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_회색 인간, 외줄 타기
새하얀 눈동자 1편 회색 인간 외줄 타기
나는 외줄을 탄다.
어떤 경우라도
아래를 내려보면 안 된다.
오직 앞만 보고 갈 뿐이다.
두 발이 허공을 헤매고
한 손마저 놓치더라도
외줄을 타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가야 한다.
그게 운명이다.
내가 선택한 운명이다.
반드시 원수를 갚아야 한다.
나는 회색 인간, 임무혁이다.
진실은 안개 속에 있다.
<작품 소개>
2025년 9월, 인천 제3 부둣가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 현장에서 여러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살아남는다
생존자는 인천 마약반 형사 둘이었고 마약 거래 현장에 출동했다가 화를 당했다.
생존자 중 한 명이 깨어난다. 그는 임무혁 형사였다. 임형사는 베테랑 형사로 인천 남부 경찰서 마약반 에이스였다.
그는 속을 내비치지 않는 과묵한 인물이었다. 뛰어난 형사였지만, 특이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콜라 기포만 보면 속이 뒤틀렸다.
임무혁은 대폭발 사고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기억 상실증에 시달렸다.
기억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약 거래 현장에 투입되는데 … 조폭 조직원이 그를 형이라 부른다. 임무혁은 어이없게도 조직원을 놓치고 경찰에서는 그를 철저히 감시한다.
이후 임무혁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마약 밀수로 잡히면서 임무혁 수배령이 떨어진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 임무혁은 경찰뿐만 아니라 조폭한테도 쫓기는 신세가 되고, 영문도 모른 채 필사의 도주를 한다.
수많은 사람이 임무혁의 목숨을 노리기 시작하고 단서는 잃어버린 기억 속에 있었다.
임무혁은 부둣가 창고에서 진실의 문을 열었고 그때 대폭발이 있었다.
임무혁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회색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오직 한가지 목표만 있을 뿐이었다. 그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나아갔다.
그는 목표 바로 앞에서 기억을 잃고 말았지만, 그의 본능이 목표를 가리켰다.
잃어버린 기억과 가공할 적들의 추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임무혁은 부둣가 대폭발 사고의 진상을 파헤친다.
추적 미스터리 소설 ‘새하얀 눈동자 1편_회색 인간 외줄 타기’를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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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8일, 새벽 3시 10분
인천 제3 부둣가
새벽 3시, 깊은 어둠이 장막처럼 내려앉았다.
어느 때보다 어두운 밤이었다. 바닷바람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파도도 잔잔했다.
부두에 정박한 어선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자태를 뽐냈다. 날렵한 뱃머리와 우뚝 솟은 조타실이 수평과 수직의 조화를 이루었다.
그렇게 인천 부둣가가 평화로웠다.
바람 한 점 없는 부둣가는 정적의 미가 흘렀다. 한 장의 스틸 사진 같았다. 유명 여행 잡지 표지와 다름없었다.
부둣가 근처에 많은 창고가 있었다. 대형 창고들이 즐비했다. 사람이 붐비는 창고도 있었지만, 사람이 없는 창고도 많았다.
오렌지색 창고 불빛이 저 멀리에 보였다.
그때 예기치 못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헉!헉!”
한적한 바닷가에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몹시나 거칠었다. 마치 폐가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거 같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머리카락을 갈가리 뜯는 거 같기도 했다.
거친 숨소리가 한동안 계속됐다.
이는 불길한 전조였다. 뭔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니 일어날 게 분명했다.
시간이 100M 스프린터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예정된 파국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 운명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쿠르릉!
잔잔했던 파도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거센 파도가 부둣가로 몰아쳤다. 순식간에 3M 파도가 부둣가를 덮쳤다.
정박한 어선들이 마구 흔들렸다. 이제는 정적의 미를 뽐낼 수 없었다. 커다란 동요가 부둣가를 잠식하더니 그 흔들림이 점점 커졌다.
거친 숨소리와 파도 소리가 서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쨍! 하며 서로 부딪히는 거 같았다.
강하면 부러지기 마련이다.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산산이 부서졌다. 바위가 돌멩이가 되고 돌멩이가 가루가 되어서 … 결국,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강(强) 대 강(强)이 맞붙었다.
그렇게 파국이 시작됐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는 누구도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드시 맞붙어야 했다. 끝장을 내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도발의 끝은 언제나 파국이었다. 누군가는 죽어야 했다.
순간! 섬광이 보였다. 시신경을 마비시키는 번쩍임이었다.
콰아앙!!
저 앞에 있는 대형 창고가 잘 익은 수박이 옥상에서 떨어져 콘크리트 바닥에서 깨지듯, 산산이 깨져버렸다.
두꺼운 철판이 얇은 종이처럼 사방으로 찢겨 나갔다. 허공을 가르며, 하늘을 수 놓던 철판들이 아래로 속절없이 떨어졌다.
굉음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악!”
그때!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동시에 검은 연기와 붉은 불꽃이 하늘로 치솟았다. 대폭발이었다.
조용했던 부둣가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검은 연기가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마치 하늘에서 거대한 포탄이 떨어진 듯했다.
앵! 앵!
다급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인천 제3 부둣가에 차들이 몰려왔다. 119 구급대와 경찰차였다. 급하게 돌아가는 경광등이 어둠을 밝히고 사태의 다급함을 알렸다.
그렇게 인천 제3 부둣가에 큰일이 생겼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이었다. 작은 파국에 불과했다.
진짜 파국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회색 인간이 움직였다.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 남자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 송곳니는 금강, 다이아몬드처럼 강했다. 아무리 두꺼운 철판을 깐 심장이라고 단박에 꿰뚫어 버릴 수 있었다.
3일 후
2025년 9월 11일 오전 10시 10분
“으으으~!”
신음이 들렸다. 마치 물오른 꽃봉오리가 터지듯 새어 나오는 신음이었다. 고통스러운 소리였지만, 한편으로는 기다리던 소리였다.
여기는 5인 병실이다. 신음을 터트린 한 환자가 눈을 꼭 감고 몸을 뒤척였다. 무척 고통스러운지 미간을 있는 힘껏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이 말했다.
“여보, 괜찮아요? 이제 정신이 들어요?”
가녀린 여성 목소리였다. 이윽고 굵은 남성 목소리도 들렸다.
“임형사, 눈을 떠봐.”
눈을 뜨라는 소리가 환자 귀로 들어갔다. 음파가 죽은 듯 멈춰있던 고막을 마구 흔들어댔다. 마치 북채로 북을 때리는 거 같았다.
“으으으~!”
신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환자의 안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꺼풀 속에서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마치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거는 거 같았다.
“눈이 꿈틀거려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의 뒤척임이 심해졌다. 그가 두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1분 동안 전력을 다했다.
환자는 100Kg에 달하는 문을 여는 듯했다. 인체의 창문인 두 눈을 뜨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눈꺼풀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을 때
그때, 환자의 귀에 환청이 들렸다. 그건 아늑하게 멀리서 들리는 소리였다. 잡고 싶고도 잡을 수 없었고 놓치고 싶어도 놓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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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아!”
“무혁아, 어서 아침 먹어야지.”
“무혁아! 놀러 가자! 잠자리 잡자.”
여러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뒤이어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달콤한 목소리였다. 화려한 꽃뱀이 긴 혀를 날름거리며 속삭이는 거 같았다.
“무혁아, 콜라 쭉 들이켜. 어서!”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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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순간!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환자가 눈을 번쩍 뜨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순식간에 폭발했다. 마치 장대비가 내리듯, 식은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려 얼굴을 적셨다.
누가 위에서 물 한 바가지를 냅다 부은 듯했다.
땀은 식은땀이 아니라 차디찬 땀이었다. 몸에 냉혈이 흐르는 듯 땀도 차디찼다.
흘러내리는 땀이 눈썹 미간에 모였다. 코를 지나 인중을 타고 입술까지 흘러내려 갔다.
차디찬 짠맛이었다.
입술에서 흘러내린 땀이 턱 끝에 모였다. 이윽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 방울씩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불을 푹 적셨다.
“임형사!”
“여보!”
연이어 들리는 소리에 환자가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자기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한 명은 30대 초반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40대 초반 남자였다.
30대 여성은 한 마디로 아름다웠다. 긴 생머리에 청순한 얼굴이었다. 가냘픈 눈썹과 긴 눈매,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이 참 매력적이었다. 키는 중간이었다. 남자라면 반할 수밖에 없었다.
40대 남자는 네모난 얼굴에 짙은 눈썹이 강렬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코가 컸고 입술이 두꺼웠다. 큰 덩치에 걸맞게 키도 컸다.
환자가 잠시 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하얀 병실과 입원 환자들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내려 환자복을 살피기 시작했다. 환자복과 함께 이불도 보였다. 푹 젖은 이불이었다. 이불에 명일 병원이라고 프린트되어 있었다.
“명일 병원? … 여, 여기가 병원?”
환자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두 손바닥을 바라보며 몸을 마구 떨었다.
몸이 떨리자, 손바닥도 같이 떨렸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내, 내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대체 왜?”
환자를 지켜보던 둘이 안타까운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중에서 40대 남자가 말했다.
“임형사, 그때 일이 기억 나지 않아? 인천 제3 부둣가로 출동했잖아. 거기 컨테이너 창고가 폭발했어. 그래서 다친 거야. 연기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어.”
환자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크게 떴다. 40대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아! 하며 탄성을 지르고 급히 말했다.
“반장님!”
“그래, 손정기 반장이야. 이제 나를 알아보겠어?”
“네, 반장님. 반장님이 오셨군요. 그리고 … 아! 여보!”
환자가 앞에 있는 30대 여성을 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30대 여성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이제 정신이 들어요. 아내를 못 알아보는 남편이 어디에 있어요.”
환자가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몸이 다시 아픈 거 같았다.
“아, 아이고!”
“어서 누워요. 당신은 환자예요.”
“아, 알았어.”
환자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마법이 걸린 듯 잠이 몰려왔다. 그렇게 깊은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는 의식을 잃은 후 늪과 같은 깊은 구렁텅이에서 헤맸다. 그러다 오늘 겨우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피곤이 몰려왔다.
천신만고 끝에 늪에서 빠져나왔으니 푹 쉬어야 했다.
환자는 인천 남부 경찰서 강력반 형사 임무혁이었다. 마약반 베테랑 형사였다. 나이는 35세였다.
180cm 키에 건장한 체격으로 근육질이었다. 굵은 팔뚝과 탄탄한 장딴지를 자랑했다.
얼굴은 미남이었다. 날카로운 턱선이 살아 있었고 강인한 검은 눈썹과 유려한 눈매, 높은 콧날, 꾹 다문 입술이 매력적이었다.
미인인 부인과 함께 선남선녀 커플로 불렸다.
임형사는 3일 동안 혼수상태였다. 그러다 오늘 오전 10시 15분쯤에 깨어났다.
그는 새벽에 제3 부둣가로 출동했다가 폭발 사고를 당해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이렇다 할 외상은 없었다. 하지만 폭발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 갔다. 연기도 많이 마신 상태였다.
의사는 뇌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뇌 검사를 준비했다.
남편의 변을 들은 부인, 차미진은 버선발로 헐레벌떡 명일 병원으로 달려왔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편을 보고 안절부절못하며 병상을 지켰다.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불쌍할 정도였다.
차미진 옆에는 마약반 반장 손정기가 있었다. 손반장은 임무혁 형사의 직속 상사였다. 마약반을 책임지는 반장이었다.
인천 부둣가 대폭발 사고 생존자, 임무혁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회색 인간이었다. 그의 외줄 타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