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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새하얀 눈동자_1_03_조폭 물뱀파와 법규파

새하얀 눈동자_회색 인간 외줄 타기

by woodolee

한 달 후

2025년 10월 10일 오후 4시 20분


명일 병원 1층 로비 커피숍에 사람들이 붐볐다. 많은 사람이 조리대에서 커피를 받아서 커피를 즐겼다.


병원 직원과 의료진, 환자, 보호자, 방문객들이 커피숍을 가득 채웠다. 심각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웃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심각함과 함께 그 심각함을 어떻게든 달래려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중에 임무혁도 있었다. 임무혁이 40대 초반 남자와 말을 나눴다.


임무혁은 병원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그래서 오늘 오후 6시에 내일 퇴원하기로 했다. 병원비 정산도 끝났다.


그의 처는 병원 근처 커피숍에 있었다. 병문안을 온 친구와 함께 모처럼 만에 수다를 떨고 있었다.


40대 남자는 눈매가 날카로운 신사였다. 검은 정장을 입었고 중간키, 마른 체격이었다. 그가 임무혁에 말했다.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나요? 왜 인천 제3 부둣가 9번 창고에 가셨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벌써 시간이 한 달이나 지났는데 …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고요?”


“그렇습니다.”


40대 남자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천 남부 경찰서 내사과 직원이었다.


그가 쓴웃음을 짓더니 임무혁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임무혁이 거짓말을 한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임무혁이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수사팀장님, 저는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걸 어떡합니까? 억지로라도 이야기를 만들어서 말해야 하나요?

좋습니다. 수사팀장님께서 원하는 이야기가 뭡니까? 말해주세요. 제가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아,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임형사님.”


40대 남자는 내사과 수사팀장이었다.


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커피잔을 들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저는 그냥, 그날의 진실을 알고 싶은 거뿐입니다.”


“진실은 … 제가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기억이 떠오르면 사실대로 말하실 건가요?”


“당연하죠. 기억이 떠오르면,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수사팀장이 슬쩍 웃었다. 그는 질문을 던지며 임무혁의 심중을 엿봤다. 그는 노련한 수사관이었다.


잠시 후 수사팀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보기에도 임무혁은 거짓말하는 거 같지 않았다.


제3 부둣가 9번 창고에 간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으으으~!”


임무혁이 무척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한 후, 내사과 조사를 여러 번 받았다. 그때마다 고역이었다.


그가 목이 마른 지 커피를 쭉 들이켜고 말했다.


“수사팀장님, 더 조사할 게 없으면 그만하시지요.”


수사팀장이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에서 사진 한 장을 찾아서 임무혁에게 보여줬다.


임무혁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 이, 이건.”


수사팀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SS 호텔 나이트입니다. 임형사님이 깍두기들과 같이 술을 드시네요. 1년 전 사진입니다. 술은 비싼 양주입니다.”


“…….”


임무혁이 대답하지 못했다. 사진은 인천의 유명한 나이트인 SS 호텔 나이트였다.


사진에서 임무혁은 최고급 룸에서 깍두기들과 같이 술을 마셨다. 깍두기는 조폭 조직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임형사님, 왜 이들과 같이 술을 드셨죠? 깍두기들은 확인한 결과, 물뱀파 조직원들이었습니다.

물뱀파 조직원 중에서도 잘 나가는 놈들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서로 아주 친한 거 같은데 ….

마약반 형사가 깍두기들과 이렇게 친해도 되나요? 부패, 비리 경찰이면 가능한 일 같은데, 아닌가요?”


임무혁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수사팀장이 침을 입술에 덕지덕지 묻혔다. 그가 임무혁에게 말했다.


“임형사님, 설마 물뱀파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요? 물뱀파는 인천 제1의 조직인데 …. 임형사님이 조직원들을 많이 잡은 조직이기도 하죠.

물론 다 일찍 풀려났지만 …. 하필 잡힌 게 다 피라미들이었습니다.”


임무혁이 급히 답했다.


“물뱀파는 … 기억이 납니다. 인천 일대 최악의 조직입니다. 아주 악질이죠.”


“잘 아시네요. 그런 분이 왜 악질 놈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술을 마셨죠? 혹 뇌물을 받으셨나요? 그래서 기분이 좋았나요?

아니면 잡은 놈들을 풀어주라는 요구를 받았나요?”


“그, 그럴 리가요? 저는 그런 부패 비리 형사가 아닙니다.”


“그럼, 왜 물뱀파 본거지인 SS 호텔 나이트, 최고급 룸에 가셨죠? … 이것도 역시 기억이 나지 않나요?”


“아, 아마도 … 정보원을 만나러 갔다가 놈들이 접근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놈들의 상황을 살필 겸, 같이 술 한잔 마셨을 걸 겁니다.”


“마셨을 거 같다고요? 이것도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어떻게 입수하셨죠?”


“그거야. 저도 정보원이 있습니다. 정보원은 임형사님만 있는 게 아닙니다.”


“1년 전이라면 … 파트너 형사인 김찬호 형사한테 물어보세요. 김형사가 사실대로 말해줄 겁니다.”


“벌써 물어봤습니다. 김형사가 별거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임형사님 말대로 우연히 만난 거라고 답했습니다.

임형사님이 놈들한테 뇌물을 받거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확인이 된 사실을 왜 추궁하시죠? 저를 떠보는 겁니까?”


“떠보는 게 아니라 교차 확인이죠. 교차 확인은 수사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렇군요. … 알겠습니다.”


임무혁이 불쾌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게 조사가 끝났다. 임무혁이 내사과 수사팀장을 만나서 진땀을 뺐다.


내사과에서 그를 노리는 게 분명했다. 내사과는 임무혁과 인천 최고 조폭, 물뱀파와의 유착을 의심하고 있었다.


“젠장.”


임무혁이 조사를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신선한 바람을 마시며 병원 일대를 걸어 다녔다.


대폭발 사고로 몸에 상처가 났지만, 경미한 상처라 다 회복했다.


명일 병원은 대형 병원이었다. 그래서 병원부지에 넓은 녹지가 있었다. 마치 공원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환자, 보호자, 간병인이 있었다. 환자들은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마음의 안정을 취했다.


한참을 걷던 임무혁이 벤치를 찾았다. 저 앞에 벤치 두 대가 있었다. 벤치 두 대가 서로 등을 맞대고 나란히 있었다.


임무혁이 두 벤치 중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 털썩 앉았다.


앞이 탁 보이는 곳이었다. 저 앞에 명일 병원 본관과 지상 주차장이 보였다.


임무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내일부터 출근이군.”


임무혁이 고개를 떨구었다. 현재 그의 기억은 뒤죽박죽이었다. 돌아온 기억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았다.


여전히 대폭발 사고를 기억하지 못했고 아울러 양어머니가 누군지 몰랐다.


그렇게 임무혁이 고개를 푹 숙이고 낙담하고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낮은 목소리였다. 그 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임무혁, 오랜만이야. 난 법규파 김부장이야.”


“뭐, 뭐라고?”


임무혁이 그 소리를 듣고 움찔했다, 그가 급히 고개를 돌리려고 했을 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임형사, 고개 돌리지 마, 우리는 그냥 등을 맞대고 앉은 거뿐이야.

다른 사람이 우리 관계를 알면 어떻게 되겠어? 형사님이 조폭과 어울린다고 소문이나 내겠지.

그러면 우리 임형사님이 난처해지잖아.”


임무혁이 그 소리를 듣고 이를 악물었다. 뒤에서 들리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다시 조폭과 어울리면 내사과 직원이 가만두지 않을 게 뻔했다.


“젠장.”


임무혁이 거칠게 말을 내뱉고 말을 이었다.


“넌 누구야? 법규파라고?”


“아이고 섭섭해라, 우리 임형사님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다니, 우리는 피를 나눈 사이인데 말이야.

소문에 기억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 모양이군.

법규파 김부장이 누구인지 모르겠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고 들었어. 언젠가는 기억이 돌아오겠지.”


“…….”


임무혁이 답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법규파가 떠올랐다. 법규파는 BK파라고도 불렸다. 법규는 두목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인천 제2의 조폭이었다. 제1 조직인 물뱀파와 패권을 다투는 놈들이었다.


“임형사, 내사과에서 조사받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하하! 그 정도야 어묵 국물 먹기지. 어물 국물은 공짜로 주잖아. 별것도 아닌 정보지만, 알게 모르게 솔솔한 정보지, 흐흐흐!”


“나한테 원하는 게 뭐냐?”


“배신하지 말라는 거지. 우리는 그동안 상부상조했잖아. 서로 윈윈했어. 그러니 허튼짓하지 말라고 노파심에 말하는 거야.”


“뭐라고? 내가 법규파와 손을 잡았다고?”


“응, 그렇지. 혹 기억을 잃었다는 핑계로 우리는 내치면 안 돼. 우리는 그동안 임형사 덕분에 큰 이득을 얻었어. 그래서 그만큼 보상했잖아.”


“뭐? 내가 보상을 받았다고?”


“수십억이나 줬는데 그걸 기억 못 해?”


“내가 그럴 리 없다.”


“흐흐흐, 그렇게 믿고 싶겠지. 기억이 돌아오면 비리 앤드 부패 형사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건 그렇고 왜 그동안 그렇게 살았어? 궁금해서 묻는 거야. 최고급 외제 차 정도는 타야지, 국산 중형차가 대체 뭐야? 그것도 중고로 샀더라.

그 돈으로 미인 마누라한테 명품 옷도 사주고 명품 핸드백도 사줘야지. 돈 챙겨서 대체 뭐한 거야?

미인 마누라가 지나치게 검소하던데, 나 같으면 와이프한테 돈을 아끼지 않을 거 같은데 ….

절세미인이라면 투자할 만하잖아.”


“내가 뇌물을 받았다는 거냐?”


“그렇지. 그것도 엄청난 돈을 … 네 덕분에 우리가 2인자가 될 수 있었어. 그래서 그 보답이었지.”


임무혁이 그 말을 듣고 몸을 떨었다. 잃어버린 기억 속에 괴물이 있었다.


“우리 법규형님이 임형사를 아끼고 있어. 우리 관계가 지속하기를 원해. 그 말을 전하려고 온 거야.

그리고 명심해. 배신은 언제나 죽음이야. 우리는 배신자가 가장 아끼는 걸 처리하지.

타깃은 바로 네 부인과 네 동생이야.”


그 소리를 듣고 임무혁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폭 깍두기가 그를 위협했다. 처와 동생을 들먹였다.


그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100도처럼 차디찬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목소리에 살기가 넘쳤다.


“김부장, 법규형한테 전해라. 만약 그랬다간 법규형 목을 따러 간다고 전해!”


“뭐? … 아이고 무서워라. 우리 임형사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전혀 몰랐네. 조폭보다 더 섬뜩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는 평화를 원해. 단지 안정적인 수입을 원할 뿐이야.

임형사가 우리 사정을 잘 봐주면 우리는 최고의 대우를 할 거야.

그럼, 김부장은 이만 가 볼게. 기억을 하루라도 빨리 되찾기 바래. 고개 돌리지 마. 난 조용히 떠날게.”


뒤편 벤치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임무혁이 김부장의 말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뒤편에서 인기척이 사라지자, 임무혁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조폭과 손을 잡았다고? 내사과에서는 물뱀파와 손잡았다고 의심했는데 … 그게 아니라 법규파였던 거야?

내가 진짜로 부패 경찰이었던 건가? 물뱀파, 법규파 놈들은 … 마약 거래로 유명한 놈들인데.

아! 이제 기억이 난다. 놈들 뒤에 막강한 배후가 있었어. 그래서 조무래기조차 다 풀려났어.’


임무혁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경찰 학교를 떠올렸다. 머릿속에 중앙경찰학교 두 번째 교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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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는 사회공동체를 위한 올바른 도리를 실천하고 불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경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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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그가 경찰이 된 후, 항상 가슴에 명심한 말이었다. 그런 그가 부패 경찰로 불렀다. 내사과와 법규파가 그걸 증명했다.


“아!”


임무혁이 오른손으로 왼 가슴을 꽉 잡았다.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심장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잃어버린 기억 속에 뭔가가 있었다.


탐욕에 찌든 괴물이 숨어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은 달랐다. 새벽 잠복하며 범죄자들을 쫓는 기억만 떠올랐다.


임무혁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대체 누구지? 진짜 경찰이 맞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경찰을 탈 쓴 깡팬가? 대체 내 정체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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