인을 하던 남자였다. 그 사연이 참 딱했다.
“이제 됐군.”
40대 남자 둘이 옷매무새를 고쳤다. 고가의 옷이 구겨지고 더러워졌다.
순백의 와이셔츠를 살피던 최인식 교수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젠장! 더럽게 쓰리, 카라가 시커메졌잖아. 아니! 침까지 묻었네.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으으으!”
“그러게 말입니다, 선생님. 하필 저 사람을 만나서 ….”
“완전 진드기구먼.”
최교수가 분을 참지 못할 때
차 한 대가 둘을 향해 다가왔다. 속도를 줄이더니 인도에 붙었다.
둘은 우영 병원 산부인과 의사였다. 최인식 교수와 김진성 교수였다.
김진성 교수가 급히 말했다.
“선생님, 지금 차가 왔습니다. 회장님이 보낸 차입니다.”
최인식 교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김교수에게 말했다.
“알았어. 먼저 갈 테니. 김선생은 나중에 와. 볼 일이 있다고 했지.”
“네, 볼일을 마치고 바로 가겠습니다.”
“장소는 그린 호텔, 일식집이야.”
“알겠습니다.”
두 의사 앞에 외제 차가 섰다. 최고급 검은색 세단이었다.
최인식 교수가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 김진성 교수가 한 손을 흔들어댔다.
세단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경비에게 제압된 60대 남자 앞을 지나갔다.
“저놈이!”
60대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듯 마구 몸부림쳤다.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눈에서 실핏줄이 터졌다.
마치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 60대 남자가 튀어 나갔다. 경비들이 그를 놓치고 말았다.
“아이고!”
“야, 놓치면 어떡해! 어서 잡아!”
경비 둘이 허겁지겁 60대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다니는 차도로 뛰어들더니 맹수처럼 검은 세단을 뒤쫓았다.
클랙슨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다급한 소리였다.
“아, 안돼!”
쾅!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60대 남자가 차에 치이고 말았다. 붕 뜨더니 허공을 날았다.
최인식 교수를 태운 검은색 세단은 계속 내달렸다. 사고는 그들과 관련이 없었다.
흰색 밴이 60대 남자를 치고 말았다. 검은색 세단을 뒤따라가던 차였다.
“미영아!”
한 여인의 이름이 들렸다. 억울하게 죽은 딸의 이름이었다.
1초 후
쿵! 소리가 들렸다. 60대 남자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동시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흰색 밴이 급히 멈췄다. 차 문이 열리더니 운전자가 무척 놀란 표정으로 차에서 나왔다.
“이, 이를 어떡해!”
운전자가 황급히 남자에게 달려갔다.
차에 치인 남자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모습이 처참했다.
“큰일이다!”
운전자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지체하지 않고 119에 신고했다.
“119 신고 센터입니다.”
“지금 사람이 차에 치였어요. 중상이에요. 서울 우영 병원 앞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때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 미영아!”
생명이 점점 사그라들던 남자가 마지막 힘을 자아내어 딸의 이름을 불렀다.
손미영은 그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30년간 홀로 키웠던 자식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 딸의 이름을 부르던 남자가 이승을 떠났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억울함에 사무친 영혼이 육신에서 떠났다.
3분 후 사이렌이 울렸다. 사고 현장으로 구급차와 경찰차가 달려왔다.
“세상에!”
김진성 교수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가 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어딘가로 전화하고 말했다.
“최선생님!”
“어, 김선생,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있어? 목소리가 다급하네.”
“최선생님, 그 사람이 차에 치였습니다.”
“그 사람이 차에 치였다고? 그 사람이 누군데?”
“좀 전에 선생님한테 달려든 남자 있잖아요. 딸과 손자를 살려내라며 ….”
“아! 손미영 환자 보호자를 말하군. 그런데 … 그 사람이 차에 치였다고? 중상이야? 경상이야?”
“제가 볼 때 죽은 거 같습니다. 차에 치여서 10m 이상을 날아갔습니다. 아스팔트에 머리를 쾅 박았습니다.”
“어,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러면 … 아주 잘 됐군. 골칫거리가 아주 스므스하게 해결됐어.”
“네에? 지금 뭐라고 하셨죠?”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지. 김선생, 이따 보자고.”
“… 아, 알겠습니다.”
김진성 교수가 전화를 끊었다. 그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처참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거 같았다. 10초 후 두 눈을 떴다.
구조 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이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60대 남자가 사고 현장에서 절명했다. 구조 대원들이 들것에 시신을 실었다. 얼굴에 흰 천을 덮었다.
시신을 실은 구급차가 출발했다. 근처에 있는 우영 병원으로 향했다.
40일 전, 아이를 낳던 한 여인이 목숨을 잃었다. 산모뿐만 아니라 어린 생명도 같이 세상을 떠났다.
이 현실에 아버지가 분노했다. 그는 수술을 담당한 의사와 병원을 찾아갔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냉대뿐이었다.
의료사고가 의심 갔지만, 돌아온 건 법적으로 처리하는 말과 위로금 300만 원이 전부였다.
***
늦은 밤이었다. 밤 11시에 가까웠다.
갑자기 날씨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센 비가 내렸고 강풍이 불었다.
이곳은 어둠이 가득 찬 바닷가였다.
거세게 굽이치는 파도 위로 높은 기암절벽이 우뚝 솟았다. 그 위에 여러 사람이 서 있었다.
모두 흠뻑 젖었다. 장대비가 소매 끝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심상치 않은 비바람이었다.
커다란 태풍이 해안가를 덮친 거 같았다. 굵직한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수직 절벽 끄트머리에 일곱 명이 서 있었다.
절벽은 40m 높이였다. 밑으로 검은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거친 파도가 절벽을 마구 때렸다. 강한 비바람에 눈뜨기도 힘들었다.
“꿇어!”
거친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한 사람이 무릎을 꿇었다. 명품 정장을 입은 40대 남자였다. 그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모진 구타를 당한 듯 이마와 눈두덩이에 피멍이 들었다. 옷도 군데군데 찢어졌다. 흰색 와이셔츠 카라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무릎을 꿇은 남자가 벌벌 떨며 사방을 살폈다. 여섯 명이 그를 에워쌌다.
여섯 모두 후드가 달린 검은색 롱코트를 입었다. 후드를 써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후드 안은 암흑 그 자체였다.
40대 남자가 빌기 시작했다.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간절한 목소리였다.
“제발 저를 풀어주세요. 그건 사고였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제 잘못이 아닙니다!”
후드를 뒤집어쓴 여섯이 답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잠시 40대 남자를 내려다보다가 누구라 할 거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용서할 수 없다는 의사 표시였다.
40대 남자는 최인식이었다. 우영 병원 산부인과 의사였고 조교수였다.
원한에 사무친 60대 남자가 딸과 손주를 살려내라며 멱살을 잡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최인식 교수가 앞에 있는 검은색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건 실수였어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그 약을 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쓴 겁니다.”
여섯 중 키가 크고 체격이 큰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의견을 말해보세요.”
나머지 사람들이 주저 없이 말했다.
“이자의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그 잘못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더욱 무겁게 처벌해야 합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그들은 검은 판사였다. 영포 해수욕장에서 송상하 부회장에게 죄를 물었던 자들이 다시 등장했다.
“수석 판사님, 재판을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검은 판사 중 수석 판사가 답했다. 그는 키가 작고 왜소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더니 최인식 교수에게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인식, 당신은 분만 유도제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약물을 사용해서 산모와 태아를 죽였다.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본 법정은 … 너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최교수가 깜짝 놀랐다. 그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다, 당신들은 도대체 뭐야? 나는 납치하더니 여기로 끌고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나를 심판하겠다는 거야?
당신들이 무슨 판사라도 되는 거야? 당신들이 대체 무슨 권리로!”
그 말을 듣고 검은 판사들이 씩 웃었다. 수석 판사가 굵은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는 … 검은 판사다. 악을 징벌하는 악마다. 검은 법전의 이름으로 너를 처벌하겠다. 너를 산모, 태아 살인죄로 사형에 처한다.”
“뭐, 뭐라고? 사, 사형이라고?”
최인식 교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 악물더니 두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그렇게 검은 판사를 밀치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검은 판사들이 튼튼한 장벽처럼 그를 막아섰다. 검은 장벽이었다.
파도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비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거대한 검은 파도가 기암절벽을 집어삼키려는 듯 그 탐욕스러운 입을 크게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