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 <검은 판사, 악의 분노>
‘선생이라는 놈이 흉악한 범죄 계획을 실현하려고 이 일을 꾸민 거야. 선생이 검은 판사를 만든 게 분명해.
검은 판사는 송창수가 가석방된 후 나타났어. 그 점을 미루어 볼 때, 송창수는 검은 판사를 만났어. 검은 판사를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죽기 전에 힌트를 준 거야.’
유강인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송창수 사건은 당대에 유명했던 사건이야. 반면 선생은 베일에 가려있었어. 송창수가 입을 다무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
누군가가 송창수를 찾아갔어. 가석방된 희대의 연쇄살인마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 거야. 송창수는 그 사람에게 선생을 소개했고 ….
송창수를 찾아간 사람은 분명 원한에 사무친 사람이야. 그자가 바로 검은 판사야.
안타깝게도 현재 누가 송창수를 찾아갔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CCTV가 다 지워졌어.’
“음!”
유강인이 쉽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핵심은 셋이야. 첫째는 붉은 원의 살모사고 둘째는 송창수의 선생이야. 마지막은 송창수를 찾아간 사람이야. 이 셋을 어서 찾아야 해.
유력 용의자인 나은성, 연순호, 한종수, 이동호는 그들의 장기 말에 지나지 않아. 그들을 잡아도 다른 검은 판사가 계속 등장할 거야. … 젠장!’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심각했다.
사이코패스이면서 머리가 비상한 선생이 돈에 눈이 먼 킬러, 살모사와 손을 잡았다.
그들은 넘쳐흐르는 살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원한에 사무친 사람들을 뒤에서 조종했다.
선생과 살모사가 검은 판사들 뒤에서 웃고 있는 거 같았다. 잘한다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셋을 잡으려면 …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현 상태에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강인이 아! 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 그래, 백미 노인! 백미 노인은 붉은 원을 창립했고 살모사의 스승이야. 그 사람이라면 살모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어.
그래, 정금학을 통해 백미 노인을 만나자! 백미 노인은 정금학에게 말했어. 아직 힘이 없다며 살모사의 정체를 감췄어. 섣부른 복수를 막으려는 의도였을 거야.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 정금학 옆에 내가 있어. 이제는 살모사의 정체를 밝혀야 할 때야. 좋았어!’
유강인이 씩 웃었다.
‘그리고 선생은 … 송창수의 힌트에 답이 있을 거야. 분명 가까이에 있다고 말했어.
가까이에 있다는 말은 내 근처에 누군가가 있다는 말 같지만, 그건 아닐 거야. 포졸처럼 또 돌려 말한 거야. 송창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돼.
돌려 말했다면 혹 사람이 아닐 수 있어. 다른 걸 뜻하는 거 같은데, 그런 게 내 근처에 있다면 … 아! 그렇지! 그건 사건 기록이야.
사건 기록이 내 옆에 있잖아!
사건 기록 안에 선생이 있는 거야. 그렇다면 참고인! 그래, 스승님이 조사했던 참고인 중에 선생이 있는 거야. 코앞에 공범이 있는 걸 놓친 거야.
아하! 아주 잘 됐다.’
유강인이 쾌재를 불렀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이 난 듯 핸드폰을 들었다. 그가 급히 정찬우 형사에게 전화 걸었다.
“네, 선배님.”
정형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정형사, 송창수 사건을 담당한 경찰, 검사 조사는 어떻게 됐어?”
“계속 조사 중이지만, 특별한 건 없습니다. 사건을 수사하고 조사한 경찰과 검사 중에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그래? … 그렇군, 알았어. 수고해.”
“선배님, 단서를 잡았나요?”
“응, 수확이 있어. 내일 브리핑할 때 설명할게.”
“알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일찍 주무세요.”
“알았어. 정형사도 마찬가지야.”
“네, 저도 일찍 자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은 송창수가 말한 포졸이야. 포졸은 검은 판사와 분명 관련이 있어.
포졸을 확대해석해서 경찰뿐만 아니라 검사까지 조사했지만, 이상이 없었어. 포졸의 진짜 의미가 대체 뭐지?
………………………
잠깐, 포졸은 … 마을 원님과 깊은 관련이 있잖아. 포졸의 상관은 마을 원님, 사또야. 사또라면 ….’
유강인이 멈칫했다. 그의 눈에 초점이 딱 맞춰졌다.
포커스!
아! 하며 큰 소리가 들렸다. 야밤에 들리는 큰 소리였다. 옆에서 자는 사람이 깰 정도로 컸다.
“그렇구나!”
유강인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급히 생각했다.
‘정금학 말에 따르면 검은 판사는 경찰처럼 용의자를 잡고 검사처럼 형을 구형했어. 그리고 판사처럼 형을 선고했어.
그들은 조선 시대 사또처럼 모든 걸 통제했어. 사또는 경찰 서장이자, 검사고 판사야.
수사 결과, 경찰과 검사에 의심 가는 사람이 없었어. 그렇다면 결국, 판사밖에 없어.
송창수가 말한 포졸은 단순한 경찰이 아니었어. 판사까지 의미하는 말이었어.
그래! 그래서 이름이 검은 판사구나. 이름에 답이 있었어. 이 쉬운 걸 몰랐네. 역시 등잔 밑이 가장 어두워!’
유강인이 드디어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 그건 바로 송창수 사건에 참여한 판사였다. 형사 사건에는 경찰, 검사, 판사가 사건에 참여하기 마련이었다.
‘그래, 경찰, 검사가 아니라 판사 중에 억울한 일을 당한 자가 있는 거야.
그자가 가석방된 송창수를 찾아간 거야.
그 판사는 과거에 송창수 사건에 참여했어. 그 사건을 잘 알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한 거야.
송창수는 똑똑한 자가 아니야. 그런데도 세 번의 사건을 귀신이 곡할 정도로 감쪽같이 저질렀어.
판사가 그걸 눈치챈 거야. 베일에 가린 공범이 있다는 것을!’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억울한 일을 당한 판사가 송창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어. 그러자 송창수가 선생을 소개했어.
선생은 자신을 찾아온 판사를 보고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야. 그래서 협력 관계인 살모사에게 교육을 맡겼어.
그렇게 해서 악을 처단하는 악당, 검은 판사가 탄생한 거야! 그 판사를 잡아야 해. 일의 시작인 첫 번째 검은 판사를 잡아야 해.’
유강인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가 서둘러 움직였다. 그렇게 내일 브리핑을 준비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검은 판사와 살모사, 선생을 잡아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검은 판사들이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다음날
2025년 12월 12일 아침 6시 20분
서울 우인동에 작은 산, 우인봉이 있었다. 대형 아파트 단지인 우인 미래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산이었다.
해발 100m의 작은 산이었지만, 수목이 우겨졌다. 산 초입에 넓은 광장이 있었다. 아파트 주민이 체조와 산책, 운동하는 곳이었다.
아침이 되자, 일찍 일어난 아파트 주민 대 여섯이 우인봉 아래 광장으로 모였다. 모여서 기체조를 즐기는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이 느릿한 걸음으로 광장을 거닐었다. 기체조 전 산책하며 몸을 풀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잠에서 덜 깬 사람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화장실로 가서 찬물로 세수해야겠어요.”
“김여사님, 어서 갔다 오세요. 우리는 계속 산책하고 있을게요.”
“네,”
김여사가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광장 우측 구석에 있었다.
그녀가 여자 화장실 근처에 다다랐을 때 걸음을 딱 멈췄다. 뭔가가 이상한 듯 고개를 꺄우뚱했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클래식 음악 소리였다.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가 들렸다.
딴~ 딴~ 딴~ 딴~ 딴~ 딴~
김여사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며 어리둥절할 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가가 보였다.
화장실 건물, 우측 바닥에 뭔가가 튀어나왔다.
“응?”
그녀가 안경을 벗었다. 앞에 있는 게 뭔가 하며 유심히 살폈다.
“헉!”
곧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김여사가 급히 화장실 건물 오른쪽으로 달려갔다.
바닥에 뭔가가 있었다.
그건 운동화를 신은 발이었다.
“뭐, 뭐야? 취한 사람인가?”
김여사가 발 위로 시선을 옮겼다. 시선이 올라가자, 그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젊은 여성이 화장실 근처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얼굴에 핏기가 전혀 없었다. 가느다란 목에 기다란 줄 자국이 있었다.
“악!”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비극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여자 옆에 mp3 플레이어가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딴~ 딴~ 딴~ 딴~ 딴~ 딴~
익숙한 음악이었다. 이 음악은 파헬벨의 캐논 앞부분 코드 진행이었다.
**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회의실 문이 열렸다. 유강인을 비롯한 탐정단과 수사팀이 안으로 들어갔다.
예정대로 연쇄 살인 사건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유강인이 앞으로 나와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사건을 맡은 탐정 유강인입니다. 지금부터 자경단, 검은 판사 사건을 브리핑하겠습니다.”
검은 판사라는 말에 이호식 팀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직 검은 판사를 보고 받지 못했다. 그가 한 손을 들고 말했다.
“유탐정, 검은 판사는 대체 뭐야?”
유강인이 씩 웃었다. 아직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가 말했다.
“브리핑하면서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아, 알았어. 어서 브리핑해.”
이팀장이 계속 진행하라고 손짓했다.
유강인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최근에 정체를 알 수는 집단이 등장해 그들의 사무친 원한을 갚고 있습니다.
그들은 겉보기에 자경단 같았습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 자경단이 아니었습니다.”
“자경단이 아니라고?”
이호식 팀장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동식 형사가 급히 말했다.
“대장, 자경단이 아니면 대체 뭐야?”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들은 정의를 지키고 원한을 갚으려는 자경단이 아니라, 범죄 기획자와 살인청부업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자경단은 허울입니다. 그들은 킬러 조직의 하부 조직입니다.”
“뭐, 뭐라고?”
놀라운 말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그들은 현재까지 세 명을 죽이고 한 명을 죽이려 했습니다. 세 건의 살인과 한 건의 살인 미수가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12월 5일 송상하 부회장을 죽였고 12월 7일 최인식 교수를 죽였습니다. 12월 9일 주미희 영업 사원을 죽였습니다. 12월 11일 영업 사원 정금학을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살인 시도는 모두 이틀 간격입니다. 이는 서둘러 원한을 갚으려는 시도와 우연이 겹친 거 같습니다.”
“저, 탐정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이틀 간격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딱딱 들어맞아요.”
황정수가 참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그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방금 말했지만, 우연과 성급함이 결합해 그렇게 된 거 같아. 다음 사건이 이틀 뒤에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어.”
“아, 그렇군요.”
유강인이 브리핑을 이었다.
“그들은 어제 정금학 살해에 실패했습니다. 제가 볼 때 … 대신 다른 누군가를 죽였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분풀이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피에 굶주린 악귀입니다.”
“네에?”
놀라운 소리였다. 그 말을 듣고 조수 둘과 수사팀이 술렁였다. 유강인의 말은 정금학 살해에 실패하자, 홧김에 다른 타깃을 서둘러 죽였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럴 리가요?”
“정금학 살해에 실패하자, 다른 타깃을 서둘러 죽였다고요?”
조수 둘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호식 팀장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우동식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색이 변하지 않은 건 유강인과 정찬우 형사뿐이었다. 정형사는 30분 전 유강인의 브리핑 자료를 살폈다. 그래서 유강인의 추리를 잘 알고 있었다.
유강인이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어제 살인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브피링을 계속하겠습니다.
사건 조사 결과, 검은 판사는 두 세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 세력은 오래전부터 암암리 활동한 유령 의사집단, 붉은 원입니다.
붉은 원은 불법 성형 수술 단체입니다. 유령 의사들이 조직원입니다. 백미 노인이 창립했습니다. 백미 노인은 미국에서 성형 수술을 배운 인물입니다.
붉은 원의 창립 취지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첨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지만, 그 취지에 어긋난 자가 등장했습니다.
살모사가 바로 그 자입니다. 살모사는 백미 노인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돈에 눈이 멀어서 살인 청부업을 시작했습니다.
전신 마취 환자를 감쪽같이 죽이면서 살인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붉은 원에서 살인 집단이 생겨났습니다.
다른 세력은 연쇄살인마 면도날 송창수의 공범, 선생입니다. 선생은 송창수의 브레인으로 살인 기획자입니다. 송창수는 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송창수는 마지막 살인에서 선생한테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하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두 세력인 살모사와 선생이 손을 잡고 검은 판사를 만들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복수를 꿈꾸는 자들을 모집해 킬러로 양성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검은 판사입니다. 그래서 자경단이 아닙니다. 검은 판사는 살모사와 선생이 시키는 일을 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복수는 선생이 계획한 핏빛 잔치의 일환입니다.”
“아, 그런 거야! 이제 이해가 가네.”
이호식 반장이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끄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