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 <회색 인간 외줄 타기>
임무혁이 걸음을 재촉했다. 넓은 홀 안으로 들어갔다. 10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홀 안에 세 사람이 있었다. 임무혁의 동생이자 친구인 이민우, 그리고 40대 초반 남자와 20대 초반 남자였다.
40대 남자는 작은 키에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얼굴에 살집이 많았다. 한마디로 후덕한 인상이었다. 짧은 머리에 2대 8 가르마를 탔다.
20대 남자는 딱 봐도 술집 종업원이었다. 아직 앳된 청년이었다.
이민우가 임무혁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형에게 말했다.
“형, 어서 자리에 앉아. 김선생은 곧 올 거야. 그건 그렇고 통성명이나 해. 이분이 바로 맥스 호프 주인이셔. 통통한 메기 형님이지.”
이민우가 말을 마치고 술집 주인인 40대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술집 주인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형님. 맥스 호프 주인 이기상이라고 합니다. 민우 동생의 형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치셨다고요? 제가 먼저 상처를 보겠습니다. 저는 군 의무병 출신입니다. 총상 상처를 치료한 적이 있어요.”
주인이 말을 마치고 임무혁을 향해 걸어갔다. 육중한 몸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임무혁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피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그리고 쓰라린 고통도 찾아왔다. 다친 다리가 무척이나 아팠다.
주인이 잠시 임무혁의 상처를 살폈다. 그가 상처를 이리저리 보다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총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군요. 좀 아팠겠어요. 다행히 피가 멈췄습니다.
김선생이 오면 잘 치료해줄 겁니다. 그분은 최고의 의사입니다. 저도 다쳤을 때 한번 치료받았는데 금방 나았습니다.
김선생이 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 그동안 뭐라도 드시죠.”
“그러면 폐가 될 거 같은데 ….”
임무혁이 주저하자, 주인장이 말을 이었다.
“저는 항상 물뱀파 형님과 동생을 극진히 대접하고 있습니다. 물뱀파 형님들이 우리 집을 보호해주셔서 장사가 날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법규파 놈들이 영업 방해하며 돈을 요구해서 골칫거리였습니다.
취객을 이용해 밤 장사에 큰 타격을 줬습니다. 취객들을 내쫓고 싶어도 나이가 너무 많아서 처치 곤란이었는데 물뱀파 형님들이 깨끗이 정리해줬습니다.”
“그렇군요. 법규파 놈들이 행패를 부렸군요,”
임무혁이 말을 마치고 법규파를 떠올렸다. 법규파는 인천 조직의 2 인자였다. 그래서 큰물에서 놀지 못하고 소상공인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주인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악질 취객들이 사라지자, 밤 장사에서 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득이 있었습니다. 물뱀파가 감사하게도 우리 술집에서 파티를 많이 해 보호비를 반 정도 돌려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호비를 실은 반 정도만 내고 있답니다. 흐흐흐!
그래서 물뱀파한테 항상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민우 형님이 다치셨으니 술 대신 안주로 극진히 대접하겠습니다. 음료는 맹물입니다. 상처에는 맹물이 최곱니다.”
이민우가 슬쩍 웃었다. 상처에서 피가 멈췄다는 말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주인에게 말했다.
“메기 형님. 맥스 호프라면 노가리죠. 노가리 안주 부탁합니다.”
노가리 안주라는 말에 임무혁이 노릇노릇 잘 익은 노가리를 떠올렸다. 그가 군침을 삼키고 급히 말했다.
“노가리도 좋고 치킨도 좋습니다. 술집에서 맛있는 치킨 냄새가 풍겼습니다.”
주인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노가리를 당장 대접하겠습니다. 그런데 치킨은 기름진 음식이라 … 상처 회복에는 별로입니다.
아! 그러면 되겠네요. 담백한 닭가슴살 오븐 구이로 준비하겠습니다. 닭가슴살 좋아하시죠?”
“그럼요. 환장합니다.”
임무혁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홀에서 쉬자, 여유를 되찾았다.
“하하하!”
이민우가 크게 웃었다. 그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메기 형님, 노가리하고 오븐 구이 닭가슴살 그리고 쏘야도 주세요. 이 집 쏘야가 그리웠습니다.”
주인장이 방긋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우리 집 소시지 야채 볶음이 끝내주죠. 아이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것만 찾습니다. 제가 아이 입맛이라 아이들 입맛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저도 아이 입맛이네요.”
이민우가 쏘야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주인장이 옆에 있는 20대 직원에게 눈짓했다. 가서 음식을 차려오라는 뜻이었다. 직원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홀에서 나갔다.
5분 후
20대 직원이 커다란 쟁반에 안주를 듬뿍 담아서 들고 왔다. 아주 맛있는 냄새가 홀에 진동했다.
잘 구운 노가리와 닭가슴살 오븐 구이, 소시지 야채볶음이 그 훌륭한 자태를 뽐냈다.
“우와! 어서 먹자고!”
이민우가 쾌재를 불렀다. 그가 포크를 잡았다. 임무혁도 서둘러 포크를 들었다. 그렇게 둘이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둘은 경찰을 피해 도주하느라 체력이 확 떨어졌다. 영양 섭취가 한시라도 급했다.
도주 후 만찬이었다.
이민우가 노가리에 마요네즈를 듬뿍 찍어서 입에 넣었다. 임무혁은 닭가슴살 오븐 구이를 한 손으로 잡고 북 뜯었다.
맛있게 먹는 소리가 홀에서 계속 들렸다.
둘이 노가리와 닭가슴살 오븐 구이를 즐긴 후, 소시지 아채볶음을 먹기 시작했다. 참 맛있는 소시지였다. 둘이 즐거운 나머지 함박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이민우가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다시 이런 날이 오네. 옛날에 형이라 같이 건달 놈들 패고 편의점에 갔잖아.
그땐 돈이 없어서 컵라면만 먹었는데 오늘은 노가리에 닭가슴살, 쏘야야.
이민우, 아주 출세했네. 출세했어. 하하하!”
동생이 크게 웃자, 임무혁이 먹던 닭가슴살 내려놨다. 이민우와 함께한 추억이 떠올랐다.
임무혁은 이민우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났다. 그때 이민우는 또래보다 키가 작고 왜소했다. 이후 키가 쑥쑥 자라서 당당한 체격이 되었다.
이민우가 다 크자 임무혁은 그와 같이 다니며 동네 건달들을 혼쭐 내줬다. 한마디로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이민우가 포크로 소시지와 야채를 꼭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가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오늘 내가 형을 구한 건, 형한테 빚진 은혜의 반의반도 안 되는 일이야.
형은 내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줬어. 그 은혜를 반드시 갚을게. 나 이민우는 빚지고는 살 수 없어. 흐흐흐!”
“그래, 그 빚을 꼭 갚아라.”
임무혁가 말을 마치고 과거를 떠올렸다. 다행히 잃어버렸던 기억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었다.
그중에서 위기에 놓인 이민우를 구하려, 달려갔을 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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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들이!”
이민우가 동네 건달들과 싸우고 있었다. 3대 1 싸움이었다. 건달들이 두 명이나 더 많았다.
3대 1 싸움은 말이 쉽지 이기기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영화에서나 한 명이 수십 명을 이길 수 있었다. 2대 1 싸움만 해도 이길 승산이 거의 없었다.
3대 1을 극복하려면, 싸움의 초절정 고수여서 몸이 번개처럼 재빨라했다. 그래서 선수를 쳐야 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뒤에도 눈이 있어야 했다.
“악!”
이민우가 비명을 질러댔다. 뒤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옆구리를 얻어맞고 말았다.
옆구리를 강타당하자, 갑작스럽게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이민우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건달 셋이 바닥에 떨어진 각목을 주워들었다. 그들이 각목을 들고 이민우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인정사정없는 폭행이었다.
“이것이 감히 나를 무시해! 어린놈의 자식이, 오늘 너를 끝장내겠다!”
셋이 무척 화가 난 듯 각목을 높이 쳐들었다. 이민우의 두 눈에 각목이 보였다. 묵직한 각목이 정점을 찍었을 때
홀연 바람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바람처럼 날아왔다. 두 발이 허공을 갈랐다. 3연속 발차기였다.
퍽!
타격음과 함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악!”
“으악!”
건달 셋이 날아 차기에 얻어맞고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셋을 해치운 남자가 착지했다. 그가 건달 셋에게 호통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는 거냐? 한 명한테 셋이나 덤비다니? 너희는 부끄럽지도 않냐? 어서 썩 꺼져!”
“헉, 재, 재규어다!”
건달 셋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전설의 발차기, 재규어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이윽고 누구라 할 없이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재규어라 불린 남자가 이민우에게 걸어갔다. 그가 한 손을 내밀었다.
이민우가 남자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무척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 무혁이 형.”
“그래, 오늘 큰일 날 뻔했다. 자칫하면 상을 치를 뻔했어. 저놈들을 무지막지한 놈들이야.”
“형 별명이 재규어야?”
“응, 내 별명은 재규어야. 잘 날아다녀서 그렇게 부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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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혁이 생각을 마치고 이민우를 쳐다봤다. 이민우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자기를 구해줬다.
임무혁이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현 상황이 암울했지만, 지금은 웃고 싶었다. 그렇게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5분 후 홀 출입문이 열렸다. 50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네이비색 정장을 입은 신사였다. 보통 키에 마른 체격이었다. 얼굴에 살이 하나도 없었다. 이민우가 50대 남자에게 말했다.
“김선생님, 형이 다쳤습니다. 총상을 입었어요. 어서 치료해주세요.”
“알겠습니다.”
50대 남자는 이민우가 말한 김선생이었다. 김선생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작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 간단한 수술 도구와 약이 있었다. 김선생이 먼저 임무혁의 상처를 살폈다. 그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행히 피가 굳어서 지혈할 필요가 없네요. 몇 가지 치료만 하겠습니다. 심한 운동은 하지 마세요. 상처가 벌어지거나 도질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무혁이 김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치료가 시작됐다.
10분 후 임무혁의 치료가 끝났다. 김선생이 이민우에게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김선생님.”
이민우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감사함을 표했다.
김선생이 홀 밖으로 나가자, 임무혁이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상처를 치료하자. 통증이 사라졌다. 그가 동생에게 말했다.
“어디 병원 의사야? 치료를 참 잘하는데 ….”
이민우가 그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치료를 잘하는 건 맞는데 의사는 아니야.”
“뭐, 의사가 아니라고?”
“응, 그렇지만, 병원에서 오래 근무해서 웬만한 의사보다 실력이 좋아.”
“그렇구나. 의사가 아니었구나. 그럼 뭐 하는 사람이야?”
“간호조무사야. 의사 면허가 없다뿐이지, 실력이 좋아서 진짜 의사들도 김선생을 항상 존중해. 그래서 김선생님으로 불려.”
“그렇구나. 실은 간호조무사였구나, 의사가 아니고 … .”
임무혁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선생은 유령 의사였다. 물뱀파와 손을 잡은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이민우가 말을 이었다.
“뭐, 형이란 비슷한 처지지, 형도 실은 경찰이 아닌데 … 범죄자를 경찰보다 더 잘 잡잖아.”
“뭐, 뭐라고?”
이민우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동생 이민우가 방금 놀라운 말을 했다. 임무혁이 실은 경찰이 아니라고 말했다.