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마석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수많은 재산과 함께 불길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 어머니는 풍에 걸려 몸져누워버렸어. 입술만 겨우 움직일 뿐이야. 난 그 잘난 의사 자리에서 곧 쫓겨나게 생겼어.
아버지가 그놈들한테 얼마나 많은 뇌물을 바쳤는지 … 너희들은 모를 거다.
그런데도 이것들이 나를 들들 볶고 있어. 전투기를 헌납하라고 겨우 남아있는 재산마저 강탈하려고 기를 쓰고 있어.
나도 이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마석이 두 주먹으로 허공을 내리치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신우가 마석의 두 눈을 바라다봤다. 분노의 불길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원망과 저주, 증오가 활활 타올랐다. 누군가를 무자비하게 해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분노였다.
“신우야!”
마석이 신우를 향해 걸어갔다. 신우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이었다.
“우리 둘이 손을 잡자! 그러면 다나카 그놈을 해치울 수 있어. 내 머리와 네 주먹을 합치자.”
느닷없는 제안이었다. 마석이 솔깃한 제안을 했다. 신우가 잠시 생각했다.
‘이놈은 결코, 믿을 수 없는 놈이야 …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나를 고발한 놈이야.’
신우가 차디찬 목소리로 답했다.
“네가 너를 어떻게 믿지?”
신우가 말을 마치고 마석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난 너를 믿을 수 없다!”
“그러면 무슨 방법이라도 있냐?”
“뭐라고?”
“네 나쁜 머리로 원수들을 해치울 방법이 있냐고?”
“이놈이!”
신우가 버럭 화를 냈다.
마석이 정색하고 말했다.
“난 허튼소리 하는 게 아니야. 나쁜 머리로 무슨 큰일을 하겠다는 거냐? 내 말이 틀렸어? 돌은 두 개가 모여도 돌덩이 두 개에 불과해.”
마석이 신우와 명호를 번갈아 쳐다보며 비웃기 시작했다.
“이놈이 감히, 이걸 그냥!”
명호가 화를 참지 못했다. 마석의 멱살을 다시 잡았다.
마석이 서둘러 말했다.
“야! 흥분하지 말고 진정해. 내가 머리가 좋은 건 … 너희도 다 알고 있잖아.
옛날 자치기할 때도, 내가 더 많이 이겼어. 너희는 맨날 내 꾀에 속아 넘어갔지. 그래서 콩 튀기 하느라 바빴잖아. 그건 사실이잖아. 안 그래?”
마석이 과거의 일을 회상하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리자, 신우가 한 손을 들었다. 멱살을 풀라는 뜻이었다. 이에 명호가 잡았던 멱살을 풀었다.
마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마석은 머리가 좋았다. 자치기할 때마다 번번이 마석에게 지고 말았다. 10번 싸우면 7번 지고 3번 이길 정도였다.
신우가 고개를 숙이고 생각했다.
‘기분 나쁘지만, 이 녀석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어. 현재 다나카와 야마모토를 칠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야.
마석, 이 녀석은 다른 건 몰라도 잔꾀가 많은 건 사실이야. 그건 분명해. 무엇보다 현재 시간이 없어 …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정도야.’
신우가 고개를 들었다. 뭔가를 결심한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좋다! 여기보다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마저 나누자.”
“좋아!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우리는 같은 처지야. 그러니 같은 배를 타야지. 그게 서로 이득이야. 아주 잘 생각했어.”
마석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
신우와 명호, 마석, 셋이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다방이 있었다. 이름이 ‘청룡 다방’이었다.
다방에 들어간 셋이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시키고 말을 나눴다. 여태까지 상황을 정리하고 최종적으로 마석의 계획을 들었다.
놀라운 계책이 마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뭐라고? 네 말은 … 에리카를 이용하자는 거냐?”
신우가 매우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쭉 뻗어서 마석의 멱살을 꽉 잡았다.
마석이 급히 말했다.
“이, 이거 왜 이래! 그게 제일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야. 싫어? … 그럼 지금 당장 헌병대로 쳐들어가서 다나카를 잡아보든지. 네 마음대로 해!”
마석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신우에게 소리쳤다.
신우는 곧바로 응수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거봐! 방법이 없지? 빨리 복수해야 한다며!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그럼, 확실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마석이 신우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명호를 쳐다봤다.
명호가 잠시 생각하다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그렇게 하다가는 에리카와 요시코가 위험해.”
마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들어보니 그 처자들도 다나카랑 원수지간이잖아! 다나카가 에리카의 부모를 죽였고 요시코는 그 덕분에 수양딸에서 하녀로 전락했고 … 둘도 다나카한테 복수해야 하잖아. 우리랑 같이 다나카를 치는 게 뭐가 문제야!”
“그건 너무 위험해. 둘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어.”
신우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크게 소리치며 신우와 명호를 압박했다.
“왜 너희는 … 에리카와 요시코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내 계획을 뭉개냐?”
신우와 명호가 서로 쳐다봤다. 눈빛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 에리카와 요시코를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마석이 앞에 있는 커피를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씩 웃었다. 그가 능글능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내 계획은 그 처자들도 다 알게 돼 있어. 내가 사람을 시켜서 여인숙에다가 편지를 보냈거든. 그 편지에 내 계획이 다 적혀있어.”
“뭐라고?”
신우와 명호가 깜짝 놀랐다. 마석이 말을 이었다.
“세간에서는 헌병대 총사령관 수양딸이 괴한한테 납치됐다고 떠들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
넷이 아주 다정했다고 지인들이 말해줬어. 그새 신우가 에리카와 사귄 거야? 그래서 사랑의 도피를 한 거야? 명호는 요시코라는 하녀와 사귀었고? 복수하기도 바쁜데 연애도 열심히 하고 아주 좋았어! 하하하!”
마석이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낄낄거리며 웃었다.
“뭐, 뭐라고? 이, 이놈이!”
신우와 명호가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에리카와 요시코가 마석이 보낸 편지를 벌써 봤을 거 같았다.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우와 명호는 마석의 계획에 동의할 수 없었다. 마석은 자기 계획을 고집했다. 그렇게 셋이 서로 주장을 내세우며 대립했다. 그러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마석이 다방을 떠나며 말했다.
“잘 생각해라. 이신우, 정명호!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난 너희에게 기회를 줬어.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어. 모든 건 너희에게 달렸어.
간도에서 온 사나이, 이신우! 잘 생각해라.”
마석이 말을 마치고 다방에서 나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안감이 감돌았다.
명호가 급히 말했다.
“요시코와 에리카가 마석의 편지를 받았을까? 그게 사실일까?”
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그건, 방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 빨리 돌아가자!”
“그래, 서두르자.”
신우와 명호가 다방에서 나왔다. 둘이 걸음을 재촉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여인숙으로 들어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 조용하지? 무슨 일이 있나?”
명호의 말에 신우가 긴장감을 느낀 듯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말했다.
“어서 들어가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이 열리자, 에리카와 요시코가 보였다. 둘이 무척 심각한 표정으로 신우와 명호를 쳐다봤다.
방바닥에 편지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진짜군. 마석, 이 자식이!”
편지를 본 명호가 이를 악물었다. 편지를 보냈다는 마석의 말은 다 사실이었다.
“휴우~!”
신우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역시 마석은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신우와 명호는 바닥에 놓여 있는 편지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우를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에리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놓여 있는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최마석이란 사람은 … 누구예요?”
“그게 …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고향 사람입니다.”
신우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에리카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때 요시코가 성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매우 높은 어조였다.
“정말, 언니를 환자로 위장해서 다나카 집으로 들어가기로 한 거예요?”
요시코가 말을 마치고 명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를 질책하는 거 같았다.
명호가 두 손을 흔들며 서둘러 말했다.
“그, 그건 마석의 일방적인 생각이야. 우리 생각이 아니야.”
“그러다 언니가 다치면 어떡해요? 난 절대 반대에요!”
요시코가 울먹이며 말했다. 사랑하는 언니가 원수의 소굴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에리카가 신우에게 말했다.
“신우 씨, 생각은 어때요?”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우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럼 다른 방법은 뭐죠?”
에리카가 진지한 표정으로 신우에게 되물었다.
“… 그건,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조만간에 좋은 방법을 찾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신우가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에리카가 고개를 끄떡였다. 편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석의 계획과 편지 한 장 덕분에 방 안에 풍파가 일었다. 복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5분이 흘렀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에리카가 천천히 일어나 창문으로 걸어갔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려다봤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긴 머리카락이 깃발처럼 휘날렸다. 검고 매끄러운 머릿결이었다.
“그래, 맞아.”
에리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신우를 항해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비장감이 깃든 목소리였다.
“저는 … 다나카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어요. 들것에 실려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 간호사로 위장한 신우 씨도 수월하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아주 좋은 방법이에요.”
“그건 너무 위험해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신우가 서둘러 말했다. 에리카가 위험한 결단을 내렸다. 이를 막고 싶었다.
“지금 우리는 쫓기는 신세에요. 언제 다나카의 부하들이 들이닥칠지 몰라요. 지금은 다소 위험하더라도 빨리 결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해요.
저는 마석이라는 사람이 제시한 방법을 따르겠어요. 위험한 만큼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떠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신우 씨가 가는 곳이라면 저도 따라가겠어요. 어차피 우리는 복수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운명이에요.
다른 길은 없어요. 길은 오직 하나에요!”
에리카가 차분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녀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 수가 없었다.
가녀린 여인이었지만, 누구보다가 강한 의지를 보였다. 복수를 위해 앞장섰다. 그녀는 모든 걸 걸었다. 악마를 처단하기 위해 다른 방법은 없었다.
“흑!”
울음소리가 들렸다. 에리카가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한 맺힌 울음소리에 신우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신우씨가 다나카를 해치우지 못하면 반드시 내 손으로 그를 처단하겠어요. 부모님을 죽이고 나를 농락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어요!
부모님을 죽여놓고 은인 행세를 하다니 …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에리카가 울먹이며 가슴 속에 억눌려있던 커다란 분노를 표출했다.
“어, 언니!!”
요시코가 깜짝 놀랐다.
에리카의 크나큰 분노에 놀라서 멍하니 언니를 쳐다봤다. 그러다 요시코도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곧 언니를 껴안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에리카와 요시코가 서로를 껴안고 서러움에 복받쳐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