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유강인이 생각을 마쳤다. 그가 잠시 참고인들을 바라보다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최인식 교수가 JS 그룹의 송상하 부회장을 언급한 적이 있나요?”
“네에?”
“그게 무슨 소리인지?”
김진성 교수와 안태연 회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JS 그룹은 다 아시죠? 한국 최고의 자동차 제조 회사입니다. 그 회사 부회장인 송상하 부회장과 최인식 교수가 친분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처음 듣는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참고인 둘이 고개를 흔들었다.
앞선 조사와 같은 상황이었다. 송상하 부회장 비서들도 같은 대답을 했다. 그들도 최인식 교수를 모른다고 답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고인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알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두 분의 신변을 보호해야 할 거 같습니다. 위치 추적을 해야 하니 절차를 잘 따라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참 다행이네요.”
참고인 둘이 안도했다. 우동식 형사가 정찬우 형사에게 연락했다. 둘의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조사가 모두 끝나자, 참고인 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시라도 여기에 있기 싫은 듯 서둘러 조사실에서 나갔다.
밖에서 둘을 기다리던 정형사가 말했다.
“김진성씨, 안태연씨, 저기에 있는 김형사가 절차를 안내할 겁니다. 잘 따라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인 둘이 김형사를 향해 걸어가자, 정찬우 형사가 조사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정형사에게 말했다.
“정형사, 최인식 교수가 맡은 산모 중, 분만 중 사망한 산모들을 전부 조사해. 김진성 교수한테 협조를 받아.”
“네, 알겠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크게 답을 하고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조사가 끝나자, 긴장감이 확 풀렸다. 물잔을 들고 물을 쭉 들이켰다. 시원한 물을 마시자, 정신이 다시 번쩍 들었다.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별개의 사건 같았던 두 사건이 점점 하나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피해자 모두 심한 폭행을 당한 후 목졸려 죽었다. 목에 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둘 다 깊은 원한을 산 사람들이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으면 원한의 그림자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기 마련이었다.
그건 떼려야 뗄 수 없는 낙인과 같았다.
유강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 원한이었군. 범인이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참지 못하고 원수들을 목 졸라서 죽였어.”
“그래 역시, 원한이었어. 그럴 거 같았어.”
우동식 형사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형사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장, 연쇄 살인이라면 … 피해자들한테 원한이 있다는 말이잖아?”
“맞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둘은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데 ….”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실은 한 패거리였던 건가?”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라면 살해 동기가 애매해집니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철저히 조사하는 건 내 주특기니까!”
“선배님만 믿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동식 형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조사실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응?”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예사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 문이 활짝 열리고, 이호식 팀장의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탐정!”
“네, 팀장님.”
유강인이 다시 긴장했다. 이팀장이 한 손에 태블릿 PC를 들고 있었다. 유강인을 보고 급히 말했다.
“유탐정, 피해자 목덜미에 아주 유사한 흔적이 있어. 이건 동일범이라는 강력한 증거야!”
유강인이 급히 답했다.
“흔적이라고요?”
“응, 목 졸린 자국뿐만 아니라 강하게 눌린 자국도 있어. 그 자국이 아주 유사해.”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나지막하지만, 힘을 주어 말했다.
“강하게 눌렸다고요?”
“응, 두 시신 목덜미에 눌린 자국이 거의 똑같이 있어.”
유강인이 고개를 내렸다. 이호식 팀장이 든 태블릿 PC를 내려다봤다. 그가 말했다.
“팀장님, 태블릿 PC에 그 사진이 있나요?”
“응, 있어. 어서 봐.”
이팀장이 유강인에게 태블릿 PC를 건넸다. 유강인이 태블릿 PC를 받고 사진을 확인했다.
피해자들의 목덜미를 비교한 사진이었다.
왼쪽에 있는 사진은 JS 그룹 송상하 부회장의 목덜미였고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우영 병원 최인식 교수의 목덜미였다.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두 목덜미를 자세히 살폈다.
두 목덜미에 긴 자국이 이어졌다. 밧줄로 목을 조인 자국이었다.
유강인이 다른 자국을 확인했다.
목덜미 가운데에 동그란 자국 두 개가 있었다. 이호식 팀장의 말대로 강한 압박의 흔적이었다.
“… 이 동그란 자국은?”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목덜미 가운데에 왜 이런 자국이 남았지? 목덜미 두 개에 공통으로 있는 자국이야.
이건 우연한 일치가 아닌 거 같아.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면 … 목이 졸릴 때 생긴 건가?
범인이 특별한 밧줄을 쓴 건가?’
유강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생각에 집중하다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두 손이 가슴팍 앞에서 멈췄다. 마치 밧줄을 들고 있는 거 같았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호식 팀장과 우동식 형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강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유강인이 손을 모으더니 힘을 주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의 목을 조이는 거 같았다. 많은 힘을 주는 듯 이까지 악물었다.
“팀장님, 대장이 지금 뭐 하는 거죠?”
우형사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이팀장에게 물었다. 이팀장이 자기도 모르겠다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조용한 조사실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호식 팀장과 우동식 형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유강인을 지켜봤다.
유강인의 두 손이 교차했다. X자 모양이었다. 목을 꽉 조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팀장이 오른 손바닥으로 넓적다리를 짝 쳤다. 그가 우형사에게 말했다.
“지금 유탐정이 목을 꽉 조르는 거야. 범인처럼!”
“아, 그런 거군요. 그렇지만 허공을 졸라서 뭐하게요? ”
유강인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범인의 살인 수법을 진지한 표정으로 재현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끔찍했던 순간을 상상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수사를 위해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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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에 사무친 괴한이 송상하 부회장의 뒤를 덮쳤다. 밧줄로 목을 옭아매더니 목을 꽉 조였다. 밧줄을 잡은 두 손이 스쳐 지나가면 X자를 그렸다.
“죽어라! 송상하! 네가 한 짓을 생각해라!”
괴한이 용을 쓰기 시작했다. 송부회장을 최대한 빨리 죽이려 있는 힘을 다했다.
바닷가 모퉁이 너머에는 비서 셋이 있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어서 일을 처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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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고개를 내렸다. X자 모양의 두 주먹을 자세히 살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두 팔을 내렸다. 태블릿 PC의 사진을 다시 살폈다.
유강인의 눈동자가 급히 움직였다.
그때 탄성이 들렸다.
“아!”
유강인이 뭔가를 깨달은 듯 탄성을 내질렀다. 유레카를 외쳤다.
그 모습을 보고 이호식 팀장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유강인이 뭔가를 알아낸 게 분명했다. 그가 급히 말했다.
“유탐정, 감을 잡은 거야? 그런 거야?”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감 잡았습니다. 목덜미에 있는 동그란 자국은 밧줄이 만든 겁니다.”
“밧줄이라고?”
이팀장이 그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유탐정, 목에 졸린 자국은 저렇지 않아. 저건 뭔가에 눌린 자국이야.”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졸리면서 눌린 자국입니다.”
“뭐?”
이호식 팀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유탐정, 졸리면서 눌렸다고? 그러면 다른 곳도 다 그래야지, 다른 곳은 그렇지 않잖아. 유탐정 답지 않게 말이 논리에 맞지 않아.”
“팀장님, 먼저 정찬우 형사가 불러주세요.”
“정형사를 불러 달라고? … 알았어. 우형사, 정형사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팀장님.”
우동식 형사가 답을 하고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정형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유강인이 정찬우 형사에게 말했다.
“정형사, 밧줄을 갖고 와. 성인의 목을 꽉 조일 수 있는 긴 밧줄이어야 해.”
“밧줄이요? 알겠습니다.”
정형사가 서둘러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유강인이 조사실 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주 매서운 눈초리였다.
마치 바로 앞에서 범인을 보는 거 같았다. 눈 속에 원한에 사무친 악귀가 보이는 듯했다.
연쇄 살인의 범인은 … 잔인한 복수자였다. 좌절 속에서도 커다란 복수를 키웠다.
1분 후 정찬우 형사가 긴 밧줄을 들고 조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밧줄이 있습니다.”
“좋았어.”
유강인이 밧줄을 받고 그 길이를 살폈다. 1m 길이의 가는 밧줄이었다. 적당한 길이였다.
“음!”
밧줄을 유심히 살피던 유강인이 한쪽 끝을 잡더니 매듭 하나를 만들었다. 커다란 매듭이었다. 매듭 하나를 만든 후 다른 쪽에도 매듭 하나를 또 만들었다.
밧줄 양쪽에 커다란 매듭이 하나씩 생겼다. 양 매듭 사이 거리는 40cm 정도였다.
유강인이 양손으로 매듭 옆을 꽉 잡았다. 그리고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줄이 탱! 하며 가볍게 진동했다.
모션 블러같은 진동을 살피던 유강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그래, 이거군!”
유강인이 다시 유레카를 외쳤다. 그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사건의 단서를 잡았다는 표정이었다.
밧줄에 있는 매듭 두 개를 보던 이호식 팀장이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아! 하며 크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눌린 자국은 매듭이 만든 자국이라는 거지!”
유강인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팀장님. 밧줄에 커다란 매듭 두 개를 만들고 목을 조른 겁니다.”
“왜 매듭을 만들었지?”
“아마도 … 미끄러지지 말라고 만든 거 같습니다. 더 강하게 목을 조이려고요. 밧줄을 잘 다루는 사람은 매듭을 잘 묶습니다.”
“그렇군!”
이호식 팀장이 타당한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번 실험을 해보자. 밧줄을 줘봐.”
“여기 있습니다.”
유강인이 이호식 팀장에게 밧줄을 건넸다.
밧줄을 받은 이팀장이 정찬우 형사와 우동식 형사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 우형사에게 말했다.
“우형사, 이리와 봐. 한번 목 졸라 보자.”
“네에? 제 목을 조른 다고요?”
우형사가 깜짝 놀랐다. 그가 두 손으로 자기 목을 꼭 감쌌다. 그가 급히 말을 이었다.
“팀장님, 제 목은 소중합니다. 이러지 마세요.”
이호식 팀장이 실실 웃으며 답했다.
“정형사보다 우형사 목이 통통해서 좋아. 어서 와. 한번 실험해보자.”
우동식 형사가 볼멘소리로 외쳤다.
“아니! 팀장님. 제가 정형사보다 한참 선배인데 … 왜 이런 일을 저한테 시키는 거죠?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이팀장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우형사, 잘 생각해봐. 정형사는 우리 경찰청 에이스야. 에이스 형사는 이런 거 하는 거 아니야. 정형사는 수사에 집중해야 해.
우형사는 보조니, 미안하지만 이 일을 해야겠다.”
우형사가 우는 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정말 너무 하십니다!”
“잔말하지 말고 어서 와! 정형사를 빼면 나하고 유탐정만 남잖아.
네가 좀 해라. 부탁한다. 인사고과에 반영해 줄게.”
이호식 팀장이 호통을 치다가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죠? 인사고과에 반영해 줄 거죠?”
“그럼, 수사에 몸을 사리지 않는 우형사를 배려해야지. 걱정하지 마. 아주 높은 점수를 줄게. 그러니 어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