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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탐정 유강인 19_28_살인마의 힌트

by woodolee

“말하기가 … 힘들지 않나요?”


유강인이 송창수에게 물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송창수가 답했다.


“전 … 곧 죽을 몸입니다. … 말할 수 있을 때 말해야죠. 죽은 다음에는 …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 … 쿨럭! 쿨럭!”


송창수가 다시 기침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가 힘들게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유탐정님, 절 찾아온 용무가 … 대체 뭐죠?”


유강인이 대답 대신 송창수의 얼굴을 살폈다.


송창수가 희미하게나마 미소짓는 거 같았다. 그는 무척 아픈 몸이었지만, 탐정이 찾아오자, 그 고통을 잠시나마 잊은 듯 옅은 미소를 선보였다.


유강인이 그 미소의 뜻을 헤아렸다. 그 뜻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웠지만,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거 같았다.


자기 존재를 알아준 고마움과 함께 진실이라는 고지를 점령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오만함이 엿보였다. 아울러 불안함도 깃든 거 같았다. 그래서 활짝 웃지 못하는 거 같았다.


계획된 일을 완수하기 전에 일을 그르칠까 봐 염려하는 거 같았다.


탐정이 진실을 아는 순간, 모든 일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송창수의 얼굴을 잠시 살피던 유강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이자가 나를 갖고 노는 거 같은데 …. 내 속내를 간파하려는 거 같아.’


유강인이 돌처럼 굳은 얼굴로 생각을 이었다.


‘이자가 나를 보고 벌써라고 했어. 그 뒤는 못 들었지만, 이제 뒷말이 뭔지 확실히 알겠어.

벌써 찾아왔다는 말이 분명해.

사건 수사관이 방문할 걸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일찍 찾아와서 당황했던 거야. 그래서 그 말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거야.

그렇다면 이자는 역시 … 내 예상대로 사건 관련자야. 송상하, 최인식 살인 사건을 잘 안다는 말과 같아.

면도날 송창수, 결국, 당신이 또 움직였군.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 맛을 잊지 못했어.’


화강암처럼 딱딱하게 굳었던 유강인의 얼굴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으로 송창수를 찾은 게 헛수고가 아니었다.


범죄 양상은 범죄자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우연히 같거나 어설프게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밧줄을 이용해 단박에 목 졸라 죽이는 기술과 목덜미 한가운데에 선명하게 남은 동그란 매듭 자국 두 개는 송창수와 공범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범죄자들을 은연중 자기 정체를 드러냈다. 그게 범죄자들의 심리였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은 범죄자의 심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훌륭한 영화였다. 말 그대로 숨바꼭질이었다.


유강인이 계속 생각했다.


‘송창수의 기술이 다른 이에게 전수된 게 분명해. 기술 전수는 송창수보다 공범이 전수한 거 같아.

송창수는 중병에 걸려서 자기 몸도 가눌 수 없는 상태야. 이런 자한테 누가 기술을 배우겠어.

30년 전, 반장님이 잡지 못했던, 베일에 싸인 두 번째 범인, 공범이 있었던 게 분명해.’


“흐흐흐!”


유강인이 말없이 생각에 잠기자, 송창수가 다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아주 아주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다른 이를 조롱하는 거 같기도 했고 무시하는 거 같기도 했다.


“아이고! 이, 이거 참.”


“세상에 ….”


황정수와 황수지가 살인마의 섬뜩한 웃음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은 듯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그들은 송상수가 병석에 누워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송창수가 건강할 때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가 웃을 때마다 등골에 얼음물을 부은 듯 오싹할 게 뻔했고 오금이 저려서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았다.


원룸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 속에 두려움과 진상을 밝히려는 의지가 공존했다.


미소를 흘리던 송창수가 조금씩 입을 벌리더니 아이처럼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음!”


유강인이 송창수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송창수의 범행은 … 세 번째 살인 까지는 완벽했어. 그러다 마지막 살인에서 갑자기 허술해졌어.

일주일 간격으로 벌어졌던 살인이 갑자기 하루 간격으로 좁아졌어. 마지막 살인은 너무나도 조급했어. 그래서 쉽게 잡힌 거야.

공범은 … 범죄를 기획한 브레인이야, 송창수는 세 번째 살인까지는 사냥개처럼 브레인의 말을 잘 따르다가 마지막 살인에서 브레인을 무시한 거야. 자기 마음대로 일을 벌인 게 분명해.

타오르는 욕망을 참을 수 없었겠지. 아울러 계속되는 성공으로 자만했을 거야.

송창수가 사냥개라면 브레인은 주인이야. 주인은 모든 걸 통제하기 마련이니 … 단박에 몰 졸라 죽이는 기술도 그자가 개발했을 거야.’


유강인이 회심의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연쇄 살인마 송창수를 대면하자, 30년 전 사건의 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직 추리에 불과했지만, 그럴듯한 추리였고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송창수의 얼굴에서 그 진실이 엿보였다. 그는 죽기 직전이었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 진실을 말하기 마련이었다.


뇌가 이를 거부해도 그 표정을 막을 수 없었다. 그 표정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양심이었다.


송창수의 양심은 오랜 세월, 마음의 궁전 지하 감옥에 갇혀 온갖 멸시를 받아왔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해방되어 희미하지만, 그 빛을 발했다.


“흐흐흐!”


송창수가 입맛을 다시며 황정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눈빛이 번쩍거렸다. 맛있는 먹잇감을 본 듯했다.


“아, 아이고!”


그 눈빛을 보고 황정수가 깜짝 놀랐다. 그가 기겁했다. 황수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가!’


살기 어린 눈빛을 본 유강인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송창수가 몹시 괘씸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 같았다. 무려 30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었지만, 자기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한 거 같지 않았다.


30년 전과 같이 다른 사람을 놀잇감으로 여겼다.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송 창 수!”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명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마에게 존대하기 싫었다. 그러자 송창수가 바로 맞받아쳤다.


“유강인 … 왜 버르장머리 없게 반말이냐? … 네놈이 반말하니, 나도 반말하겠다. 여기에 왜 온 거냐? … 뭐라도 훔쳐 먹으려고 왔냐? … 쥐새끼처럼.”


“뭐, 뭐라고? 쥐새끼라고?”


유강인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송창수가 힘을 자아내어 소리쳤다.


‘여기에서 네가 먹을 건 단 하나도 없다. 어서 썩 꺼져라! 너한테는 … 밥풀 하나도 줄 수 없다. … 콜록! 콜록!’


송창수가 다시 기침을 토해냈다. 그 소리가 자지러졌다. 커다란 고통을 느낀 듯 오만상을 찌푸렸다.


장민국 관찰관이 유강인에게 서둘러 말했다.


“송창수씨는 아주 위독한 상태입니다. 지나치게 자극하지 마세요. 여기에서 상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화를 꾹 참았다. 밥그릇에 밥을 꾹꾹 눌러 담듯이 타오르는 화를 한 편으로 쑥 밀어냈다.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송창수에게 말했다.


“송창수씨,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그렇지, 나도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야. 죽기 직전까지 무시당할 수는 없어!”


송창수가 만족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유강인이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의 소원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 정도 아량은 베풀어 줄 수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 송창수씨께 부탁이 있습니다.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이제는 사실을 말할 때가 됐습니다.”


송창수가 씩 웃었다. 그가 답했다.


“흐흐흐! 좋습니다. 유강인 탐정님, 어서 질문하세요.”


유강인이 황수지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황수지가 한 손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녹음기 녹음 버튼을 꾹 눌렀다.


유강인이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30년 전 당신은 네 명을 죽였습니다. 그때 … 같이 범죄를 기획한 공범이 있었나요?”


“흐흐흐!”


송창수가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미소로 답했다. 아주 야릇한 미소였다.


평범한 사람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


반면 유강인은 남다른 사람이었다. 그 뜻을 금방 알아챘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최근에 당신의 기술과 수법을 배운 사람이 있나요?”


“…….”


송창수가 여전히 답을 하지 않았다. 계속 야릇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유강인이 미소에 담긴 뜻을 다시 살폈다.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자와 그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의 문답이 오갔다. 이 문답은 평범한 소통이 아니었다.


조수 둘과 장민국 관찰관은 그 둘의 이상한 문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불교의 선문답을 하는 거 같았다. 선문답의 핵심은 염화미소(拈花微笑)였다.


염화미소는 말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걸 뜻했다.


부처가 설법할 때 연꽃 한 송이를 내보이자, 한 제자가 그 뜻을 헤아리고 미소를 지어서 생긴 말이었다.


유강인은 부처의 미소가 아니라 악마의 미소를 통해 진상을 파악했다.


그 주체와 처지가 달랐지만, 비슷한 상황이었다.


유강인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당신 기술을 사용해서 사람을 죽이는 자가 등장했습니다. 혹 짐작 가는 사람이 있나요?”


“…….”


침묵으로 일관하던 송창수가 빙그레 웃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이자의 침묵은 긍정이야. 기술을 배운 자가 있고 그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과 같아.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으련만, 내 소원을 들어줄 리 없어.

추리나 추측만으로 수사할 수는 없는데 … 확실한 게 필요해.’


유강인이 한 번 헛기침했다. 그가 아주 간곡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송창수의 입이 열리기만을 고대했다.


“송창수씨, … 제발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30년 전 사건 때 공범이 있었나요?

공범한테 밧줄 쓰는 기술을 배웠나요? 최근에 그 기술을 배운 사람이 있나요?”


“…….”


송창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황정수와 황수지가 답답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송창수는 진실을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신 표정으로 그 뜻을 전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군.“’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송창수의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지만 소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송창수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표정에서 그 진실을 은연중 드러냈다.


실망한 표정을 짓던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조수 둘과 장민국 관찰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송창수를 내려다보던 유강인이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송창수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갖고 놀던 장난감이 냇가에 떨어져 떠내려가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송창수씨.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등을 현관문 쪽으로 돌렸다.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과 그 소리를 듣고 송창수가 침을 꿀컥 삼켰다. 진실을 말할 유일한 기회가 그렇게 사라져갔다.


순간!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송창수가 뭔가를 말하려는 거 같았다. 그가 미간을 힘껏 모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장민국 관찰관이 말했다.


“괜찮으세요? 진통제를 드릴까요?”


송창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한 손을 들었다. 탐정이 문을 열고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마지막 순간, 진실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송창수의 입이 열렸다. 긴 침묵을 깨는 소리였다.


“유강인 탐정, 난 곧 죽을 몸이니 … 요건 말해주지. 잘 들어.”


“뭐라고요?”


유강인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송창수의 한 손으로 허공을 붙잡았다. 마치 유강인의 소매를 잡는 거 같았다.


“흐흐흐!”


송창수가 씩 웃었다.


“쿨럭! 쿨럭!”


다시 기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송창수가 자지러지게 기침을 내뱉더니 입에 잔뜩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피의 양이 상당했다.


살인마가 있는 힘을 자아내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의 도둑이 … 오늘은 포졸이 되는 거야.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뭐? 뭐라고?”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송창수가 붉은 이를 드러냈다. 그가 마지막 힘을 끓어 올리고 말을 이었다.


“유강인, 너는 전생에 극악한 살인마였을 거야. 그래서 현생에 탐정이 된 거야. 그 업을 씻으려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유강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송창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송창수가 마지막 말을 전했다.


“유강인, 선생을 찾아. 선생은 가까이에 있다.”


선생이라는 말에 유강인의 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선생은 공범이었다. 송창수에게 범죄 기술을 가르쳐주고 범행을 코치한 자였다.


“이제 됐다. 나는 다 말했다. 어서 가라! 가서 네 일을 해라. 난 내 일을 하겠다. 여기에서 … 조용히 죽겠다. 마지막 보금자리가 감옥이 아니라서 만족한다.”


송창수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꼭 감았다. 이제 기력이 다한 거 같았다.


“쿨럭! 쿨럭!”


자지러지는 기침 소리가 다시 들렸다.


유강인은, 그 자지러지는 기침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송창수의 말을 되새겼다. 말 속에 단서가 있었다. 하지만 모호한 말이었다.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러다 눈빛이 반짝거렸다.


송창수의 말 중 포졸이 뇌리에 스쳤다. 포졸은 과거의 경찰과 같았다.


“… 겨, 경찰!”


유강인이 몸을 떨었다. 송창수와 관련된 경찰이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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