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신우와 명호가 방에서 나왔다. 에리카와 요시코가 원 없이 울도록 자리를 피했다. 둘이 여인숙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두 처자의 슬픔을 아는지 비도 내렸다.
신우와 명호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여인숙 입구에 서 있었다.
“그래! 마석의 계획대로 가보자! 어차피 우리는 살 생각을 해서는 안 돼!”
명호가 말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신우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니야! 난 죽어도 상관없지만, 너희는 살아야 해. 나는 네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어.
이건 놈들을 기필코 죽이라고 하늘이 날 살려준 거야. 이번 기회에 기필코 놈들을 해치우겠어.
너희는 기회를 봐서 도망쳐야 해. 이번 싸움은 나와 다나카, 야마모토의 싸움이야. 너희는 목숨을 걸 필요가 없어.”
신우가 명호를 어깨를 꽉 잡았다. 명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신우의 강인한 의지에 감복했다.
“다나카! 야마모토! 22여 년 전 … 갚지 못한 그 빚을 이제 제대로 돌려주겠다!!”
신우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우렁찬 소리에 건물이 쩔렁쩔렁 울렸다.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야?”
주민들이 갑자기 들리는 큰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슨 일이 있나?”하고 밖을 내다봤다. 여기저기서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런?”
신우가 무안함을 느끼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분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곳은 후미진 여인숙이 모인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이제 들어가자.”
명호가 씩 웃고 말했다. 이에 신우가 고개를 끄떡이고 여인숙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사람들이 비를 피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요란한 빗소리에 인적이 드물었다.
다음 날 아침 마석이 여인숙을 찾아왔다. 신우와 명호를 설득하려고 일찍 서둘렀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석의 계획에 둘 다 찬성했다.
“하하하! 그렇지. 잘 생각했어. 다른 방법은 없어. 내 계획은 최선이야. 모험을 감수해야 월척을 낚을 수 있는 거야.”
마석의 말에 신우와 명호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셋이 다시 모여 계획을 의논했다. 이번에는 에리카와 요시코도 참석했다.
“어?”
요시코가 마석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디에서 본 사람이었다.
마석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시코씨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리카씨가 쓰러졌을 때 왕진왔던 의사입니다.”
“네에? 그 의사라고요?”
마석의 말에 요시코가 깜짝 놀랐다.
반면 에리카는 손뼉을 짝 쳤다. 그리고 참 잘됐다고 생각했다.
‘저분이 나를 치료했던 의사구나. 그러면 다나카와 안면이 있다는 말이야. 저분이 앞장서면 다나카와 부하들을 쉽게 속일 수 있어! 그러면 복수하기가 참 수월해져.’
신우와 명호가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머리 좋은 마석답게 계획이 치밀했다.
마석이 준비한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넷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각자 역할을 숙지하고 거사 날을 기다렸다. 각자 할 일이 다 달랐다. 그래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마석은 이번 달까지 병원에 출근해야 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병원에 출근했다.
그에게는 남모르는 능력이 있었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화학에 관심이 많았다. 폭발물질을 제조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일을 마친 후 각종 약품을 구해서 폭발물을 만들었다.
명호와 요시코는 마석한테 폭발물 사용법을 배웠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폭발물에 불을 붙이고 투척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명호가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폭발물에 불을 붙이고 저 멀리 던졌다. 수류탄과 비슷했다.
호를 그리며 날아가던 폭발물이 바닥에 떨어지며 쾅! 소리가 크게 났다.
“아이고! 깜짝이야!!”
큰 소리가 나자, 명호가 깜짝 놀랐다.
반면 요시코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가 있었다.
명호가 요시코에게 물었다.
“요시코는 괜찮아?”
“그럼요. 저는 부대 근처에서 살았어요. 총소리, 포탄 소리에 익숙해요. 이 정도 소리는 작은 소리예요.”
요시코가 실실 웃으며 답했다.
“아하! 그렇구나.”
명호가 손뼉을 짝 쳤다. 엄지척하며 요시코를 칭찬했다.
에리카는 환자 역할이었다. 그래서 식사량을 점점 줄였다. 그 덕분에 날이 갈수록 얼굴이 핼쑥해졌다.
신우는 특별히 할 게 없었다. 몸 관리를 잘하는 게 일이었다. 그는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다나카와 야마모토를 처단해야 했다.
마석이 명석한 머리로 만든 계획에도 변수가 있었다. 바로 신우의 건강이었다. 신우가 대단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신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통증이 발생하는 간격이 점점 줄어들었다.
일주일 전까지는 삼 일에 한 번씩 아팠지만, 최근에는 이틀에 한 번씩 통증이 찾아왔다. 이러다가는 매시간, 매 순간 통증이 찾아올 거 같았다.
신우는 불안한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통증은 주로 늦은 오후에 찾아왔다. 세시와 다섯 시 사이에서 기습적으로 통증이 덮쳤다.
“으윽!”
신우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에리카와 명호가 그를 간호했다. 에리카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신우의 손을 꼭 잡았다.
“제발!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신우가 신에게 빌었다. 복수를 마치기 전까지 쓰러질 수 없었다. 그렇게 불안정한 몸 상태에 전전긍긍했다.
신우를 가혹한 운명에 빠트린 신은 자비심이 없는 거 같았다. 가슴에 박힌 돌덩어리는 점점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신우가 통증을 느끼고 갑자기 쓰러졌을 때 옆에 있던 마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의사답게 신우를 진찰하더니 뭔가 알겠다는 듯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에리카가 급히 마석에게 물었다.
“마석씨, 신우씨 병을 고칠 수 있어요?”
“…….”
마석은 묵묵부답이었다.
에리카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날이 악화하는 신우가 걱정스러워 다시 한번 병원에 가서 진찰받기로 했다.
그녀는 혹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커다란 모자를 꾹 눌러쓰고 스카프를 둘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신우와 함께 전에 갔던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전과 같았다.
병의 진행 경과를 확인하려 엑스레이 촬영을 다시 했다.
사진 분석 결과, 돌덩어리가 심장을 향해 더 조여왔다. 이런 상태라면 조만간에 돌덩어리에 눌려 심장이 멎을 거 같았다.
담당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리카는 절망적인 결과에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신우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한 결과였다. 그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에리카의 간곡한 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둘이 병원에서 나왔다. 신우가 앞장섰고 에리카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절망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우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고 했잖아요.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 건 다 하늘의 뜻입니다. 개의치 마세요.”
신우가 말을 마치고 씩 웃었다. 암담한 상태를 확인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할 일을 마치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후련했다. 하지만 자기만 애타게 바라보는 에리카의 두 눈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신우가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에리카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
반면, 에리카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덤덤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신우가 너무나도 야속했다. 신우를 반드시 살리겠다고 속으로 굳게 마음먹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보란 듯이 그를 살려내 자기 앞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었다.
에리카가 앞으로 나갔다. 단식 탓에 무척 마른 손으로 신우의 손을 꼭 쥐고 같이 걸어갔다.
날이 컴컴해졌다. 이틀 후면 다나카와 야마모토를 쳐야 했다. 사정에 따라서 거사일 더 빨라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오늘은 … 신우와 에리카가 다정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몰랐다.
에리카가 신우의 손을 잡고 근처에 있는 다방으로 향했다.
“커피 두 잔이랑 비스킷 주세요.”
에리카가 뜨거운 커피 두 잔과 과자를 시켰다.
커피가 나오자, 각자 식성대로 커피를 마셨다.
에리카는 아주 쓴 한약 같은 블랙커피를 마셨고 신우는 각설탕 세 개를 커피에 넣었다.
신우는 살아온 인생이 쓰디써서 그런지 쓴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설탕을 듬뿍 탄 달콤한 커피를 좋아했다.
“좀 더 달아야겠는데 ….”
신우가 각설탕 하나를 더 집어서 커피에 넣었다.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잔을 빙빙 휘저었다.
에리카가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웃었다. 자기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신우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달지 않아요?”
“네? 아니요. 아주 달콤해서 좋은데요.”
“그렇군요.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먹는 거죠. 전 쓴 커피가 좋아요.”
에리카의 말에 신우가 크게 웃었다. 그가 말했다.
“쓴 커피도 나름의 맛이 있죠. 한약 같은 맛이 있어요. 그건 그렇고 여기 분위기가 참 좋은데요.”
“맞아요, 우리 다음에 다시 와요.”
에리카가 간절한 심정으로 신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
신우가 답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었다.
최선은 원수들을 해치우고 병에서 해방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었다.
22년간 그를 한결같이 괴롭힌 병이 쉽사리 없어질 거 같지 않았다.
신우가 남은 커피를 서둘러 다 마셨다. 그리고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조용히 들었다.
감미롭고 애절한 사랑 노래였다.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듯 곡조가 애잔했다.
둘이 말없이 노래를 들었다. 이렇게 그들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잔잔히 흘러갔다.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