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유강인이 1차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산 이슬의 달콤한 맛이 기운을 북돋아 줬다.
그렇게 기운을 회복했을 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찬우 형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다음 조사 대상자들도 들어왔다.
그들은 최인식 교수 살인 사건 참고인이었다. 동료 교수와 제약회사 회장이었다. 둘 다 최교수와 식사를 같이했다. 그 식사는 최교수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정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참고인 김진성씨와 안태연씨입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알았어. 참고인분들은 자리에 앉으세요.”
참고인 둘이 잠시 주뼛거리다가 자리에 앉았다. 둘이 긴장한 듯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유강인이 앞에 있는 물잔을 들었다. 목을 축이고 앞에 있는 남자 둘을 살폈다.
젊은 남자와 나이든 남자였다. 젊은 남자는 40대 초반으로 보였고 나이든 남자는 60대 중반으로 보였다.
우동식 형사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고인분들 긴장을 푸세요. 이 자리는 죄를 추궁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최인식 교수와 관련된 질문에 성실히 응하시면 됩니다.”
참고인들이 대답 대신 서로를 쳐다봤다. 서로를 못 믿겠다는 표정 같았다.
우형사가 두 손을 비볐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왼쪽에 계신 분이 우영 병원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부교수인 김진성씨고 옆에 계신 분은 크라운 제약회사 회장 안태연씨야. 회사 홈페이지에서 얼굴을 다 확인했어.”
“그렇군요.”
유강인이 앞에 앉은 두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의사이자 교수인 김진성은 딱 봐도 미남이었다. 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선명했다. 중간 키에 체격은 말랐다.
회장 안태연은 머리가 훤한 신사였다. 살이 쪘고 피부가 두꺼운 편이었다. 두꺼비 상이었다. 두꺼비 상은 돈복이 있다고 알려졌다.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최인식 교수 살인 사건을 담당하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두 분은 최교수를 마지막으로 만난 분들입니다. 제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답하겠습니다.”
참고인들이 답을 하자, 유강인이 김진성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인식 교수하고는 직장 동료입니까?”
“네, 맞습니다. 의대 선배님이자, 직장 동료입니다.”
“그렇군요. 최인식 교수는 심한 구타를 당한 후 목이 졸려 사망했습니다. 가해자와 갈등 상황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최교수가 최근에 누구랑 싸운 적이 있나요?”
김진성 교수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침을 꿀컥 삼켰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생체 신호였다.
유강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김교수님, 아는 게 있으며 어서 말씀해 주세요.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김진성 교수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느낀 듯했다. 그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조바심을 느꼈다. 김교수를 재촉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참고인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1분 후
“휴우~!”
긴 숨소리가 들렸다. 김진성 교수가 결심한 듯했다. 그가 양 입술을 떨며 말했다.
“사실, …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가 급히 물었다.
“문제라고요? 그 문제가 대체 뭐죠?”
이윽고 주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그게 ….”
유강인이 이번에는 재촉했다. 그래야 입을 열 거 같았다.
“김교수님, 어서 말씀하세요.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죽음의 진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렇죠. 사실 … 저도 위험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무척 두렵습니다. 오늘 밤 한숨도 못 잘 거 같아요.”
“네에?”
김진성 의사의 말에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이는 김교수도 연루됐다는 말과 같았다.
“으으으~!”
김진성 교수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옆에 앉은 안태연 회장을 쳐다봤다. 무척 원망하는 눈초리였다.
“이 사람이 참!”
안회장이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둘이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유강인이 생각했다.
‘둘 사이에 뭔가가 있어. 최인식 교수도 관계된 거 같아. 그래서 큰일이 생긴 거야.
병원 의사와 제약회사라?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야.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일 수 있어.’
김진성 교수와 안태연 회장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김교수가 이를 악물더니 입을 열었다.
“유탐정님, 그 약이 문제였습니다. 문제를 애써 감췄지만, 그것 때문에 최선생님이 돌아가신 게 분명합니다.”
“약이라고요?”
약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입술에 침을 묻혔다. 궁금증이 폭발했다. 이 말은 의료사고가 있었다는 말과 같았다.
“흑!”
김진성 교수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40이 넘은 남자의 울음은 예사롭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듯했다.
그러자 안태연 회장이 자기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유강인이 타오르는 궁금증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참고인들에게 말했다.
“참고인분들 어서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여러분의 안전은 서울 경찰청에서 보장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와 경찰을 믿어주세요.”
김진성 교수가 그 말을 듣고 진정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린 거 같았다. 그가 한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입을 열었다.
“유탐정님, 그동안 병원에서 감춰왔던 일이 있었습니다. 산모가 아이를 분만하다가 … 그만 죽는 사고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네에?”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동식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산부인과는 어느 곳보다도 아이를 안전하게 낳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일이 심상치 않았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산모가 … 아이를 분만하다가 죽었다고요? 그것도 여러 번 그런 사고가 있었다고요? 확실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보통 수술이나 의료 행위를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나 착오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반복되면서 문제가 됩니다.”
그 말을 듣고 안태연 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가슴을 송곳으로 찔린 듯했다.
“의료사고가 반복됐다는 말인가요? 자세히 말해주세요, 김교수님.”
유강인의 말에 김진성 교수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을 이었다.
“최인식 선생님 환자, 산모 셋이 분만 중에 사망했습니다. 세 번째 사고에서는 아이마저 죽었습니다.
그래서 보호자들이 병원에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병원 이사회에서는 과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적으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소정의 위로금만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한 보호자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그 보호자와 병원이 대치했습니다.
그 보호자는 병원 앞에서 1인 시위하며 병원을 압박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게 갈등이 계속됐습니다. 최선생님은 이를 이를 애써 무시했습니다.
최선생님이 돌아가신 날, 저랑 같이 병원에서 나와서 안회장님이 보낸 차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1인 시위하던 보호자가 최선생님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멱살을 꽉 잡고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손미영 환자 보호자였습니다.”
“손미영 환자 보호자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손미영 환자는 분만 중 아이와 함께 사망한 산모입니다. 아버님이 분을 참지 못하고 병원 앞에서 1인 시위 중이셨습니다. 그러다 최선생님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죠?”
“경비원들이 보호자 분을 떼어냈습니다. 최선생님은 안회장님이 보낸 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보호자 분이 경비원들을 물리치더니 차를 뒤따라갔습니다. 차도를 정신없이 내달렸습니다.
그러다 뒤따라 오던 차에 치여서 현장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즉사였습니다.
우리 병원 응급실에 오셨지만,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세상에!”
유강인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가 급히 물었다.
“1인 시위하던 보호자 분이 죽었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김진성 교수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사실의 분위기가 바위산처럼 무거워졌다.
한 가정에 새 생명이 생겼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일가족이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환자를 담당한 의사마저 비참하게 죽었다.
우동식 형사도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정신 차리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최인식 교수한테 원한을 품었을 거 같은데 ….”
유강인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최인식 교수 살인 사건은 첫 번째 사건인 송상하 부회장 살인 사건과 양상이 같았다. 그건 원한이었다. 이를 확인해야 했다.
유강인이 김진성 교수에게 말했다.
“김교수님, 의료사고를 당한 보호자들 명단을 아시나요?”
“알고 있습니다.”
“이를 경찰에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김교수가 말을 마치고 안태연 회장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원망과 함께 증오의 눈빛이었다.
유강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둘 사이가 심상치 않았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김교수님, 아까 약 때문이라고 하셨죠? 의료사고가 약 때문에 생겼나요?”
그 말을 듣고 안회장이 아니라는 듯 급히 입을 열었다.
“유탐정님, 그런 거 아닙니다. 우리 약은 안전 검증을 다 통과했습니다. FDA, 식약청 검사를 다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약입니다.
물론, 부작용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담당 의사가 잘 조절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뭐라고요?”
김진성 교수가 이를 악물었다. 뭔가를 크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약 때문인데 … 분명. 어디서 오리발을!”
유강인이 김진성 의사에게 말했다.
“김교수님이 맡은 환자는 괜찮나요? 분만 중에 사망한 사람이 있나요?”
김진성 교수가 서둘러 답했다.
“다행히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행이군요.”
“저는 운이 좋았던 거 같습니다.”
유강인이 안태연 회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안회장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낯짝이 점점 두꺼워졌다.
유강인이 안회장에게 말했다.
“저녁에 강원도 나진시 그린 호텔, 일식집 천마에서 최인식 교수를 만나셨죠? 같이 식사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안태연 회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네, 사실입니다. 그린 호텔 일식집에서 여기 있는 김선생과 같이 식사했습니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눴죠?”
“최선생은 예비 사위였습니다. 그래서 사위에게 제철 대방어회를 대접했습니다.”
“사윗감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물심양면으로 밀어줬습니다. 딸과 결혼하면 병원 하나를 지어주기로 약조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김교수가 분명 약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어. 그래서 의료사고 났다고 분명히 말했어.
병원은 이를 나 몰라라 했고 이에 분노한 보호자가 1인 시위했고 … 그러다 우연히 만난 최교수에게 항의하다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어.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듯, 최교수에게 비극이 닥치고 말았어. 최교수를 동해안 바닷가로 끌고 가 심하게 구타하고 목 졸라서 죽여 버렸어.
매 맞고 목 졸려 죽은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참을 수 없는 원한이 폭발한 거야. 원한을 갚기 위해 최교수를 죽인 게 분명해.
이건 한마디로 응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