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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새하얀 눈동자_1_02_기억을 잃은 형사

새하얀 눈동자_회색 인간 외줄 타기

by woodolee Mar 18. 2025

대폭발 사고의 생존자 임무혁이 3일 만에 깨어났다. 그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어났을 때


해가 중천에서 내려왔다. 오후의 따가운 햇볕이 세상에 가득했다.


임무혁이 입원한 인천 명일 병원 1층 로비에 사람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곳에 대형 벽걸이 TV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TV를 시청했다.


아나운서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3일 전, 9월 8일에 발생한 인천 제3 부둣가 창고 대폭발 사고로 일곱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습니다.

의식불명 환자 중 한 명이 다행히 깨어났습니다. 나머지 환자는 여전히 차도가 없습니다.”


“아이고, 나머지 사람도 빨리 깨어나야 하는데 ….”


“그렇지. 소문에 경찰이 다쳤다고 들었어.”


병원 로비에 모인 환자와 보호자, 병원 직원들이 대폭발 사고를 안타까워했다.


아나운서가 말을 이었다.


“사고 현장에 유력 인사들도 있습니다. 인천시의회 의원 두필포씨와, 매향 건설 사장 현진서씨도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사고가 아니라, 테러로 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가스통을 터트려 인명을 살상했다고 잠정 감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테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속한 수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테, 테러라고?”


테러라는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테러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무척 드문 일이었다.


테러를 통해 유력 인사들이 사망했다는 말에 너도나도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이 서로 말했다.


“테러라면 목적이 있는 건데 … 저 사람들을 왜 죽였을까?”


“피해자들이 자기 발로 창고에 간 건가? 죽을 곳인 줄도 모르고 ….”


“그건 모르겠어.”


“그럼, 납치된 건가?”


“글쎄 ….”


사람들이 설왕설래했다. 그렇게 대폭발 사고의 궁금증이 더해갈 때


한 진찰실에서 신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의사와 환자가 말을 나눴다.


“임형사님, 그때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고요?”


“네, 제가 창고에 왜 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부둣가 창고에서 커다란 폭발 사고가 있었습니다. 가스통이 폭발해서 일곱 명이나 사망했습니다.”


“…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임형사님, 다른 기억에는 문제가 없나요? 이름, 직업, 가족, 부인, 동료가 다 떠오르나요?”


환자는 임무혁이었다. 그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제 이름은 임무혁입니다. 인천 매향도 출신으로 인천 남부 경찰서 마약반 형사입니다. 경찰 학교를 졸업했고 파출소에서 근무하다가 마약반 형사가 됐습니다.

가족으로는 동생 임주리가 있습니다. 처는 차미진입니다. 그리고 ….”


“계속 말씀하세요.”


“부모님 기억이 … 나지 않습니다. 전혀!”


“임형사님은 고아입니다. 부모님을 사고로 잃었습니다. 이후 남매가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윤진희씨가 입양했습니다.

윤진희씨가 양어머니입니다. 양어머니는 기억이 나나요?”


“저한테 양어머니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임형사님 신상기록부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의사가 굳은 얼굴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임형사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같습니다. 일시적인 기억 상실 같아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


임무혁이 답을 하지 못했다.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나사가 빠진 듯한 얼굴이었다.


잠시 후 임무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폭발 사고 후 3일 동안 의식불명이었던 임무혁이 깨어나자, 담당 의사가 그를 불렀다. 먼저 뇌에 이상이 있는지 살피고 기억이 온전한지도 살폈다.


진찰 결과,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서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 의사가 볼펜을 들었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임무혁이 의사에게 인사하고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복도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부인 차미진이었다. 그녀가 남편을 보고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편의 팔을 잡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어서 병실로 돌아가요.”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였다. 둘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복도 중앙 엘리베이터 앞에 걸음을 멈췄을 때


그 모습을 맞은편 복도 끝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마약반 반장 손정기였다.


손반장이 걸음을 옮겼다. 진찰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의사에게 말했다.


“임무혁 형사, 상태가 어떻죠?”


의사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환자분 진찰 결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같습니다. 그래서 기억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런 경우, 시간이 지나야 기억이 돌아옵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대신 장기간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네, 일부 기억을 잃은 거 같습니다. 사고 당시와 양어머니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손정기 반장이 의사에게 꾸벅 인사하고 진찰실에서 나왔다.


그의 눈에 임무혁 부부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간 거 같았다.


“음!”


손정기 반장이 한번 헛기침했다. 사방을 날카로운 눈매로 살펴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어딘가로 전화 걸었다.


신호가 가자,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우듯 목에 가래가 들끓었다.


“그래, 임형사는 어떻게 됐어?”


“외관상 크게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기억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뭐?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고?”


“네, 그렇습니다. 사고 당시와 양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의사 진찰 결과야?”


“네, 그렇습니다.”


“의사 진찰 결과라면 사실이겠군.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혹 쇼일 수 있어. 잘 감시해야 해.

임형사는 매우 의심스러운 인물이야. 대폭발 사고 현장에 임형사가 생뚱맞게 있었어.

마약반은 다른 곳을 수사 중이었잖아.”


“임형사 뿐만 아니라 주형사도 사고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둘 다 수상하지. 과학수사대에서 대폭발 사고를 테러로 판단했어. 테러와 관련됐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임형사는 요주의 인물이야. 예전부터 수상했잖아.”


“그렇기는 하죠. 물뱀파랑 관련이 있는 거 같습니다.”


“주형사는 여전히 의식불명이고?”


“네, 당분간은 깨어나기 힘들 거 같다는 의사의 소견입니다.”


“알았어. 주형사는 의식불명이니 어쩔 수 없고 임형사는 깨어났으니 계속 감시해.”


“네, 알겠습니다. 철저히 감시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손정기 반장이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꽉 쥐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



한편 병실로 돌아온 임무혁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옆에 부인 차미진이 있었다. 차미진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불을 들어서 남편을 잘 덮어줬다.


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정기 반장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차미진이 손반장을 보고 활짝 웃었다. 손반장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눈빛이 마주쳤다. 아주 다정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서로 교환했다.


차미진이 총총걸음을 옮겼다. 걸음걸이가 가뿐했다.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 같았다.


그렇게 부인이 … 아픈 남편 곁을 떠났다.


시간이 흘러 깊은 밤이 되었다.


임무혁이 다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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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배고파.”


“주리야, 우리도 잔칫집으로 가자. 지금쯤 오라고 엄마가 말했어.”


“아이고 신나라! 잡채가 있겠지.”


“당연하지, 오늘 잔칫날이잖아. 잡채뿐만 아니라 떡도 있고 통닭도 있을 거야. 분명 주리가 제일 좋아하는 통닭이 있을 거야. 잔칫날에는 통닭이 빠지지 않잖아.”


“하하하! 난 닭 다리가 제일 좋아! 오빠도 닭 다리 좋아하지?”


“당연하지. 어서 가자.”


발소리가 들렸다. 동생 주리가 신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참 좋은 날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오늘은 마을 잔칫날이었다. 이장댁에 거나한 한 상이 차려졌다.


엄마가 말했었다. 오전 11시 30분쯤 이장댁으로 오라고 … 그때쯤이면 잔치 준비가 다 끝났을 거라고 말했었다.


남매가 사이좋게 길을 걸어갔다. 수목이 우거진 시골길이었다.


한참을 걷자, 저 앞에 이장댁이 보였다.


이장댁 앞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 아래 사람들이 많았다.


“무혁이하고 주리도 왔구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희 엄마였다. 영희 엄마가 한 손에 콜라병을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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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임무혁이 잠에서 깨어났다. 두 눈을 번쩍 떴다. 매우 놀란 토끼 눈이었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병원복이 축축했다. 식은땀이 옷을 푹 적셨다. 등과 겨드랑이, 이마에서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으으으!”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임무혁이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꽤 아픈 거 같았다. 두통이 그를 잠식했다.


날카로운 칼이 왼쪽 관자놀이를 벅벅 긁는 듯 왼손으로 왼쪽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통증이 쉬지 않고 그를 찾아왔다.


“젠장!”


통증이 뒤통수 쪽으로 흘러 반대쪽으로 이동한 듯, 임무혁이 오른쪽 관자놀이도 꾹 눌렀다. 찌리릭! 하며 전기가 흐르는 듯 인상도 팍 썼다.


아직 임무혁은 정상이 아니었다. 폭발의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제기랄!!”


임무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머리가 아파서 누울 수도 없었다.


이곳은 5인 병실이었다. 임무혁을 포함해 네 명이 입원했다.


두 명은 쿨쿨 잠을 자고 있었고 한 명은 침대에 앉아서 화투 놀이, 미나토를 하고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60대 남자가 임무혁을 물끄러미 보더니 창문을 가리켰다. 그가 말했다.


“젊은이, 찬 바람을 좀 쐬어.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아플 때는 기분 전환이 최고야.”


“알겠습니다.”


임무혁이 답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창가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9월이라 쌀쌀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찬 바람이 계속 불었다.


“휴우!”


임무혁이 찬 바람을 맞으며 정신 차렸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 기억의 책에서 많은 페이지가 북 뜯겨나간 거 같았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대폭발이 있었다고? 그래서 내가 다쳤다고? 내가 왜 거기에 간 거지?”


임무혁이 무척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천 부둣가는 그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마약반이 자주 출동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우범 지대가 있었다. 종종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우범 지대에서는 전통적인 마약인 필로폰, 코카인뿐만 아니라 신종 마약까지 거래됐다.


그가 고개를 흔들고 계속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폭발이 일어났지? 자그마치 일곱 명이나 죽었다고?

… 기억이 도통 나지 않아. 분명 거기에서 죽을 뻔했는데 … 그게 떠 오르지 않아. 답답해, 답답해 죽겠어! 젠장!”


임무혁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때! 두 눈에서 광채가 돌기 시작했다.


순간!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그건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성난 야수의 눈빛이었다. 속으로 무언가를 노리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기억을 잃은 야수였다. 자신이 무엇을 노리는지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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