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흐흐흐! 일이 잘 풀리는군.”
최교수가 신이 난 표정으로 어두운 거리를 걷었다. 발소리가 가벼웠고 경쾌했다. 그렇게 5분 정도 걸었다. 어두운 골목 앞을 지나갈 때
골목에서 쿵쿵!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응?”
인기척을 느낀 최인식 교수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골목 안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였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다. 온통 검은색인 블랙맨이었다.
후드 안은 암흑이라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후드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차갑고 굵은 목소리였다.
“당신이 … 우영 병원 최인식 교수인가?”
“뭐라고?”
최인식 교수가 깜짝 놀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자기를 알아봤다.
순간! 검은 손가락이 허공을 갈랐다. 최교수의 멱살을 꽉 잡았다. 최교수가 골목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마치 급류에 빠진 듯했다.
“뭐, 뭐야? 뭐 하는 거야?”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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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단 밴이 바닷가 도로를 달렸다. 하얀 모래사장이 햇빛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저 앞에 공터가 있었다. 공터에 차가 많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차였다.
탐정단 밴이 공터에 들어가 주차했다. 뒷좌석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탐정 유강인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뒤이어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도 차에서 내렸다.
저 앞 모래사장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바로 저기군.”
유강인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도 그 뒤를 따라서 달렸다.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갈매기 우는 소리도 들렸다. 아득한 수평선도 끝없이 펼쳐졌다.
한마디로 평온한 바다였다.
하지만 모래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한 사람이 죽은 채 발견됐다. 비극의 장소였다.
강원도 동부 경찰서 형사들이 시신 앞에 있었다. 강력반 수장 엄반장이 고개를 흔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말했다.
“또 목에 졸린 자국이 있어. 송상하 부회장과 아주 유사한 사건이야. 김형사, 과학수사대는 언제 오지?”
“과학수사대는 곧 올 겁니다.”
“유탐정님은?”
“유탐정님도 곧 오실 겁니다.”
김형사가 말을 마치고 사방을 살폈다. 그의 두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헐레벌떡 사건 현장으로 달려오는 남자였다.
“저 사람은!”
김형사가 엄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유탐정님이 오셨습니다.”
“오, 그래?”
엄반장이 고개를 돌렸다. 저 앞에 유강인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오셨군.”
엄반장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30초 후 유강인이 엄반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엄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시신은 어디에 있죠?”
“제 뒤에 있습니다. 유탐정님 오셨다. 모두 비켜라.”
“알겠습니다.”
부하 형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한 사람이 보였다. 모래사장 위에 시신이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허리가 뒤틀린 채 쓰러져있었다.
하얀 모래사장과 검은색 정장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유강인이 시신을 확인하고 이를 악물었다.
“… 저 사람이군.”
유강인이 침을 꿀컥 삼켰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시신을 향해 걸어갔다.
처참하게 죽은 시신이 선명하게 보였다.
딱 봐도 고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였다. 하얀색 와이셔츠가 피로 얼룩졌다. 얼굴에 피멍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게 분명했다.
“인정사정없었군.”
유강인이 시신 앞에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온 엄반장이 입을 열었다.
“지문과 신분증으로 신원을 확인한 결과, 42세 최인식씨입니다. 서울 우영 병원 산부인과 의사로 조교수입니다.”
“의사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쪼그려 앉았다. 시신의 상태를 살폈다. 그중에서 목을 유심히 봤다.
“있군!”
목에 졸린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유강인이 양 입술에 침을 묻히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 거 같았다.
유강인이 엄반장에게 말했다.
“엄반장님, 송상하 부회장 시신 사진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목졸림 자국을 보고 싶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엄반장이 태블릿PC를 살폈다. 그가 해당 사진을 찾고 말했다.
“유탐정님, 여기 사진이 있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태블릿PC를 받고 사진을 살폈다. 목에 길쭉한 자국이 있었다. 그가 송부회장 사진과 앞에 있는 시신을 번갈아 보다가 중얼거렸다.
“흔적이 아주 유사하군. 음!”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정밀 검사가 남았지만, 육안상으로도 두 시신에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목졸림 자국이었다. 그 자국이 선명했다. 긴 자국이 목을 감쌌다. 언뜻 보기에도 그 흔적이 비슷했다. 같은 밧줄로 목을 조른 거 같았다.
엄반장이 긴장된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탐정님, 흔적이 유사하다면, … 연쇄 살인일까요?”
유강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 거 같습니다. 두 시신 모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둘 다 이곳 바닷가에서 발견되었고 똑같이 목졸린 자국이 있습니다. 연쇄 살인의 가능성 매우 큽니다.”
“아이고! 그렇군요. 큰일이 생겼네요.”
엄반장이 놀란 나머지 침을 꿀컥 삼켰다.
강원도 나진시는 범죄가 거의 없는 평화로운 도시였다. 그래서 강력반이 필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시신이 연달아 발견됐다.
모두 처참한 몰골이었다.
연쇄 살인 사건이라면 단순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추가로 피해자가 나올 수 있었다. 현재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는 상황이었다.
정찬우 형사가 유강인 옆으로 걸어왔다. 그도 시신을 살폈다. 목졸림 흔적을 유심히 보다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선배님, 목에 강한 자국이 남았습니다. 힘이 무척 센 자가 목을 조른 거 같습니다.”
유강인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가 정형사에게 말했다.
“정형사가 보기에도 피해자가 목졸림 때문에 죽은 거 같아?”
“제가 볼 때 그런 거 같습니다. 예사 흔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송상하 부회장과 최인식 의사가 동일범한테 죽었다는 말인데 ….”
“동일범이라며 … 범인이 왜 둘을 죽였을까요? 둘한테 원한이 있었던 걸까요?”
정찬우 형사의 말에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구타 흔적을 보면 깊은 원한이 있었던 거 같아. 송상하 부회장과 최인식 의사 사이에서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할 거 같아.”
“알겠습니다. 송상하 부회장이라면 … 그동안 나쁜 짓을 수없이 저질렀을 겁니다. 최인식과 같이 무슨 짓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부검 결과, 동일인의 소행이 맞는다면 수사본부를 따로 차려야 할 거 같아.
느낌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이 더 죽을 거 같아. 하루빨리 단서를 찾아서 그걸 막아야 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상부에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큰 목소리로 답했다.
유강인이 쪼그렸던 몸을 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가 참 잔잔했다. 파도가 아름답게 일렁였다. 마치 노래하듯 리듬감이 있었다.
철썩! 철썩!
파도 소리가 흥겹게 들렸다.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유강인의 마음은 폭풍 전야였다.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거대한 바위를 등에 멘 거 같았다.
그가 생각했다.
‘연쇄 살인 사건이라면 보통 일이 아닌데 피해자들마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야.
한 명은 굴지의 대기업 JS 그룹의 부회장 송상하고 다른 한 명은 우영 병원 산부인과 의사 최인식이야. 둘 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들이야.
범인이 이 둘을 죽인 이유가 있을 텐데 … 그게 중요해. 그걸 알아야 해.
연쇄 살인 사건은 범인의 동기가 무엇보다 중요해.’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강원도 동부 경찰서로 가서 1차 부검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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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 유강인과 조수 둘, 정찬우 형사가 있었다. 최인식 1차 부검 결과를 기다렸다.
유강인이 초콜릿 과자 봉지를 들었다. 봉지를 북 뜯고 과자를 꺼내서 와그작와그작 씹기 시작했다.
날이 점점 저물어갔다. 오후 5시를 향해 달려갔다.
유강인이 과자를 먹으며 사건을 생각했다. 얼굴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타오르는 듯 빠른 속도로 과자를 먹었다. 계속 봉지를 뜯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황수지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생각했다.
‘탐정님이 분명 연쇄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평상시보다 훨씬 빨리 과자를 먹고 있어.’
황수지가 실론티를 들었다. 유강인에게 실론티를 권하며 말했다.
“탐정님, 목마르시죠? 실론티 드세요.”
“응, 고마워.”
유강인이 실론티를 받고 쭉 들이켰다. 그렇게 갈증을 풀었다. 다시 초콜릿 과자 봉지를 들었을 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반장이 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1차 부검 결과를 통보받은 거 같았다. 그가 급히 입을 열었다.
“유탐정님, 최인식씨 1차 부검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사인이 뭐죠? 질식사가 맞나요?”
엄반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맞습니다. 사인은 질식사입니다. 줄로 목을 감싼 다음 꽉 조여서 죽였답니다.”
“시신을 송상하 부회장 시신과 비교했나요?”
“네, 비교했습니다. 두 시신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목졸린 흔적입니다. 그 눌린 자국이 매우 유사하답니다.
따라서 송상하 부회장을 죽인 자가 최인식 의사도 죽인 거 같다는 부검의의 소견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예상한 바였다. 연쇄 살인이 발생했다. 밧줄로 목졸라 죽이는 살인마가 등장했다.
범죄 행각이 무척 잔혹했다.
갑자기 숨이 콱 막히면 그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다. 모든 게 삽시간에 끊어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었다.
아울러 목격자가 없다는 점에서 주도면밀한 범행이었다.
유강인이 남은 과자 봉지를 들었다. 봉지를 북 뜯고 과자를 꺼내서 와그작와그작 씹었다. 그렇게 긴장감을 풀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엄반장이 유강인에게 말했다.
“최인식 의사의 주소는 서울입니다. 가족과 직장에 연락한 결과, 어젯밤 중요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퇴근한 후 바닷가 호텔인 그린 호텔로 가서 제약 회사 회장과 저녁을 먹고 그 이후로 연락이 두절 됐습니다.
저녁을 먹은 장소는 그린 호텔, 일식집 천마입니다. 조사 결과, 고가의 식당입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엄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두 명 모두 강원도 나진시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지만, 둘은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건을 서울청과 공동으로 수사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엄반장님은 시신을 발견한 장소를 철저히 수색하세요. 우리는 서울로 올라가서 두 피해자를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네, 철저히 수색하겠습니다.”
엄반장이 시원한 목소리로 답했다.
수사가 두 개로 나누어졌다.
강원도 동부 경찰서는 현장 조사에 집중해야 했다. 시신을 발견한 장소에서 단서나 물증을 잡아야 했다.
서울청은 피해자 조사에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범인의 동기나 윤곽을 잡아야 했다.
유강인이 손을 탁탁 털었다. 손에 묻은 과자 가루를 깨끗이 떨어냈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서울로 가서 피해자인, 송상하 부회장과 최인식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소상히 밝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