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탐정단 밴이 서울로 내달렸다. 다행히 교통 상황이 수월해서 예상보다 빨리 서울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밴이 주차장에 주차했을 때
날이 어두워 저녁때가 되었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공기가 어느 때보다 찬 느낌이었다.
유강인이 차에서 내렸다. 빠른 걸음으로 강력범죄수사대로 향했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가 따랐다.
강력범죄수사대에 참고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울청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참고인들은 피해자와 마지막을 함께 했던 측근이었다.
참고인은 송상하 부회장과 같이 나진시 영포 해수욕장을 찾았던 비서들과 최인식 교수와 함께 그림 호텔 일식집 천마(天摩)를 찾은 동료 교수, 예비 장인이었다.
먼저 송상하 부회장 비서부터 조사해야 했다.
조사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유강인이 안으로 들어갔다.
조사실에 우동식 형사와 비서 셋이 있었다. 우형사가 비서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문 앞에 서 있는 유강인을 쳐다봤다. 그가 입을 열었다.
“유탐정, 모두 신원을 확인했어.”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답을 하고 비서들의 얼굴을 살폈다. 여성 한 명과 남성 둘이었다. 모두 긴장한 얼굴이었다.
우동식 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어서 자리 앉아. 참고인 이름을 왼쪽부터 말할게. 맨 왼쪽에 계신 분이 비서실장인 이재철씨, 가운데 분은 나은성씨, 마지막 분은 배기찬씨야.”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우동식 형사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송상하 부회장님 사건 수사 책임자입니다.”
“유, 유강인?”
“진짜 유강인이네!”
비서 셋이 유강인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탐정 유강인을 직접 보고 신기한 거 같았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놀라움이 끝나자, 다시 긴장감이 흘렀다. 여기는 경찰청 조사실이었다. 알게 모르게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비서실장 이재철이 한 번 헛기침하더니 입을 열었다. 중간 키에 코끼리처럼 살이 찐 남자였다. 나이는 50대 중반이었다. 뿔테 안경에 눈이 작고 코가 컸다.
“유강인 탐정님. 저는 송상하 부회장님 비서실장 이재철입니다.”
비서실장이 말을 마치자, 옆에 있는 나은성 비서가 입을 열었다. 작은 키에 아담한 여성이었다.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수려한 미인이었다.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저는 송상하 부회장님 수행 비서 나은성입니다.”
마지막으로 배기찬 비서가 말했다. 키가 크고 멸치처럼 마른 남자였다. 얼굴에서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다.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저는 송상하 부회장님 수행 비서 배기찬입니다.”
참고인이 자기소개를 마치자, 유강인이 우동식 형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우형사가 귓속말했다.
“대장, 현재 특이 사항은 없어. 송부회장과 같이 바닷가에 갔는데 부회장이 혼자 있고 싶다고 해서 거리를 두고 따라갔대.
바닷가 모퉁이를 돌았을 때 부회장이 감쪽같이 사라져서 급히 찾았고 그러다 112에 신고했다고 진술했어.”
“그렇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에 있는 비서 셋은 매우 중요한 참고인이었다. 송부회장 실종 현장에 있었다.
‘바닷가라!’
유강인이 영포 해수욕장 모래사장과 바닷가 모퉁이를 떠올렸다. 그가 턱을 매만졌다. 어떤 질문을 던질지 고민하는 거 같았다.
10초 후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송상하 부회장님이 영포 해수욕장 바닷가에 가셨는데 왜 그곳에 가셨죠? 일정이 있었나요?”
비서실장 이재철이 답했다.
“특별한 일정은 없었습니다. 부회장님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직무에서 배제됐습니다.
혼자 사무실에 계시던 부회장님이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하셔서 나진시 바닷가로 간 겁니다.”
“그 바닷가로 가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유강인의 질문에 나은성 비서가 답했다.
“그곳은 부회장님이 자주 가시는 곳입니다. 그곳으로 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군요. 부회장님이 바닷가에 가셔서 뭘 하셨죠?”
“바닷가 식당에서 식사하시고 모래사장을 걸으셨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식히셨습니다.”
“맞습니다.”
배기찬 비서가 맞장구쳤다.
유강인이 비서실장인 이재철에게 말했다.
“비서실장님, 수행 비서들 말이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수행 비서들의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부회장님이 특별히 하신 말씀이 있나요?”
“특별히 하신 말씀은 없습니다. 대신, 말없이 고민만 하셨습니다.
고민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구속 영장 청구를 떠올렸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비서실장님, 부회장님이 구속 영장 청구 때문에 심란해하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뭐, 당연한 일이죠.”
“알겠습니다. 그날 바닷가에서 수상한 사람이 있었나요?”
비서실장 이재철이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수행 비서들을 쳐다봤다. 수행 비서들도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이재철이 말했다.
“바닷가에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척 한적했습니다.”
“확실한가요?”
“제가 볼 때 그렇습니다.”
“그때 파도가 어땠나요? 파도가 높았나요? 아니면 낮았나요?”
“파도는 잔잔한 편이었습니다. 파도 소리가 크지 않았습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부회장님을 뒤따라갔다고 증언하셨는데, 어느 정도 거리였죠?”
“글쎄요. … 50m 이상 벌어진 거 같습니다. 부회장님이 혼자 있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근접 거리에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부회장님이 바닷가 모퉁이를 돌자, 시야에서 사라진 게 맞나요?”
“네, 맞습니다. 모퉁이는 커브 길이었습니다. 부회장님이 모퉁이를 돌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회장님이 모퉁이를 도신 후 천천히 뒤따라 갔나요? 아니면 빨리 뒤쫓아갔나요?”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저희가 근처에 있으면 귀찮아하실 거 같아서 일부러 모퉁이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별일 없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 불찰이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비서들의 증언을 머릿속에 그렸다.
구속될 위기에 처한 송상하 부회장이 평상시 즐겨 찾던 바닷가를 찾았다.
비서들과 같이 바닷가를 거닐다, 비서들을 물렸다. 비서들은 50m 이상 거리를 유지하면 송부회장을 뒤따라갔다.
송부회장이 바닷가 모퉁이를 돌자, 뒤따라가던 비서들의 시야에서 부회장이 사라졌다.
비서들은 별일이 없다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았을 때 송부회장은 이미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유강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했다.
‘비서들 증언에 따르면, 부회장을 납치할 시간은 고작 몇 분에 불과해. 짧은 시간에 일을 저지른 게 확실해 … 이는 우발적으로 하기는 힘든 일이야.
범인이 … 부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동선을 미리 알고 있었어.’
유강인이 의심쩍은 눈초리로 비서들을 보기 시작했다. 눈빛이 조명을 받아서 날카로운 칼처럼 빛났다. 광채가 어렸다.
그러자 비서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앞에 있는 탐정이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의심의 눈빛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비서들이 불안한 듯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의심의 눈빛과 이를 회피하는 눈동자가 대치했다.
유강인이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송부회장님이 … 나진시 바닷가를 자주 가셨다는 말이죠?”
“마, 맞습니다.”
“누구랑 같이 가셨죠?”
“그게 ….”
이재철 비서실장이 헛기침했다.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우리 비서실 사람들은 다 갔습니다. 사모님이랑 자녀분들도 다 갔습니다. 사장단과 본부장님들도 같이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대략 몇 명이죠?”
“적어도 스무 명은 넘을 겁니다. 아니 삼, 사십 명은 족히 될 거 같네요.
부회장님은 나진시 바닷가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어릴 적 어머님과 같이 자주 놀러 간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 고향이 강원도 나진시입니다. 나진시는 바닷가 도시입니다.”
“그렇군요. 강원도 나진시가 부회장님 어머님 고향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음!”
유강인이 질문을 마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나진시 바닷가, 영포 해수욕장은 부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곳이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서린 곳이었다. 산란기에 접어든 연어가 찾는 고향과 같았다.
그가 생각했다.
‘이거 생각보다 용의자가 많군. 나진시 바닷가를 아는 사람이 아주 많아. 수사가 쉽지 않겠어.’
유강인이 생각을 이었다.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감쪽같은 범죄를 저지르려면 정보가 매우 중요해. 분명 확실한 정보가 있었던 거야. 그 정보를 넘긴 사람이 있는 거 같은데 … 정황상 앞에 있는 이 사람들이 가장 유력해.
나진시 바닷가는 광활한 곳이야. 현장에서 시시각각 정보를 넘겨야 범죄를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어.’
생각을 마친 유강인이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비서실장님, 몇 년 동안 비서실에 근무하셨죠?”
“저는 20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부회장님 젊은 시절부터 수행 비서로 일했습니다.”
“그렇군요. 다른 비서분들은 비서실에 얼마나 근무하셨죠?”
나은성 비서가 답했다.
“저는 비서실에 2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다음으로 배기찬 비서가 답했다.
“저는 비서실에 8개월 정도 근무했습니다. 아직 신입 사원입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비서들의 목소리와 얼굴빛을 자세히 살폈다. 특이점은 없었다. 거짓말을 할 경우, 목소리가 떨리거나, 얼굴빛이 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셋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모두 차분하게 진실을 말하는 거 같았다.
물론 고도의 범죄자들은 목소리와 낯빛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 타고났거나 훈련을 받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혹 부회장님과 원한이 있는 사람을 아시나요?”
비서 셋이 서로 쳐다봤다. 그들이 의견을 나누다가 비서실장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 그런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부회장님이 돌아가셨으니,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사업을 확장하고 실적을 쌓기 위해 작은 회사를 많이 합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큰 사업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다른 회사도 다 그렇게 합니다.”
“피해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 같은데 … 동의하시나요?”
“그, 그건 ….”
이재철 비서실장이 말을 잇지 못했다. 부끄러움을 느낀 듯 얼굴이 붉어졌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서운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자신이 평생 가꿔온 것을 빼앗긴다면 그 원망이 하늘을 찌를 거 같습니다.”
유강인의 말에 비서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 없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부회장님한테 여자 문제가 있었나요?”
여자 문제라는 말에 이재철 비서실장이 깜짝 놀랐다. 그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유강인이 우동식 형사한테 귓속말했다.
“선배님, 부회장한테 원한이 있는 사람을 조사하세요. 특히 여자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비서 셋도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비서들의 위치를 추적하고 통화와 문자 기록을 조회하세요.”
“알았어.”
우형사가 걱정하지 말란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마지막 질문을 비서들에게 던졌다.
“송상하 부회장님이 우영 병원 산부인과 의사인 최인식 교수와 친분이 있나요?”
“네에?”
이재철 비서실장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비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재철이 말했다.
“저는 24년 정도 부회장님 비서였습니다. 최인식 교수라는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부회장님은 산부인과 의사와 교류한 적이 없습니다.”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저는 부회장님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지인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비서님들, 조사에 성실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송상하 부회장 비서 3인의 조사가 끝났다. 다음은 최인식 교수 참고인 조사였다. 참고인은 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