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다음날, 2025년 12월 8일 새벽 4시 40분
짙은 어둠 속에서 바다가 꿈틀거렸다. 파도가 어제보다 높았다.
배 한 척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헤치며 항해했다.
해경 경비정이었다. 경비정이 바닷가 근처를 돌아다녔다. 천천히 돌아다니며 실종된 송상하 부회장을 찾았다.
사방이 무척 어두웠다. 해 뜨기 전이라 더욱 그랬다. 서치라이트가 분주히 움직였다.
해경과 경찰은 이틀 밤낮으로 수색 작전을 펼쳤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실종자를 찾는 건 고사하고 소지품조차 찾지 못했다.
해상 구조 전문가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안으로 송부회장을 찾지 못하면 당분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진단했다.
물에 빠진 시신이 먼바다로 흘러 들어갔거나 아니며 물고기 밥이 됐을 거라 예단했다.
해경이 계속 수색을 펼쳤다. 환한 서치 라이트가 어둠을 밝혔다.
배가 쭉 뻗은 바닷가를 따라서 이동하고 있을 때
뱃머리 갑판에 서서 상황을 살피던 한 해경의 두 눈이 커졌다. 그가 크게 외쳤다.
“대장님, 저기에 뭔가가 붕 떠 있습니다.”
해경 대장이 서둘러 뱃머리로 달려갔다. 젊은 해경이 오른손 검지로 바닷가를 가리켰다. 그곳을 서치 라이트가 비췄다.
“응? 뭔가가 있는 거 같은데!”
해경 대장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아! 하며 감탄사를 내뱉고 크게 외쳤다.
“저기에 뭔가가 있다. 배를 저곳으로 붙여라.”
“알겠습니다.”
경비정이 천천히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로 접근할수록 물이 얕아지기 마련이었다. 작은 배로 이동해야 했다.
경비정에서 보트가 내려졌다. 모터가 달린 쾌속정이었다. 해경 둘이 보트에 탔다. 곧 모터에 시동이 걸렸다.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들렸다.
쾌속정이 거친 바다를 가르며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모래사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아! 저거는 ….”
해경 둘이 벌떡 일어났다.
잠시 후
해경 하나가 한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댔다. 물체에 접근했다는 신호였다. 해경 대장이 긴장감을 느끼고 침을 꿀컥 삼켰다.
쾌속정이 둥둥 떠다니는 물체 바로 앞에 멈췄다. 딱 봐도 사람처럼 길쭉했다.
해경 하나가 랜턴을 켰다. 불빛으로 물에 뜬 물체를 비췄다.
10초 후
“사, 사람이다!”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경비정까지 들렸다.
“드디어 찾았구나!”
해경 대장이 기쁜 나머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물에 뜬 물체는 사람이 맞았다.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며칠 동안 물에 빠진 듯 몸이 퉁퉁 불어있었다.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었다.
곧 시신 인양이 시작됐다. 퉁퉁 물에 불은 시신이 보트 위로 오르자, 모터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쾌속정이 경비정을 향해 재빨리 이동했다.
모터 소리가 점점 커지자, 해경 대장이 무전기를 들었다. 두 눈에 보트 안이 선명하게 보였다. 해경 옆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누워있었다.
그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머릿속에 송상하 부회장의 인상착의가 떠올랐다.
송부회장은 50대 중반 남자로 키가 크고 살이 많이 쪘다.
“저, 저건.”
해경 대장이 보트에 있는 시신을 확인했다.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곧 상부에 보고했다.
수사본부에 비상이 걸렸다.
오전 6시 20분
유강인이 잠자리에서 뒤척였다. 여기는 나진시 소재 관광호텔, 더 비치였다.
더 비치는 송상하 부회장이 실종된 바닷가와 가까운 거리였다.
유강인은 나진시에 도착한 후 마음이 편치 못했다. 경찰과 해경이 계속해서 송상하 부회장을 찾았지만, 이틀 동안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
“벌써 아침인가?”
창문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아직 날이 어두웠지만, 경쾌한 새소리 덕분에 아침이라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유강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깬 듯, 침대에 잠시 앉아있다가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 밖은 음산해 보였다. 어두울 뿐만 아니라, 짙은 안개가 내려앉았다.
유강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시야를 가리는 어둠과 안개는 꽉 막힌 수사 상황과 같았다.
드르륵! 창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커다란 창문을 열고 바닷가 찬바람을 즐겼다. 그렇게 정신 차렸다. 동해안의 찬바람 덕분에 정신이 바짝 들었을 때
삐리릭!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유강인이 급히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은 침대장에 있었다.
그가 급히 전화 받았다. 정찬우 형사의 전화였다. 이에 통화 버튼을 신속하게 눌렀다.
“정형사!”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송상하 부회장의 시신을 찾았답니다.”
“시신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해경 경비정이 바닷가에 떠다니는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그자가 결국, … 죽었군.”
“네, 그렇습니다. 시신 부검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알았어. 최대한 빨리 동부 경찰서로 갈게.”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황정수에게 연락했다.
“정수! 일어나. 출동해야 해.”
황정수가 졸린 목소리로 답했다.
“탐정님,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 벌써 출동해요? 혹 무슨 일이 있어요?”
“해경이 송상하 부회장 시신을 발견했어.”
“네에? … 시신을 발견했다고요? 정말이에요?”
“응, 정형사한테 전화가 왔어. 어서 수지한테도 연락해. 10분 후에 복도에서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탐정님.”
유강인이 전화를 끊고 서둘렀다. 옷을 입으며 송상하 부회장을 떠올렸다. 그는 글로벌 그룹, JS 그룹의 차기 리더로 각광 받았다.
송부회장은 유능한 사업가로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차기 회장이 될 거로 많은 사람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 시신으로 발견됐다. 죽은 채 바닷물에 뚱뚱 떠 있었다.
재벌 3세의 비참한 죽음이었다.
그는 이복동생 박재영이 등장하자, 동생을 죽이려 했고 병약한 아버지까지 방치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고 그 대가를 받았다.
그 누구도 운명의 여신을 피할 수 없었다.
송부회장은 죄의 대가를 받았지만, 누가 그를 죽였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이를 반드시 밝혀야 했다. 그것이 탐정의 임무였다.
유강인이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 조수 둘이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황수지의 긴 머리카락이 젖어있었다. 드라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
탐정단 밴이 신속하게 도로를 달렸다. 4차선에서 좌회전하더니 차를 세웠다. 여기는 강원도 나진시 동부 경찰서 앞이다.
황정수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 샌드위치가 있었다. 관광호텔 근처에서 산 아침 식사였다.
“이제 샌드위치 먹어요.”
황정수가 유강인과 황수지에게 샌드위치를 건넸다.
햄과 달걀이 들어있는 기본 샌드위치였다. 항상 기본이 맛있는 법이었다.
황정수가 말했다.
“자, 어서 드세요. 아침입니다. 잘 먹어야 하는데 부실하게 먹네요, 대신 점심은 든든하게 먹어요.”
“그래, 점심은 든든하게 먹자,”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식빵 안에 달걀과 햄이 잔뜩 들어있었다.
“맛있다.”
황수지가 무척 맛있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샌드위치를 참 좋아했다. 별명이 샌드위치 킬러였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황수지가 만족한 표정으로 황정수에게 말했다.
“참 맛있어요. 선임 조수님. 역시 뛰어난 맛집 감별사네요.”
황정수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내가 봐도 내 촉은 대단해. 그 가게가 작고 허름해 보였지만, 맛있어 보였어. 그래서 거기에서 샀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어.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법이지. 흐흐흐!”
유강인도 엄지척하며 황정수에게 말했다.
“그래, 역시 먹는 건 정수가 최고야. 존경해.”
“하하하! 제가 탐정님한테 존경도 받네요.”
황정수가 크게 웃었다. 샌드위치 덕분에 유강인한테 칭찬받았다.
5분 후 탐정단이 밴에서 내렸다. 경찰서 정문을 지나 강력반으로 향했다.
강력반 사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강력반에 수사팀이 있었다. 송상하 부회장 실종 사건 전담반이었다. 수사팀 책임자는 강력반 반장 엄태호 경감이었다.
유강인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이 동작을 멈췄다.
자리에 앉아 정찬우 형사와 얘기를 나누던 엄반장이 벌떡 일어났다. 큰소리로 충성을 외치더니 절도있게 경례를 붙였다.
“충성! 유탐정님, 오셨군요. 회의실에 브리핑을 준비했습니다. 어서 가시죠.”
유강인이 미소를 지었다. 수사팀 책임자가 믿음직스러웠다.
엄반장은 키가 크고 말랐다. 마치 기린 같았다. 하지만 몸에 절도가 넘쳐 흘렀다. 그는 경찰이 되기 전 군인이었다. 특전사 부중대장 출신이었다.
“네, 어서 회의실로 갑시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회의실로 향했다. 조수 둘과 수사팀이 그 뒤를 따랐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 길쭉한 책상과 의자가 보였다. 의자는 모두 10개였다.
유강인이 자리에 앉아, 조수 둘과 수사팀 모두 자리에 앉았다.
엄반장이 목을 가다듬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새벽 4시 46분경, 해경 경비정이 바닷가에서 떠다니는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명품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였습니다. 지문 확인 결과, JS 그룹 송상하 부회장이 맞았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엄반장이 브리핑을 이었다.
“강원도 경찰청 과학수사대에서 시신을 조사한 결과, 목에서 조른 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가 목을 졸랐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밧줄 같은 거로 목을 조른 자국입니다.”
“밧줄이라!”
밧줄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긴장감을 느꼈다.
엄반장이 앞에 있는 물잔을 들었다. 목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뒤에서 목을 조른 흔적입니다. 목을 조른 자의 힘이 무척 센 거 같다는 과학수사대의 소견입니다.
아직 부검하지 않아서 정확한 결과는 아닙니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그렇군요. 사인은 뭐죠? 목이 졸려 죽은 질식사인가요? 아니면 익사인가요?”
“목에 있는 자국이 선명한 거로 봐서 질식사한 거 같답니다. 이후 시신을 바다에 버린 거로 같습니다.”
“익사는 아닌 게 분명하죠?”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우리 경찰청 과학수사대 팀장은 오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그 정도는 육안으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견의 일뿐입니다. 현재 1차 부검 중입니다. 1차 부검이 끝나면, 다음날 정밀 부검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가족들한테도 알렸나요?”
“네, 알렸습니다. 가족 중 부인이 와서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남편이 맞는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유강인이 유족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송상하 부회장은 몹쓸 짓을 한 악인이었지만, 그에게도 그를 아끼는 가족이 있었다. 그렇게 그의 죽음을 잠시 애도했다.
30초 후 유강인이 고개를 들었다. 짧은 애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해야 했다.
사건이 실종 사건에서 살인 사건으로 바뀌었다. 유강인이 활약할 시간이 다가왔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언제나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