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정금학이 울면서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제발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잡아주세요! 그놈을 잡아야 제가 살 수 있어요. 그놈이 저까지 죽이려 했어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어머니가 한 말이 있어요. 어려움에 봉착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
그 사람이 바로 유강인 탐정님입니다. 유강인 탐정님 부탁합니다. 살모사 새끼 이동호와 살모사를 잡아주세요!”
유강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약조했다. 어머니를 잃은 딸한테 천금과 같은 약속을 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정금학이 티슈로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가 진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걸 털어놔서 홀가분한 거 같았다.
“제 말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안가로 돌아가셔서 푹 쉬세요. 저는 집에 가서 사건을 정리하겠습니다. 수사의 방향을 확실히 잡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정금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강인이 정찬우 형사를 찾았다. 정형사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내가 직접 사건 브리핑을 할 거야. 회의실로 수사팀을 모으고 브리핑이 있다고 알려.”
“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정금학의 진술과 지금까지의 수사 상황을 정리해 사건을 확실하게 풀 방향을 정해야 했다.
그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돌아가자고.”
“네, 탐정님.”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넷이 정금학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정금학도 자리에서 일어나 맞절했다.
이윽고 발소리가 들렸다. 탐정단과 정찬우 형사가 파스타 집에서 나갔다.
출입문이 처마 아래 풍경처럼 흔들거렸다. 그 모습을 정금학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강인 탐정님, 이젠 참을 수 없어요. 원수를 반드시 갚아야 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정금학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사복 경찰 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경호했다.
*
탐정단 밴이 도로를 달렸다. 유강인이 피곤한 듯 두 눈을 감았다.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았다. 차에서 한 숨자고 쌓인 피로를 풀어야 했다.
이제 어두운 밤이 되었다. 공기가 차디찼다. 내일 아침 예상 기온이 –8도였다. 강추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서울 금악산역 지하철 출입구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둘 다 여자였고 30대 중반이었다. 한 여자가 등에 바이올린 케이스를 메고 있었다. 둘이 깔깔 웃으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연주회 시작이지?”
“응! 오늘 마지막 연습을 했어.”
“아, 나도 참가하고 싶었는데 손을 다쳐서, 아쉽다.”
“첼리스트는 손 감각이 제일 중요해. 넌 손가락이 부러졌잖아. 지금은 다 아물었지만, 감각이 둔해졌어. 좀 더 연습해야 해.”
“응, 네 말대로 연습이 더 필요한 거 같아. 뼈가 부러진 것도 있지만, 깁스하고 오래 쉬어서 더 그런 거 같아.”
“그렇지, 그렇겠지. 연습을 좀 더 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한국 최고의 첼리스트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지.”
“그래야지. 이까짓 일로 내가 무너질 수는 없지. 네 말대로 나는 한국 최고의 첼리스트잖아. 하하하!”
두 여자가 즐겁게 말을 나눴다. 그러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맨 여자가 친구에게 말했다.
“그럼, 나는 가볼게. 시간 나면 연주회장으로 와.”
“알았어. 그런데 내일은 힘들 거 같아. 약속이 있어서. 내일 모래에 갈게.”
“알았어. 오늘 저녁 고맙다.”
“그런 말 하지 마. 오랜만에 내가 쏜 건데. 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동안 내가 많이 얻어먹었잖아.”
“하긴 그렇지.”
두 여자가 말을 마치고 서로 손을 흔들었다. 이제 작별 시간이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맨 여자가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는 4차선 도로가 있는 인도였다. 인도 옆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곳곳에 가로수가 울창했고 가로등 불이 밝았다.
“랄라라!”
여자가 신이 난 거 같았다. 두 손을 들더니 바이올린을 켜는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였다. 가늘고 섬세한 손가락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하하!”
여자가 크게 웃었다. 무척 기분이 좋은 거 같았다. 인도는 무척 한적했다. 신이 난 여자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인도와 도로가 한적할 때
부르릉!
저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차 소리 컸다. 한적한 도로라 과속하는 거 같았다.
부르릉!!
차 소리가 점점 커졌다.
여자는 차 소리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신이 난 얼굴로 걸어갈 뿐이었다.
그녀가 허밍을 하기 시작했다.
“딴~ 딴~ 딴~ 딴~ 딴~ ….”
파헬벨의 캐논이 들렸다. 캐논, 맨 처음에 나오는 화음을 코로 소리 냈다.
파헬벨의 캐논은 비발디의 사계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이었다.
예전에는 비발디의 사계가 가장 유명한 클랙식 음악으로 손꼽혔다.
반면 파헬벨의 캐논은 파헬벨 사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곡이었다. 그러다 후대인들이 그 곡을 발굴해서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미국의 유명한 음악가인 조지 윈스턴이 파헬벨의 캐논을 편곡한 캐논 변주곡이 빅히트 치면서 파헬벨의 캐논이 급부상했다.
그렇게 파헬벨의 캐논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랙식 음악이 되었다.
캐논(canon)은 원래 돌림노래를 뜻했다. 파헬벨의 캐논도 마찬가지였다. 곡을 계속 반복하면서 변화를 줬다.
특히 캐논의 화음(코드, 높이가 다른 음이 동시에 울리며 어울리는 것)은 반복되면서 아름답고 슬픈 애상을 자아냈다.
“딴~ 딴~ 딴~ 딴~ 딴~ ….”
여자가 계속 파헬벨의 캐논 코드를 허밍했다.
동시에 뒤에서 들리는 차 소리도 점점 커졌다. 허밍 소리를 잡아먹을 정도 그 소리가 커졌다.
“응?”
여자가 허밍을 멈추었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차도 쪽으로 돌렸을 때
거센 바람이 여자의 머리카락을 날렸다.
끼익! 차가 급정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그머나나!”
여자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놀란 나머지 걸음을 멈췄을 때
차가 바로 옆에 있었다. 검은색 밴이었다. 차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차 안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둘은 블랙맨이었다. 검은색 후두, 검은색 롱코트, 검은색 마스크, 검은색 장갑, 검은색 신발을 신었다.
“헉!”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블랙맨 둘이 여자의 양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 차 안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이거 왜 이래요?”
여자가 크게 소리 질렀다. 블랙맨들은 그 소리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여자를 차에 태우더니 차에 올라탔다.
부르릉!!
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 굉음을 내며 도로를 내달렸다.
납치였다. 한밤중에 블랙맨이 한 여자를 납치했다.
불길한 징조가 다시 타올랐다. 훤한 보름달이 옆으로 탐욕스럽고 사악한 먹구름이 다가왔다.
입안으로 사라지는 동그란 과자처럼 보름달이 사라져 갔다. 그렇게 하늘에서 그 자취를 감췄다.
그 시각, 집에 도착한 유강인은 생각에 몰두했다. 볼펜을 들더니 노트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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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다락방 커피숍 화재 사건>
유령 의사 단체 - 붉은 달
백미 노인, 살모사, 살모사 새끼 이동호
윤이슬과 정금학
윤이슬의 어머니 황금새
<면도날 송창수 연쇄 살인 사건>
송창수 살인 수법 – 두 개의 매듭이 있는 밧줄
트레이드마크- 면도날
송창수의 공범이자 스승 - 선생
<자경단 검은 판사>
타깃 - 송상하 부회장(死), 최인식 교수(死), 주미희 영업 사원(死), 정금학 영업 사원
용의자 1 - 송상하 부회장 비서 나은성
용의자 2 - 부인과 아들, 장인을 잃은 연순호
용의자 3 - 성형 수술 중 동생을 잃은 한종수
<면도날 송창수의 힌트>
1. 어제의 도둑이 … 오늘은 포졸이 되는 거야.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2. 유강인, 너는 전생에 극악한 살인마였을 거야. 그래서 현생에 탐정이 된 거야. 그 업을 씻으려고.
3. 유강인, 선생을 찾아. 선생은 가까이에 있다
<살모사 새끼이자, 검은 판사인 이동호의 말>
우리는 전생에 죽도록 사랑했나 봐. 그러니 금생(今生, 현생)에 이런 모습이지. 우리는 아주 깊은 인연이야.
내생(來生)에는 어떨까? 다시 죽도록 사랑한다는데 과연 그럴까? 금학아, 내생에 다시 보자. 다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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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필기를 마치고 생각에 잠겼다. 책상에 코코아 잔이 있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코코아 잔을 들고 쭉 들이켰다. 엄마표 코코아가 참 달콤했다.
그가 곰곰이 생각했다.
‘다락방 커피숍 화재 사건과 검은 판사 사건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건 이동호야.
이동호는 살모사의 새끼이자, 검은 판사야. 두 사건에서 이동호가 겹치고 있어.
이동호는 10년 전 정금학의 어머니를 죽인 살인마야. 어머니를 죽인 후 정금학마저 죽이려다가 백미 노인의 도움으로 실패했어.
10년이 지난 후 검은 판사가 되어 정금학을 죽이려고 다시 나타났어.
이동호는 살모사 새끼이자, 검은 판사야. 결국, 살모사와 검은 판사가 연결된 게 분명해.’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자경단은 정의를 구현하고 원한을 갚으려는 자들이지 킬러가 아니야. 킬러는 원한과 상관없이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야.
이동호는 킬러가 분명한데 자경단으로 보이는 검은 판사 안에 있었어. 이게 좀 많이 이상해.
왜 이렇게 됐을까? 이동호는 철천지한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자는 살인청부업자에 불과해. 검은 판사 안에 이상하게 킬러가 있었어.
그렇다면! 아!’
유강인이 뭔가를 깨달은 듯 손뼉을 짝 쳤다. 그가 급히 생각했다.
‘검은 판사는 조사 결과, 평범한 사람들이었어. 나은성, 연순호, 한종수는 시민이지, 살인청부업자, 킬러가 아니야.
연순호만 유일하게 폭행 전과가 있지만, 그를 킬러로 부를 수는 없어. 그건 우발적인 사건이었어.
원한을 가진 자들 안에 킬러가 섞여 있다는 말은 킬러가 그들과 손을 잡았다는 말이야.
그래! 군사 고문. 검은 판사 속 킬러는 군사 고문 같은 거야.’
유강인이 군사 고문을 떠올렸다.
군사 고문은 무력이 약한 집단이나 국가가 군사력을 키우고 싶을 때 무력이 강한 집단이나 강대국이 군사 교육과 같은 군사적 지원을 하는 걸 말했다.
‘그래! 킬러들이 검은 판사를 교육한 거야. 사람을 죽이는 교육을 한 거야. 이동호는 검은 판사가 아니라 그들의 교관이야.
검은 판사는 킬러의 하부 조직이야. 그래서 킬러 이동호가 검은 판사 안에 있었던 거야. 그런 이유로 이동호가 살모사, 검은 판사 양쪽에 다 걸쳤던 거야!’
유강인의 눈빛에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동호는 살모사의 새끼야. 킬러의 대장은 살모사야. 살모사가 검은 판사를 교육했을 거야.
교육을 살모사가 담당했다면 검은 판사 기획은 … 정황상 그 사람밖에 없어.
그 사람은 선생이야. 송창수의 선생이 검은 판사를 기획한 거야.
아! 그렇구나! 놈들의 실체가 드러났어.’
유강인이 드디어 유레카를 외쳤다. 엄마표 코코아를 단숨에 다 마셨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거였어. 선생과 살모사가 손을 잡은 거야. 선생은 범죄 기획자고 살모사는 전문 킬러야. 둘의 궁합이 딱 맞아. 이론과 실전이 결합했어.
선생이 먼저 원한에 사무친 사람들을 모았을 거야. 그런 다음 살모사가 그들을 훈련 시켰어. 그렇게 해서 원한에 사무친 전문 킬러, 검은 판사가 탄생한 거야!
검은 판사는 일반적인 자경단과 본질적으로 달라!”
유강인이 검은 판사의 본질을 꿰뚫기 시작했다. 베일에 가렸던 검은 판사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실체를 파악하자, 추리에 확 불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