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_회색 인간 외줄 타기
매의 눈으로 사방을 잠시 살피던 김찬호 형사가 말했다.
“선배님, 내일 밤 10시 10분, 제3 창고에서 거래가 있습니다.”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물뱀파야?”
“맞습니다. 물뱀파가 마약 거래를 한다는 첩보입니다.”
“물뱀파!”
임무혁이 물뱀파 세 글자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인천 제1의 조폭, 물뱀파의 주 사업은 마약이었다. 양질을 마약을 밀매해서 커다란 수익을 올렸다.
그들은 겉보기에 합법적인 회사였다. 인천을 대표하는 호텔 중 하나인 SS 호텔을 소유했다. 그 호텔은 호화롭고 화려한 나이트로 유명했다. 그래서 많은 외지인이 몰렸다.
SS 호텔의 회장이자 물뱀파 보스인 남궁철은 지역 유지였다. 인천 시 의원과 인천 시장, 인천 지역구 국회의원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경찰은 물뱀파를 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윗선이 있는 듯 거물급을 잡아도 증거 불충분으로 계속 풀려났다.
물뱀파 뒤에는 한국 최고의 로펌, 골든 크로스(Golden Cross, 금 십자가)가 있었다. 그들이 암암리에 물뱀파의 뒤치다꺼리를 맡았다.
골든 크로스 로펌 뒤에는 재벌과 정치권이 있는 거 같았다. 그들은 마약이 필요했다. 아니 간절한 거 같았다.
그래서 물뱀파를 이용해 마약을 들여오고 그들을 비호하는 게 분명했다.
이는 오랜 경험의 수사 경찰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물뱀파의 마약 거래를 잡는 건 어찌 보면 부질없는 짓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약반 형사는 마약 거래 현장을 덮쳐야 했다. 그게 그들의 일이었다. 힘들게 잡은 놈들이 풀려나더라도 이를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헛수고의 연속이었지만, 그 헛수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김찬호 형사가 걸음을 옮기며 임무혁에게 말했다.
“선배님, 6개월 전에 물뱀파 조직원을 잡았는데 … 기억나시죠? 나름 거물급이었습니다.”
김형사의 말에 임무혁이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김형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선배님,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억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건가요?”
임무혁이 서둘러 답했다.
“아니, 기억이 나. 그때 … 두 명을 잡았잖아.”
“… 그렇군요.”
그 말을 듣고 김찬호 형사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6개월 전 임무혁이 잡은 물뱀파 조직원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다. 그걸 기억하지 못하고 두 명을 잡았다고 답했다. 기억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음!”
임무혁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는 현재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모든 게 뒤죽박죽이고 어색해 보였다.
그래서 더 쉬어야 했지만, 그는 쉴 수 없었다. 뭔가가 간절했다. 그게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간절한 뭔가가 있었다.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뭔가가 한시도 가만있지 말라고 그를 재촉했다.
그건 타오르는 갈망이자,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 그는 갈망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며 마약반에 복귀했다.
**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됐다.
솥뚜껑 불판 위에 올라간 고기가 지글지글 익기 시작했다.
“흐흐흐!”
인천 남부 경찰서 마약반 형사들이 쾌재를 불렀다.
여기는 인천에서 유명한 삼겹살집인 ‘동순 돼지집’이다.
신선한 삼겹살로 유명한 집이었다. 아울러 각종 쌈도 최고였다. 상추, 깻잎뿐만 아니라 쌈 잎 5종 세트를 제공했다. 쌈은 무한 리필이었다.
맛있는 고기와 각종 쌈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고기 마니아의 성지였다. 그래서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커다란 방에 마약반 형사들이 젓가락을 들었다. 누구라 할 거 없이 군침을 흘렸다. 그러다 수장인 손정기 반장의 눈치를 살폈다.
상석에 앉은 손반장이 씩 웃었다. 그가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적이더니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형사님들. 이제 먹자고.”
“감사합니다. 반장님!”
“반장님! 최고입니다.”
형사들이 재빨리 아부를 떨고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랜만의 삼겹살 회식이었다. 먼저 배불리 먹은 자가 승자였다.
“와우, 고기가 야들야들하네.”
“소주에 딱 맞아. 자! 한잔들 하자고.”
“흐흐흐, 선배님. 과음은 불가입니다.”
“당연하지. 내일 큰일을 해야 하잖아. 오늘은 술 대신 고기를 실컷 먹는 날이야. 술은 목만 축이자고.”
형사들이 술로 목을 축이고 전투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마약반 일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마약은 황금과 같아서 그 수요가 끊이지 않았다. 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조폭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잘 먹어야 했다. 조폭 깍두기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임무혁이 동료들을 쳐다봤다. 그들이 마치 진공청소기 같았다. 고기를 마구 흡입했다. 익지도 않은 고기를 씹지도 않고 입에 넣었다.
“잘 먹는군.”
임무혁은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대신 물잔을 들고 목만 축였다.
그 모습을 보고 동료 형사가 말을 걸었다. 옆자리에 앉은 형사였다.
“임형사, 왜 그래? 어서 빨리 먹어. 안 그러면 여기 거지들이 싹 다 먹어버릴 거야. 임형사도 삼겹살 좋아하잖아.”
임무혁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는 동료 형사 나대진이었다.
나형사는 키가 크고 말랐다. 나이는 36세였다. 말처럼 얼굴이 길고 눈썹이 진했다. 그래서 별명이 얼룩말이었다.
긴 얼굴에 비해 눈코입은 작았다. 임무혁과 경찰 동기였고 한 살 차이라 친구처럼 지냈다.
“나형사.”
임무혁이 입을 열었다. 그러다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나대진 형사가 잘 익은 고기를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임형사, 왜 이리 힘이 없어. 오랜만에 출근해서 적응이 안 되는 거야?
예전 회식할 땐 누구보다 잘 먹었잖아. 삼겹살 킬러였어. 그게 기억이 안 나?”
“아 … 그랬었지.”
임무혁이 회식 장면을 떠올랐다. 그때 맛있는 삼겹살을 마음껏 먹었었다. 즐거운 추억이었다.
“그렇군.”
임무혁이 젓가락을 들었다. 입맛이 없었지만, 고깃집에 왔으니 고기를 먹어야 했다.
그가 큼지막한 고기를 입에 놓고 씹기 시작했다. 참 고소한 삼겹살이었다.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 맛있네. 정말 좋은 고기야.”
“그럼, 이 집은 인천 최고의 삼겹살집이야. 누구든지 인정하는 집이지.”
임무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기억은 잃었지만, 다행히 미각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가 계속 고기를 먹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그렇게 쉴새 없이 고기를 먹어치웠다. 300g을 삽시간에 해치웠다.
“역시 삼겹살 킬러야. 대단해.”
나형사가 흐뭇한 모습으로 말했다.
두 형사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있었다. 손정기 반장이었다. 그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병가를 마치고 돌아온 부하가 잘 먹자, 기분이 좋은 거 같았다. 손반장이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콜라하고 사이다 각각 네 병씩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콜라라는 말이 들리자, 열심히 고기를 먹던 임무혁이 멈칫했다.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
종업원이 쟁반에 콜라와 사이다를 갖고 왔다. 유리병에 담긴 매장용 음료였다.
탁! 하며 뚜껑이 열렸다. 치익! 하며 병에서 이산화탄소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임무혁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손정기 반장이 콜라와 사이다를 잔에 부었다.
콸콸! 음료 떨어지는 소리가 임무혁의 귀에 들어왔다. 그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동공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나대진 형사가 콜라가 가득 찬 잔을 들더니 임무혁에게 말했다. 무척 친절한 목소리였다.
“임형사, 콜라 좋아하잖아. 어서 쭉 들이켜. 고기 많이 먹어서 느끼하지?”
나형사가 임무혁한테 콜라잔을 권했다. 콜라의 검은색과 물거품이 임무혁이 두 눈에 들어왔다.
“헉!”
임무혁이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서둘러 일어나더니 식당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임형사!”
“임형사님!”
임무혁이 갑작스럽게 뛰어나가자, 형사들이 깜짝 놀랐다.
“선배님, 왜 저러시지?”
“제가 가보겠습니다.”
임무혁 파트너인 김찬호 형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가 파트너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아직 몸이 완전히 않은 거 같은데 ….”
“그럴 리가? 멀쩡해 보였어. 삼겹살도 누구보다 잘 먹었고 ….”
형사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아이고! 하며 안타까워했다.
회식이 파장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임무혁이 토하러 밖으로 나갔다.
형사들이 고기를 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놨을 때 두 형사가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손정기 반장과 나대진 형사였다.
나형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손반장에게 말했다.
“임형사가 콜라를 여전히 싫어하네요.”
손정기 반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렇군. 그런데 저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어. 그냥 인상만 찌푸렸는데 오늘은 과도하게 반응하는군.”
“그렇군요. 반장님 때문에 제가 욕먹게 생겼습니다.”
“나도 원해서 한 건 아니야. 과장님이 시키신 일이야.”
“그래요? 과장님이 왜 일을 시켰죠?”
“임형사가 콜라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말을 듣고 테스트하라고 하셨어.”
“그렇군요. 그런데 그걸 왜 테스트하죠?”
“그건 나도 모르지. 그리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하셨어.”
“그래요?”
나형사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임무혁에게 권했던 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콜라의 알싸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임무혁의 콜라를 다 마셔버렸다.
식당 밖에서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김찬호 형사가 말했다. 그 옆에 임무혁이 있었다. 식당 벽에 토하고 있었다.
“휴우~!”
임무혁이 모든 걸 게워내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맛있게 먹었던 삼겹살을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김형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가 선배님한테 콜라를 권했죠?”
임무혁이 침을 꿀컥 삼키고 답했다.
“나형사.”
“네? … 나형사님은, 선배님이 콜라 트라우마가 있는 걸 잘 아는데, 왜 콜라를 권한 거죠?”
“모르겠어. … 장난이겠지.”
“다 큰 어른이 이런 장난을 치다니 … 나잇값을 못 하네요.”
“…….”
임무혁이 답을 하지 않았다.
김찬호 형사가 말을 이었다.
“선배님, 현장에 복귀하는 건 무리예요. 전에도 콜라를 싫어했지만,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어요.
몸에 이상이 있는 게 분명해요.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이 상한 거 같아요. 제가 반장님한테 말씀드릴게요.”
임무혁이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쩍이기 시작했다.
아주 무서운 눈빛이었다. 밀림 속에 숨어있던 호랑이가 그 존재감을 드러낸 거 같았다.
그 성난 눈빛을 보고 김찬호 형사가 깜짝 놀랐다. 그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김형사는 임무혁과 1년간 파트너로 동고동락했다. 1년간 같이 생활하면서 이런 눈빛은 본 적이 없었다.
독기가 서리고 살기가 등등한 눈빛이었다. 누군가를 잡아먹을 거 같았다.
“선배님 … 눈빛이 너무 무섭습니다.”
파트너의 말에 임무혁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눈빛을 감췄다. 마치 호랑이가 발톱을 숨기는 거 같았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나는 괜찮아. 멀쩡해. 그냥 고기가 목에 걸린 거야. 콜라랑은 상관이 없어. 그래서 게워 낸 거야. 걱정하지마.”
“그래도 ….”
“내일 밤 현장에 출동해야 해, 반장님한테 허튼소리 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래도 선배님 ….”
“김형사!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고작 토한 거로 나를 퇴물 취급하겠다는 거야? 아직 나는 젊어.”
“아, 아닙니다. 저는 선배님을 존경합니다. 마약반 최고 형사잖아요. 실적도 가장 좋고 ….”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왜 이래. … 나는 괜찮아. 기억에 약간 문제가 있지만, 그건 차차 나아질 거야.”
“알겠습니다.”
“토를 했으니 치워야겠군.”
“제가 치우겠습니다.”
“자네는 비켜. 내가 한 일이니 내가 책임져야지.”
임무혁이 말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 바닥에 검은 비닐봉지가 떨어져 있었다.
한편 식당 안 형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정기 반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 걸었다.
신호가 가자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에 찌든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손반장.”
“네, 과장님.”
“그래, 테스트는 했어.”
“했습니다.”
“결과는?”
“이전보다 더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토하려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전에는 얼굴만 하얗게 찔리고 몸만 떨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테스트를 하는 거죠?”
“콜라 트라우마가 분명하군. … 임무혁은 물뱀파랑 분명 관계있어. 놈을 잡아야 해.”
“그런 의혹은 있지만, 아직 증거는 없습니다.”
“증거? 증거는 만들면 되는 거야.”
“네에?”
“전화 끊을 테니. 임무혁을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손정기 반장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형사과장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위의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는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