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유강인이 송창수의 마지막 말을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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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도둑이 오늘은 포졸이 되는 거야.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유강인 너는 전생에 극악한 살인마였을 거야. 그래서 현생에 탐정이 된 거야. 그 업을 씻으려고.”
“선생을 찾아. 선생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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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님, 이게 대체 무슨 소리죠?”
“밑도 끝도 없는 소리 같아요.”
황정수와 황수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반면 유강인이 달랐다.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 거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장민국 관찰관을 찾았다. 장관찰관은 유강인 바로 옆에 있었다.
유강인이 장민국 관찰관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관찰관님,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사건을 잘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장관찰관이 말을 마치고 공손히 인사했다. 그는 호인이었다. 심성이 무척 친절했다.
“그럼 이만.”
유강인이 문손잡이를 잡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복도의 찬바람이 뜨거웠던 이마를 식혔다.
탐정이 현관문은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연쇄살인마는 집 안에 있었다.
그렇게 둘은 각자의 길을 떠났다.
탐정은 새로운 사건을 풀어야 했고 죽음을 앞둔 살인마는 최후를 준비했다.
유강인이 잠시 복도에 서서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렇게 기분을 전환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 뒤를 조수 둘이 따랐다.
3분 후 탐정단이 원룸 빌딩에서 나왔다.
유강인이 고심했다. 송창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계속 생각했다. 그 말은 맥락이 끊긴 모호한 말이었고 진실을 빗대어 표현해 암호 같았다.
‘송창수는 … 죽기 직전이야. 그래서 진실을 말했을 거야. 공범을 배신할 수 없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힌트를 준 게 분명해.
힌트 중에서 포졸을 먼저 찾아야 해.
송창수가 경찰과 손을 잡았거나 아니면 경찰 중 누군가가 사건에 관련됐다는 말인 거 같아.
당시 사건 담당 형사는 스승님이셨어. 마소장님도 수사에 참여하셨고, 그런데 두 분은 범인인 리가 없어.
송창수와 관련된 경찰은 분명 다른 사람일 거야. 그자를 어서 찾아야 해.’
유강인이 생각을 마쳤다. 안갯속에 빠졌던 수사가 방향이 잡히자,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유강인이 30년 전 연쇄살인마 송창수 조사를 마쳤을 때
서울에서 유명한 호수인 석인동 호수 산책로, 둘레길에 사람들이 붐볐다. 이곳은 사건 현장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울창한 수풀 속을 내려다봤다. 그들 중에 경찰도 있었다. 근처 파출소에서 출동한 경찰 셋이었다.
“김경장, 이순경 사람들을 통제해.”
파출소 부소장의 말이 들리자, 출동 경찰 둘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리를 피하세요. 여기는 사건 현장입니다. 일반 시민은 이곳에 계시면 안 됩니다. 멀리 떨어져 계세요.”
“아, 알겠습니다.”
“아이고, 너무 처참한 몰골이네. 쯧쯧!”
사람들이 사건 현장에서 물러났다.
경찰 셋이 초목이 무성한 수풀 앞에서 상황을 통제했다.
석인동 호수는 줄여서 석호라 불렸다. 서울에서 유명한 곳이었다. 2000년에 만든 인공 호수로 그 규모가 컸다. 축구장 세 개 크기였다.
호수 주변으로 녹지가 잘 조성돼 공기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최적의 산책로였다.
아울러 야경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넓은 호수와 근처 첨단 아파트와 빌딩이 만드는 불야성은 도심의 절경이었다.
특히 달빛도 별빛도 없는 날, 빌딩과 아파트의 찬란한 조명이 넓은 호수에 드리워지면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물가에서 춤을 추었다. 높은 발색력과 은은함을 자랑하는 최고급 물감을 호수에 아낌없이 푼 듯했다.
그래서 데이트 코스로 각광 받았다. 석호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몰리자 주변에 고급 식당들과 술집, 카페들이 문을 열었다. 그렇게 유흥가가 형성됐다.
앵앵!
사이렌 소리가 크게 들렸다.
경찰차 두 대와 강력반 밴 한 대가 석호 주변 도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차들이 서둘러 석호 근처 주차장에 주차했다. 강력반 밴의 차 문이 열리더니 형사들이 뛰어나왔다.
그중에 정찬우 형사가 있었다. 형사들이 산책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형사들과 경찰들이 산책로에 들어서자,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댔다.
“저기군, 어서 가자고!”
정형사가 동료들에게 말하고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
유강인은 탐정단 밴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송창수를 만난 후 기가 좀 빨린 듯했다.
송창수한테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다른 이의 기를 쭉쭉 빨아들이는 거 같았다.
그래서 에너지 보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유강인이 에너지 보충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초코 과자와 실론티를 마시며 기력을 회복하고 있을 때
삐리릭!
유강인의 핸드폰이 급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우동식 형사였다.
유강인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네, 선배님.”
우형사가 급히 말했다.
“대장, 송상하 부회장한테 원한을 품은 자들을 정형사가 조사했는데 ….”
“아, 그래요.”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참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송상하, 최인식 살인 사건은 원한에 의한 살인이 확실했다. 그래서 피해자한테 원한을 품은 자들이 중요했다.
우동식 형사가 말을 이었다.
“JS 그릅 인사과 직원 하나가 몰래 귀띔한 게 있어. 아주 좋은 정보야.”
그 말을 듣고 유강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가 급히 말했다.
“귀띔이라고 그게 뭐죠?”
“그 사람은 오랜 기간 인사과에 근무한 직원이야. 비서 중 하나가 송상하 부회장과 악연이래.”
“네에? 악연이라고요? 그것도 비서가?”
“응, 그런데 그 비서가 하필 사건 현장인 영포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부회장을 수행했대.”
“아! 실종 현장에 있던 비서를 말하는 거군요.”
“응, 그렇지. 그래서 자기는 그 비서 채용을 만류했대. 뭔가가 꺼림칙해서 … 그런데 부회장이 고집해서 채용된 거래.”
“아하!”
유강인이 오른손바닥으로 오른 무릎을 딱 쳤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송상하 부회장 살인 사건은 광활한 모래사장에서 일어났다. 비서 셋이 부회장을 뒤따라가고 있었다.
부회장은 비서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 걷다가 바닷가 모퉁이를 돌았다. 몇 분 후, 뒤따라오던 비서들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때 부회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어두운 밤이었지만, 드넓은 모래사장이라 사람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부회장을 찾을 수 없었다.
이는 납치가 매우 조직적이면서도 신속하게 벌어졌다는 걸 암시했다. 근처에 납치범의 조력자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 몇 분 사이에 드넓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건장한 남자를 납치해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철저히 준비해야 했고 부회장과 비서들의 동선을 꿰뚫어야 했다.
그래서 유강인은 비서들을 의심했다. 비서 중 누군가가 납치범과 공모한 거 같았다.
그자가 부회장과 다른 비서들의 행적을 공범에게 실시간으로 알렸을 거 같았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비서 중 누구를 말하는 거죠?”
“여비서야, 나은성씨야.”
“나은성! 나은성 비서.”
유강인이 수행 비서 중 나은성을 떠올렸다. 참고인 조사 때 만난 여자였다. 상당한 미인이었다.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송상하 부회장은 호색한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의 비서가 그와 악연으로 얽혔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나비서가 부회장과 어떻게 관련됐죠? 어떤 악연이죠?”
“나은성 비서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했는데 JS 그룹과 협력 관계였어. 그러다 회사를 JS 그룹에 넘겼어. 2년 전 일이야.
급히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물어봤는데 매각 대금이 헐값이래. 이후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스스로 죽었다고요?”
“응. 회사를 매각하고 1개월 뒤야. 그러자 부회장이 직접 문상가서 당시 상주였던 나비서를 위로했대. 이후 나은성을 비서로 채용했어.”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송상하 부회장은 재계에서 인수합병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유망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어 헐값에 인수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가 잘 나갔을 때는 이런 말을 하는 자는 없었다. 후환이 두려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구속 위기에 놓이자, 그의 실상이 세상에 낱낱이 알려졌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나은성 비서 아버지가 회사를 송상하한테 헐값에 넘겼다면 그 울분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 같아. 치욕스러웠겠지.
그런데 딸이 그런 자의 비서가 되다니 …. 이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원수와 한배를 탔어.’
유강인이 참고인 조사 때 나은성 비서가 한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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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서실에 2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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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면 아버지 회사가 JS 그룹에 넘어갈 때인데 … 공교롭게도 딱 들어맞는군.
나은성! … 나은성이 바로 첫 번째 용의자야. 원수를 갚기 위해 비서가 된 거 같아.’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드디어 용의자 한 명을 찾았다.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남자의 딸이었다.
딸은 원수의 비서가 됐다. 원수를 상관으로 모셨지만,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원수를 갚은 거 같았다.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강한 적을 치려면 적의 측근이 되어야 했다.
유강인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동식 형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인식 교수 건도 조사했어. 산모 세 명이 분만 중 죽은 사건을 조사했는데 ….”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죠?”
“두 집안은 병원과 비밀리에 합의했더군. 위로금을 받았어. 한 집안은 천만 원이고, 다른 집안은 8백만 원이야.
두 집안도 계속 병원에 항의했지만, 법적으로 해결하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합의했대.
그러자 병원에서 처음 제시했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줬어. 그렇게 무마했어.”
“마지막으로 남은 집안은 어떻게 됐죠?”
“그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어. 참고인 조사때 최교수 동료인 김진성 교수가 한 말 기억나?
딸과 손자를 잃고 병원 앞에서 1인 시위하던 사람이 차에 치여 죽었다는 ….”
“네, 기억이 납니다.”
“바로 그 집안이야. 역시 병원에서 합의금을 제시했어. 그런데 아주 쥐 꼬리 만한 금액이었어. 이백만 원을 제시했대.”
“고작 이백이라고요?”
“응, 보나 마나 합의하면서 돈을 더 주고 생색내겠지.”
“사람이 둘이나 죽었는데 이백을 제시하다니 … 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위로금이지. 이름이 보상금이나 배상금, 위자료가 아니잖아. 불쌍해서 사정이 딱해서 위로하는 게 위로금이잖아.”
“그렇군요.”
유강인이 우영 병원 앞에서 벌어졌던 참극을 다시 떠올렸다.
그 참극으로 한 가족이 풍비박산이 났다. 아버지와 산모였던 딸 손미영, 갓 태어난 손자가 모두 죽고 말았다.
그날 저녁, 손미영 산모를 맡았던 최인식 교수는 예비 장인인 크라운 제약회사 회장을 나진시 바닷가 그린 호텔 일식점 천마에서 만났다.
거기에서 식사하고 거리를 거닐다가 납치됐다. CCTV 사각지대라 납치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최교수는 다음날 영포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산모와 손자, 아버지가 모두 죽었지만, 사위는 있을 거 아닙니까? 아이 아버지는 어떻게 됐죠? 행방을 찾았나요?”
“그건 아직이야. 사위는 계속 찾고 있어. 그런데 둘은 정식 부부가 아니야.
부부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어. 사실혼 관계야.”
“그렇군요.”
“지인들 말에 따르며 남편은 전국을 떠돌며 일하고 있대.
남편한테 여러 번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어. 문자도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핸드폰 위치 추적하세요.”
“응, 그렇지 않아도 영장을 신청해놨어. 지인들한테도 계속 전화 걸고 문자 넣어달라고 부탁했어.”
“매우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는 정형사 담당인데 … 정형사는 지금 어디에 있죠?”
“정형사는 급한 보고를 받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어.”
“사건이라고요?”
우동식 형사가 침통한 목소리로 답했다.
“응, 또 한 명이 죽고 말았어. 시체로 발견됐어.”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외쳤다.
“네에? 시신이 또 발견됐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